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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리커버 특별판)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20200115 벨 훅스
읽은 지 오 년 이상 된 책은 안 읽은 거나 다름없다고 느낀다. 그러니 스무 살 무렵 동아리에서 공연준비를 위해 얼마 간 진행한 세미나에서 열심히 읽었던 여성주의 관련 책들은 이제는 제목마저 생각나지 않는다. 어쨌든 친구들과 열심히 공부하고 나서 월경 페스티벌이란 이름의 축제 무대에서 공연을 했었다. 스물한 살에는 엘리자베스 워첼의 비치 표지를 보고 누드에다 가운데 손가락까지 올린 저자의 도발적인 모습에 안절부절못하다 없는 돈을 탈탈 털어 결국 손에 넣고 말았다. 그 덕에 참치캔 하나를 몇 번에 나눠가며 몇 끼 밥을 떼워야 했지만 책 자체는 재미있게 읽었다. (생각난 김에 검색해 보니 같은 저자의 프로작 네이션 이라는 책도 너무 보고 싶어져서 질러버렸다...) 스물두 살에는 다이어트의 성정치 등의 책을 보고 친구들과 몸과 성차별에 대해 전공 수업 발표를 했던 기억이 난다. 취업하고 얼마 안 되어서 그냥 읽고 싶서져서 이갈리아의 딸들을 사 봤다.
거기까지다. 다 십 년도 넘은 시절이다. 이후로 비슷한 책 조차 한참 안 본 것 같다. 불평등과 차별에 대해 가르치고, 깨알같은 업무 목록에 양성평등 교육 담당이라고 적혀 있긴 했다. 인권, 차별, 평등 등등의 단어가 들어간 연수를 몇 차례 이수했지만 건성건성 들었다. 그러니 아주 오래 안 읽고, 잊어버리고 살았다.
어려서 열심히 읽은 한국 소설은 주로 남성 작가들이 쓴 것이었다. 길게 봐야 이삼 년 전? 아주 최근에야 젊은 작가상 작품집 같은 걸 읽기 시작하면서 여성 작가들이 많이 활약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 녹아있는 성소수자, 젠더, 페미니즘 같은 소재들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그때 나의 반응은...그닥 공감하지 못했다. 가장 인기를 끌었던 어느 작가의 소설은 담고 있는 메시지의 가치나 반향과 별개로 너무 후지게 썼다는 반감 때문에 좋은 말을 하지 못했다. 굳이 찾아 읽으면서도 시류 편승해서 열심히 팔아 제끼려고 급조해 쓰거나 출판한 탓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글들 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편견이었을까. 메시지를 담으면서 예술성까지 챙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걸 알면서도 문학의 가치와 역할에 유독 편협하고 인색하게 굴었던 것 같긴 하다.
쏟아져 나오는 담론과 논쟁과 투쟁의 모습, 관련 분야의 책들을 나는 외면했다. 혹은 저렇게까지 해야 해? 오히려 반감과 역풍을 가져오고 여성 인권 신장에 부정적일 것 같다는 옆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하기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궁금했다. 나는 왜 애써 무관심하거나 냉소했을까.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가장 취약한 위치에 놓인 사람의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성애자, 기혼자, 임신중절대신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선택하고 경력을 중지한 채 휴직 중인 사람. 주로 문학에서 제기된 문제지점을 보면서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가치 있는 헌신이라는 믿음으로 선택한 일들이 온통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존재 만으로도 체제를 공고화하는 데 부역하는 사람. 물론 그 공고화된 체제 안에서 큰 고통을 겪는 것도 나같은 위치의 사람일텐데. 그렇다고 그런 것들에 문제를 제기한다면 불편해질 관계, 상처입을 사람을 생각했다.
이런 자각도 있었다. 나의 배우자는 어려서 나와 세미나와 공연을 함께했고 성장 배경의 영향이 있는 것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소위 말하는 억압적인 남성상과는 거리가 멀다.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가사나 육아에 있어서 스스로 하는 부분은 제한적이고 내 지시와 요청에 따르거나 돕는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한다. 우습게도 남성 가부장이 부재한 상황에서 상호 호혜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이뤘냐, 하면, 억압을 넘어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난 나는 성별만 바뀌었을 뿐 그 가부장의 역할을 열심히도 재현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역할은 전통적인 엄마들 하는 부담을 지면서, 가족 구성원을 대하는 태도는 내가 원하는대로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대부분의 결정을 내 마음대로 하면서 그걸 제대로 따라주지 못할 때 잔소리를 퍼붓고 거기에 언어든 신체든 폭력적인 요소까지 가끔 동반되는 일이 있었다.
자각을 못하는 게 아니라 끊임 없이 자책하고, 고쳐야지, 하면서도 나아지다 악화되고. 그러니 그런 문제제기를 하는 글들을 볼 때면 눈물 가득한 채 노려보는 눈이, 가리키는 손가락이 온통 나를 비난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나아지고 싶고 달라지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래서 남들이 남기는 글도 읽어 보고,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지, 어떤 정책이 요구되고 있는지 조금씩 관심을 가지는 중이다. 입문서라도 다시 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골랐다. 페이지가 얇아서 제일 마음에 들었다. 저자가 ‘명료하고, 간결하고, 쉽게 읽히는 책’이라는 바람을 실현한 책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고 솔직히 말하면 아주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흑인 여성으로서 성차별문제와 인종차별문제 양쪽 모두에 민감함을 가지고, 수십 년 간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 투신, 헌신, 연구한 저자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페미니즘 운동의 약사는 제법 생생하게 와 닿는 부분이 있었다. 책의 내용 또한 수많은 페미니즘 갈래 중 하나의 주장이겠지만 그래도 운동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는 부분이 가치 있어 보였다. 깊이있지는 않아도 페미니즘과 연결될 수 있는 삶의 다양한 부분을 최대한 많이 언급해 놓은 것이 입문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꼭지에 대해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더 자세하게 파고들어간 다른 책들을 찾아볼 수 있으니까.
어제 사회과교육과정을 오랜만에 뒤적여 보았다.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는데,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국가수준 문서에 명시되는 날이 올까? 하는 질문에 친구는 오지 않을까, 하고 답했다. 나에게는 그 정도까지 확신은 없지만. 어떤 식으로든 어린 친구들이 차별과 착취와 억압이 문제라는 것을 알고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데 기여할 만한 방법을 궁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밑줄 긋기
-이 명료한 개념 정리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
-억압의 가해자가 남성 뿐 아니라 여성 스스로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책에서 저자가 계속 성토하는 개혁적 페미니스트들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기득권에 편입되어 올바른 변화를 방해하는 역할을 하고 있던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의식화 모임이 거둔 가장 강력한 성과는, 모든 여성에게 내면화된 성차별주의, 다시 말해 가부장제적 사고와 행동에 대한 충성과 헌신을 직시하고 페미니스트로 거듭나라고 촉구한 것이다. 이러한 개입은 여전히 필요하다. 페미니즘 정치를 선택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런 단계를 꼭 거쳐야 한다. 외부의 적과 맞서려면 그전에 내면의 적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를 위협하는 적은 성차별주의적 사고와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