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라이트의 사순절과 부활절 - 광야에서 영광으로
톰 라이트 지음, 전의우 옮김 / 야다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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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는 영국교회가 자랑하는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세계적인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길러낸 흐름 위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되었으며, 앞으로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 신학은 ‘지금, 여기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 특히 톰 라이트는 사순절과 부활절을 분명히 구분하며, 고난과 영광을 혼동하지 않도록 두 진리를 차분히 짚어 나간다.
목차로는 프롤로그:광야에 계신 예수님
첫째주: 무리 가운데 계신 예수님
둘째주: 기도하시는 예수님
셋째주: 친구들 가운데 계신 예수님
넷째주: 원수들 가운데 계신 예수님
다섯째주: 예루살렘에 계신 예수님
고난주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부활주간: 영광 가운데 계신 예수님으로 47일의 묵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을 제공해주어 개인 적용을 하여 한번 더 내용을 복기하니 좋았다.

P. 9
“애통한다는 말은 상황이 여전히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의 곤혹스러운 슬픔과 좌절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수 있으며, 실제로 내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애통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사야 53장 3절이 말하듯이 “슬픔의 사람이었으며 허약함을 아는 사람”이셨던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이 그분의 세상에서 지속되는 비극을 향해 느끼시는 슬픔에 우리가 참여하는 방법이다.”

하나님이 애통을 선물이라 하신 이유는, 애통이 상실로 끝나는 감정이 아니라 회복으로 나아가게 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슬픔을 견뎌내는 데 익숙하지만, 슬픔을 드러내는 데에는 서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슬플 때 슬프다고 말하는 용기, 그 솔직함이 애통이다. 애통은 무너짐이나 패배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어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하는 은혜의 시작이다.

프롤로그의 첫 장을 넘기며 복음은 과연 나에게 어떻게 와닿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그 복음을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언어로 전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보신다고 했지만, 나는 그 시선 앞에서 살아왔는가. 솔직히 그렇지 못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그에 합당한 태도와 삶을 살았는지 스스로에게 조심스레 묻게 된다.
생각지도 못하게 광야로 내몰릴 때,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야 하는가. 광야에 계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분의 태도 앞에서 나의 선택과 자세를 다시 점검하게 된다. 삶을 통째로 리셋하는 시간을 지나고 있어서인지, 이 광야의 묵상은 유독 깊게 다가온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앞에서 인간은 하나님을 찾기보다 이성적인 판단과 즉각적인 해결에 의존하려 한다. 그러나 톰 라이트가 말하는 사순절은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아직’에 머무는 신학적 훈련이다. 애통은 회피가 아니라 직면이며, 혼자 이해하려는 태도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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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훔친 철학 편 - 알고 있으면 척하기 좋은 지식의 파편들 세계척학전집 1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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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_이클립스 #모티브 #훔친철학편

14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이클립스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구독과 좋아요를 눌렀다. 채널이 생긴 지 겨우 9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가 말하는 ‘척하는 철학’은 알고 있으면 척하기 좋은 지식의 파편들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세계척학전집>은 400쪽이 넘는 두께라 처음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책은 스스로 읽는 법부터 친절하게 안내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읽어도 좋고, 문제 중심의 독서를 통해 지금 나의 고민과 맞닿은 철학자부터 찾아가도 좋다고 말한다. 철학을 ‘공부’가 아니라 ‘대화’로 끌어오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철학이 잘 정리되었다고 느꼈던 책은 일본철학번역서를 읽었을때였다. 그런데 그런 나의 생각을 끊어줬다. 이 책 역시 그만큼 정리가 뛰어나서 좋았다는거다. 복잡한 개념을 군더더기없이 정돈이되어 독자에게 건네는 점이 메리트가 있다고 느꼈다.

목차로는 PART1 진리와 인식-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PART2 윤리와 정의-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PART3 자유와 실존-나는 누구인가?
세 주제 다 살아가는데 꼬옥 필요한 주제라 처음부터 찬찬히 읽어내려갔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는 니체, 데카르트, 사르트르, 키르케고르, 카뮈라고 할 수 있다. 주어진 답이 아닌 내가 나의 답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나의 삶을 내가 헤쳐나가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 같다. 누구에 의한 삶이 아닌 온전한 나를 위한 삶 말이다. 외부의 진리를 자신의 진리로 바꾼다. 이 철학자들의 공통점은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서는 철학자이다. 힘든일은 점차 누가 연못에 돌을 던지면 그 파장이 점점 더 커지듯이 나의 삶도 하나의 돌로 인해서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이뤄지면서 180도로 변화되는 삶이 된 적이 있다. 삶이 고통스럽지만 힘들지만 니체의 말대로 끌어안아서 힘으로 전환하고 카뮈의 말대로 부조리한 삶에서도 하지만 그래도 살아야한다는 것. 삶이 힘들고 어렵지만 무너지지 않는 유연함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있는 각 파트에서 내가 와닿고 관심있는 부분을 뽑았다. PART1에서는 니체의 관점주의였다. 삶에서 무엇을 옳다고 믿을것인가는 결국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태도라고 느꼈다. PART2에서는 공자의 仁이 마음에 들어왔다. 규칙이나 도덕이전에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먼저 형성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PART 3에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특히 와닿았던 이유는, 그것이 삶 앞에서 변명할 여지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선택하고 있으며, 그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삶은 오롯이 내가 선택한 삶이다 힘든순간이지만 이것은 과거의 내가 선택한 결과물이 현재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든, 불만족스럽든 그것은 외부 조건의 산물이 아닌 내가 선택해 온 결과라는 인식이다. 나는 신을 믿는다. 그래서 삶의 많은 순간을 신의 인도하심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신앙이 나의 선택을 대신해주지 않는다. 신은 길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 길을 걷는 결정은 결국 나의 몫이다. 그렇기에 나는 삶 앞에서 피해자가 되기보다는 책임지는 존재로 서고자 한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신앙을 부정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나의 신앙을 더 성찰하고 돌아보게하는 사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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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굳이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마음시 시인선 17
이정하 지음 / 마음시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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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굳이사랑하지않아도좋다_이정하시집 #마음시회 #마음시시인선17

심쿵!
시인 이정하님께서 친필로 사인해 주신 줄은 미처 몰랐다. 첫 장을 넘기다 사인을 발견한 순간, 괜히 마음이 들썩였다. 책을 좋아해 그동안 여러 작가의 사인을 받아왔지만, 이 시집은 유독 더 잘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시에는 관심이 없다고 여겨왔다. 그런데 이정하 시인의 시집을 다시 마주하며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걸 보면, 아예 시나 책을 멀리해 온 건 아니었나 보다. 가끔 예전 시대의 책을 펼치다 보면, 언뜻언뜻 이미 읽었던 기억이 스친다. 이 시집도 그런 책들 중 하나다.

P.21 그리우면 가리라, 그리우면 가리라,고 내내 되뇌다 마는 이 지긋지긋한 독백, 이 진절머리나는 상념이여.

되뇌다 마는 지긋지긋한 독백, 진절머리 나는 상념. 이정하 시인의 이런 직설적이고 솔직한 표현이 나는 좋다. 감정을 애써 정제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 상태 그대로를 언어 위에 올려놓기 때문이다. 시 속의 말들은 아름답게 다듬어지기보다, 생각이 멈추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도는 마음의 움직임에 가깝다. 그래서 읽는 이는 시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자연스럽게 대조하게 된다.

이 시집을 읽으며 나는 왜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하지 못하는지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표현하지 못한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더 단단해진 채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이 시들은 조용히 드러낸다. 마음속 이야기를 그대로 내비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결국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 된다. 이정하가 말하는 사랑은 특정한 대상이나 과거의 연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스쳐 지나간 인연, 문득 떠오르는 얼굴, 이유 없이 보고 싶은 마음까지 모두 포함한다. 사랑을 사건이 아니라 감정의 상태로 바라보는 시선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 속에 흩어져 있던 감정들을 다시 불러오게 만든다. 이 시집은 과거의 감정을 끌어올리되, 그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들이 지금의 나를 어떻게 구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읽고 나면 특별한 위로를 받은 느낌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를 확인한 기분이 남는다. 냉정하지만 차갑지 않고, 담담하지만 분명하게 감정을 건드리는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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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마음시 시인선 16
이정하 지음 / 마음시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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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눈부시지만나는눈물겹다_이정하시집 #마음시회 #마음시시인선16

시인 이정하의 책 제목을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특히 옛날 X세대라면 더욱 그렇다. 마음이 쉽게 흔들리고 감정이 앞서던 나이, 몽글몽글한 감정을 붙잡고 시집 한 권을 펼쳐 들던 기억이 있다. 이정하는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7년 대전일보와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그의 이력은 담담하지만, 시를 읽는 경험은 그렇지 않다. 시인을 소개하는 문구 가운데 “특히 사랑 때문에 가슴 아파했던 사람이라면 이정하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장은 오래된 기억을 정확히 건드린다. 사랑 앞에서 서툴렀고, 그만큼 쉽게 아파했던 시절의 감성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로 남아 있는 그의 시집들은 유행을 넘어 하나의 정서가 되었고, 그 제목들만으로도 우리는 각자의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이정하의 시는 과하지 않게 나에게 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랑의 표현 방식은 화려한 미사어구가 아니다. 과장하지 않고, 담백한 언어로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건네는 것. 그래서 문득 생각하게 된다. 지금의 시대에도 이정하 시인의 시는 여전히 통할까, 유효할까. 시대는 분명 변했지만 사랑의 마음만큼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그래, 나도 이런 감정을 가졌었지’ 하며 오래된 기억이 자연스럽게 복기된다. 감정은 현재에서 과거로 천천히 회귀하고, 그 시절의 공기와 온도가 다시 살아난다. 마치 공중전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처럼, 한 시대의 사랑이 조용히 되돌아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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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자유론 - 자유는 상처를 먹고 자란다
존 스튜어트 밀 지음, 김이남 편역 / 포텐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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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자유론_존스튜어트밀 #김이남편역 #포텐업

한동안 나는 누구에게 보여지는 삶을 지극히 성실하게 살아왔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들이 뼈아프게 다가왔던 이유도, 어쩌면 그가 내 삶을 정확히 짚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직설이 비난이 아니라 위로로 느껴졌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를 가장 잘 설명한다. 나는 일기를 쓰듯 살았지만, 실은 보여지기 위해 쓰는 일기에 더 가까웠다. 진심이라고 믿었던 말과 행동들조차 어느 순간부터는 누군가의 시선, 반응, 평가를 전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칭찬받기 위해, 비난받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삶. 그게 나의 성실함이었고 동시에 나의 굴레였던 것 같다.
겉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늘 남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은근히 자랑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어 했던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내 껍데기를 한 겹 벗겨낸 듯한, 예상치 못한 후련함을 느낀다. 이 감정이 이렇게 가볍고 맑을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그렇다고 SNS를 했던 시간이 허투루 흘러간 시간이라거나, 무의미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곳에서 나는 분명히 많은 것을 얻었다. 관계도, 배움도, 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 있었다. 다만 이제는 그 시간이 나를 설명하는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아마 지금의 나는 보여지기 위해 사는 사람에서 이해되기보다 스스로를 아는 사람으로 옮겨가는 중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이동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단단하다.

P.122 타인의 칭찬은 달콤하지만 쉽게 사라진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된 수긍과 수용은 깊고 오래 지속된다.

나의 삶은 존 스튜어트 밀의 말처럼 ‘나에게는 나의 삶을 실험할 자유가 있다.’는 문장이 현재 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의 선택들(좋은선택부터 안좋은 선택의 기로까지도) 그런 흔들림 조차도 하나의 실험이었다고 생각하니 삶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나는 타인의 인정이 없어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인가?’이 문장이 눈에 띄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인정에 목말라 있었고 누군가의 시선과 평가가 어떤지 나를 규정하도록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인정을 원했나? 나는 살면서 살아감에 있어서 부모에게도 칭찬을 받고 산세월이 없다보니 잘해야, 버티면, 증명하면 괜찮아진다고 믿었던 시간이 길었던 것 같다.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흔들렸던 시간도, 부족했던 선택도 모두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온 과정이었다는 것을. 나를 완성하는 기준을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나 자신의 판단으로 옮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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