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가
신재민 지음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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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신재민장편소설 #북다

​참 오랜만에 접한 오컬트 호러 소설이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2017년 독재자인 전 대통령 이운암의 생가가 화재로 타오르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왜! 아버지이자 도편수인 지범근은 “생가를 절대 복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까? 어떤 기함할 것이 숨겨져있길래. 멸실된 집을 굳이 다시 세우려 하는것일까. 그리고 그 복원의 욕망 속에서 튀어나오는 험한 것들의 정체를 추측하며 몰입해서 페이지를 넘겨나갔다. 몰입도가 상당했다.

​한옥이 불타는 대목을 읽을 때는 자연스레 2025년 3월, 초대형 산불로 잿더미가 되었던 경북 의성 고운사의 소실이 떠올라 서늘한 소름이 돋았다.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이나 수많은 화재 참사를 넘어, 당시 강풍을 타고 날아든 불길에 고운사의 보물 가운루와 연수전을 비롯해 전각 21동과 사찰림의 97% 이상이 한순간에 소실되었던 그 허망함이 소설 속 장면에 겹쳐졌다. 소설은 단순히 무서운 신기루가 아닌, 공간의 붕괴가 주는 이 묵직한 실체적 공포를 디테일하게 그려낸다.

​목차는 파가(破家), 개기(開基), 열초(列礎), 선목(選木), 벌목(伐木), 입주(立柱), 상량(上樑), 생가(生家)로 이어지는 한옥의 건축 순서를 따라 흐른다. 그러나 이야기의 핵심은 건축 그 자체도 있겠지만, 그 뒤에 도사린 샤머니즘과 수목신앙, 그리고 가택신앙의 기괴한 충돌에 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무의식중에 샤머니즘이나 오컬트에 대한 본능적인 외경심을 갖고 있다. 맹목적으로 믿지는 않지만, 수령 100년이 넘은 거목이나 당산나무를 마주하면 왠지 모를 압도감을 느끼곤 한다. 민속학에서 오래된 큰 나무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자 신성한 나무로, 허락 없이 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꺾으면 '동티가 난다', 즉 병이 나거나 집안에 우환이 생기는 등 신벌을 받는다고 믿는 민간신앙이 있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죽은 공간을 살리겠다고 살아있는 신성한 나무를 베어버리는 역설적이고 기이한 탐욕을 보여준다.

​이 탐욕은 결국 가택신앙마저 깨뜨린다. 한국의 전통 신앙에서 집은 성주신과 터주신 같은 가신(家神)들이 상주하는 공간이며, 대들보를 올리는 상량은 집에 비로소 온전한 생명과 질서를 부여하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그러나 억울하게 베어진 영목의 한(恨)과 인간의 오만함으로 지어진 가짜 생가는, 신이 거처하는 집이 아니라 기괴한 령이 깃든 '공포의 생명체'로 태어나고 만다.

​우리가 오래된 나무나 불탄 폐허 앞에서 느끼는 알 수 없는 중압감은, 옛날부터 내려온 수목·가택신앙의 감각이 여전히 우리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이기적인 복원 욕망이 불러오는 서늘한 공포를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끔 매력적으로 그려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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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디깅클럽 (Music Digging Club)
요즘 지음 / 모티브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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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디깅클럽》 요즘 지음 #모티브 #신간도서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알고 있는 음악의 세계는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음악의 세계는 방대하다. 저자가 소개하는 101곡 가운데 아는 곡은 10분의 1도 되지 않았다. 클래식, 재즈, 록, 팝, 포크, 인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탐험하는 저자의 취향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 기행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음악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따라 걸으며 그의 기억과 감정을 함께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음악은 참 신기하다. 한 곡이 흐르는 순간 잊고 지냈던 계절의 공기와 오래전의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그래서 그 기분을 만끽하려 듣는다. 그때의 거리, 그때의 사람, 그때의 나까지도 음악은 순식간에 현재로 불러온다. 그때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을 밤하늘 아래에 피아노선율로 가져오기도 하고, 음악을 들으며 마치 모두가 자신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표정과 장면들을 보며 내모습 같아서 웃참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사람은 결국 같은 방식으로 추억을 붙잡고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음악을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다. 시대마다 즐겨 들었던 음악이 달랐지만, 유난히 삶이 암울하고 침체되어 있던 시절에는 록과 팝을 많이 찾았다. 가사의 의미를 모두 이해하지 못했어도 거친 기타 사운드와 폭발하는 에너지가 내 마음속 답답함을 대신 토해주는 것 같았다. 음악을 듣는 행위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감정을 견디는 방법이기도 했던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문득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의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어떤 노래를 좋아했는지보다, 그 노래를 듣던 시절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돌아보고 싶어졌다. 시절음악도 있지만 그때의 상황에 따라 들었던 배경이나 감정이 되살아난다. 음악은 시간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일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박학다식한 음악 세계를 천천히 헤엄치고 나오니 새로운 세상을 여행한 기분이었다. 내가 모르던 음악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컸지만, 무엇보다 한 사람의 내면을 음악이라는 언어로 엿본 것 같아 흥미로웠다. 책 한 권을 통해 플레이리스트가 곧 한 사람의 삶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오래 기억에 남을 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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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혁명 - 인간은 내면의 목소리를 믿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내면혁명 1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 이너스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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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혁명》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이너북

오랜만에 내 결을 닮은 철학자를 만났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닮고 싶은 사상을 찾아간다고 했던가. 에머슨의 문장은 위로보다 각성을 준다. 따뜻한 공감으로 등을 토닥이는 대신, 인간 안에 숨어 있는 위선과 의존을 정면으로 꿰뚫는다. 직언, 직설이 좋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아프지만 뇌리에 박힌다.
가장 깊게 남은 문장은 "인간이 자기 자신의 입법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누구도 내 삶의 의미를 대신 만들어 줄 수 없고, 결국 내 삶의 기준은 내가 세워야 한다는 선언이다. 알면서도 남의 말에 흔들리는 건 사실이다. 외부의 권위와 타인의 평가를 걷어낸 자리에 홀로 선다는 것은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질문해 왔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일까. 누구하나 등떠밀거나 자리를 만들어준것도 아닌데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타인의 기대에 맞추려는 습관은 어느새 나를 조금씩 잃어가게 만들었다. 그저 웃고, 맞추고, 배려하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했지만, 그 안에는 내 이미지를 지키려는 무언의 거래도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또 나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결국 진심보다 평가를 의식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니체나 에머슨 두 사람 모두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외부의 정답이 아니라 자기 안의 기준이라고 말한다. 자기 신뢰는 막연한 자신감도, 스스로를 달래는 자기 위로도 아니다. 흔들리더라도 끝내 자신의 신념으로 다시 일어서는 힘이다. 나 역시 이제는 타인의 기대보다 내 삶의 좌표를 따라 걷고 싶다. 누군가의 대리인이 아닌,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싶다.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보다 진심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갈대보다 뿌리 깊은 나무가 되고 싶다. 인생이 그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

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라 나를 단단하게 세우는 기둥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주 펼쳐본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에머슨과 니체 같은 철학자들의 문장을 곁에 둘 것이다. 그들의 날카로운 문장은 나를 상처 입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답게 살아가라고 흔들어 깨우는 가장 정직한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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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 - 신앙을 일깨우는 글의 힘
조명신 지음 / 샘솟는기쁨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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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 조명신지음 #샘솟는기쁨

나를 가장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것은 책을 읽으며 감상문을 쓰는거다.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며 내 생각을 정리한 지도 어느덧 7년이 되어 간다. 감상문을 쓰는 시간은 단순히 기록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을 마주하고 다듬는 시간이다. 특히 어둑한 밤의 고요 속에서 쓰는 글은 하루를 버틸 힘을 채워주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내 주변이나 SNS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 저자는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무슨 글쓰기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을 멈추게 하는 것은 타인의 말보다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일 때가 많다.

가장 오래 붙잡고 읽었던 문장도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나를 멈추게 한 건 그들의 말이 아니라 지레 겁을 먹은 나 자신이었다."
나 역시 누가 틀렸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혼자 작아질 때가 많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실패를 먼저 상상하며 뒷걸음질 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문장은 지금의 나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다. 지레 겁먹지 말고 한 걸음 내딛으라는 응원처럼 들렸다. 책을 읽으며 또 하나 마음에 남은 것은 기회에 대한 태도였다.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는 일단 붙잡아 보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보고 아니라면 내려놓으면 된다. 하지만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내 길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마침 나도 다시 시작하는 일이 있다. 지금이 아니면 또 미루게 될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첫발을 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가 더욱 현실적인 위로가 되었다.

저자의 글은 차분하면서도 명료하다. 담담한 문장 속에 삶을 꿰뚫는 통찰이 있어 자연스럽게 필사하게 된다. 말에는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듯 글에도 사람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저자에게 글쓰기가 치유이자 삶을 충전하는 통로였다면, 나에게는 아직 감상문이 그런 역할을 한다. 책을 읽고 그 안에 내 생각과 경험을 덧붙여 쓰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이 조금씩 정리된다. 난중에는 내 이야기를 하고싶은 날도 오겠지하면서.

이 책은 글쓰기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자신을 어떻게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를 함께 고민하게 하는 책이었다. 나 역시 언젠가는 감상문을 넘어 나 자신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 그 시작도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레 겁먹지 않고 오늘 한 줄을 써 내려가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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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단편선 소담 클래식 8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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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단편선》 도스토옙스키 지음 / 이은연 옮김 #소담 #도스토옙스키탄생205년

고전은 오래 살아남은 책이 아니라, 오래도록 인간을 설명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의 고뇌와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도스토옙스키 탄생 205주년을 맞아 다시 읽히는 <백야>를 비롯해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 <첫사랑>이 실린 이 단편선 역시 인간이라는 존재를 끝까지 추적한 기록처럼 다가왔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시선은 사회의 가장 낮은 곳을 향하지만, 정작 그가 들여다보는 것은 가난 자체가 아니라 가난 속에서도 흔들리는 인간의 영혼이다. 돈이 없다는 사실보다 더 비참한 것은 존엄을 잃어가는 과정이며, 외로움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자신조차 자신을 믿지 못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인간을 향한 오랜 사색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작품은 <백야>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사랑의 성공과 실패를 말하는 소설은 아니었다. 홀로 공상에 잠기는 기분, 고독을 즐기는 주인공이 현대의 인간의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사랑을 소유로 증명하려 하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진심으로 사랑했던 시간 자체가 한 사람의 삶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나스첸카와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애틋한 것일까. 현실은 주인공에게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았지만 그는 끝내 그 사랑을 원망하지 않는다. 문득 우리의 삶도 결과를 움켜쥐려 할수록 공허해지고, 지나간 시간을 감사할 줄 아는 순간 비로소 풍성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는 인간의 우스꽝스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웃음 끝에는 씁쓸함이 남는다. 질투와 열등감,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특별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안에도 존재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를 제법 이성적인 사람이라 여겼다. 질투나 인정욕구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작품 속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니 결국 나 역시 다르지 않은 인간이었다. 욕망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마주하기 전까지는 자신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인간의 연약함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끝까지 응시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못하게 만든다.

책을 덮고 오래 생각했다. 인간은 생각보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누구나 상처를 품고 살아가며, 그 상처는 사랑이 되기도 하고 욕망이 되기도 하며 때로는 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론을 내리는 일이 아니라, 끝없이 질문을 이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도스토옙스키를 읽는다는 것은 한 권의 소설을 읽는 일이 아니었다. 인간을 읽고, 결국 나 자신을 읽는 일이었다. 시대는 변했고 세상은 풍요로워졌지만 인간의 외로움과 결핍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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