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부모가 반드시 알아야 할 사춘기 대화 수업
정현숙 지음 / 팬덤북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명한부모가반드시알아야할사춘기대화수업_정현숙 #팬덤북스

나는 아이와의 대화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관계의 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자연스럽게 스킨십은 줄어들고, 표현은 어색해진다. 아이는 낯간지러워하고, 부모 역시 다가가는 방법을 잃기 쉽다. 나 또한 사춘기를 겪었지만 그때의 감정이 또렷하게 남아 있지 않기에, 부모로서 아이를 이해하려면 의도적인 배움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스스로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기에 더더욱 배우고 실천하려 한다. 각자 바쁘고 서로에게 무심했던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나 역시 무뚝뚝한 부모가 되어 놓치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아이에게만큼은 집이 편안한 안식처이자 안전한 공간으로 남기를 바란다. 밖으로 밀려나는 곳이 아니라, 언제든 돌아와 기대고 쉴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책은 부모와 자녀 간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반복해서 강조한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 가장 먼저 만나는 작은 사회이자 연습의 장이다. 나의 경우 부모와 깊은 대화를 나눈 기억이 많지 않다. 고민이 생기면 친구에게 의지했고, 방향을 잡아줄 어른의 역할은 부재였다. 그래서인지 늘 막연한 불안과 혼자라는 느낌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가족 간 대화가 많은 집은 분위기부터 남달랐다. 공기가 부드럽고 서로를 존중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가정에서의 대화가 단절되면 관심은 자연스럽게 바깥으로 향한다. 서로의 삶에 무심해지고, 연결의 끈은 점점 희미해진다. 반대로 대화가 살아 있는 가정은 위기의 순간에도 서로를 붙잡을 힘이 있다. 누군가 지치거나 흔들릴 때 함께 버틸 수 있는 힘, 그 끈끈함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대화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다.

내가 바라는 양육의 방향은 분명하다.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사람, 상황을 읽을 줄 아는 센스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는 말 그대로 지뢰밭을 걷는 일과 같다. 아무렇지 않던 대화도 한순간 감정이 나빠질 수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감정 조절이다. 순간의 화를 참고,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읽어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말 한마디,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는 표현이 결국 아이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든다. 사춘기에 형성된 자아존중감은 성인이 된 이후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번 책을 통해 나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다시 배우게 되었다. 단순히 아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실천하는 부모가 되고 싶다. 아이에게 건네는 한 문장, 한 태도가 결국 아이의 세상을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엔도 슈사쿠 지음, 송태욱 옮김 / 포이에마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엔도슈사쿠의문학강의 #포이에마

<엔도 슈사쿠의 문학강의>는 강연을 엮은 책이기에 문장은 비교적 담백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유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20세기 유럽문학 속 그리스도교의 흐름을 짚어가는 과정에서,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만든다. 나는 예전에 <침묵>을 읽으며 느꼈던 묵직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도 그랬지만, 이번 책에서도 ‘순교자를 존경할 수는 있어도 배교자를 함부로 경멸할 수 없다’는 그의 시선에 오래 머물렀다. 신앙을 지키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무너진 사람을 이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에 더 오래 남는다.

어릴 때의 나는 더 많이 쥐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관계도, 감정도, 기회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내려놓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마음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무거워지면, 버티기보다 덜어내는 쪽을 택하게 된다. 너무 힘들면 놓는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하나둘 내려놓는다. 그리고 때로는, 누군가도 나를 버거워하면 그 손을 놓는다. 그것이 비겁해서가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선택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일까. 버리지 않는다는 엔도의 태도는 이해하면서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지점으로 남는다. 그의 글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인간, 무너진 인간, 죄 속에 있는 인간까지도 외면하지 않는다. 책 속에서 말하듯, 인생은 반짝이는 것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기에 버려서는 안 된다는 문장은 단순하지만 깊게 박힌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것들까지 끌어안는 태도, 그것이 그가 말하는 신앙의 한 모습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너그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옹졸해지는 순간들이 많다. 긍휼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점점 더 체감하게 된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마음을 떠올릴 때마다, 나 자신의 작음과 한계를 더 선명히 보게 된다. 그는 아름답고 온전한 것만 향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외면하는 곳으로 향한다. 더럽고, 상처 입고, 무너진 자리로 다가간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그리스도교 문학이 단순히 신앙을 말하는 글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을 끝까지 파고들어 결국 신을 마주하게 만드는 여정에 가깝다. 일반 문학이 인간의 고통과 죄를 그려낸다면, 그리스도교 문학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인간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무너진 자리에서조차 다시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내내 공감하면서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내가 아직 붙들지 못한 질문들이 남아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내가 고심끝에 놓아버리는 나의 선택들 앞에서, 무엇을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지 다시 묻게 된다.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질문 하나를, 오래 마음에 남기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엔도 슈사쿠의 문학 강의
엔도 슈사쿠 지음, 송태욱 옮김 / 포이에마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엔도슈사쿠의문학강의 #포이에마

<엔도 슈사쿠의 문학강의>는 강연을 엮은 책이기에 문장은 비교적 담백하지만, 그 안에 담긴 사유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20세기 유럽문학 속 그리스도교의 흐름을 짚어가는 과정에서,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게 만든다. 나는 예전에 <침묵>을 읽으며 느꼈던 묵직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도 그랬지만, 이번 책에서도 ‘순교자를 존경할 수는 있어도 배교자를 함부로 경멸할 수 없다’는 그의 시선에 오래 머물렀다. 신앙을 지키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무너진 사람을 이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에 더 오래 남는다.

어릴 때의 나는 더 많이 쥐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관계도, 감정도, 기회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내려놓는 법을 배우게 된다. 마음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무거워지면, 버티기보다 덜어내는 쪽을 택하게 된다. 너무 힘들면 놓는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하나둘 내려놓는다. 그리고 때로는, 누군가도 나를 버거워하면 그 손을 놓는다. 그것이 비겁해서가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선택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서일까. 버리지 않는다는 엔도의 태도는 이해하면서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지점으로 남는다. 그의 글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인간, 무너진 인간, 죄 속에 있는 인간까지도 외면하지 않는다. 책 속에서 말하듯, 인생은 반짝이는 것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기에 버려서는 안 된다는 문장은 단순하지만 깊게 박힌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것들까지 끌어안는 태도, 그것이 그가 말하는 신앙의 한 모습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너그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옹졸해지는 순간들이 많다. 긍휼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점점 더 체감하게 된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마음을 떠올릴 때마다, 나 자신의 작음과 한계를 더 선명히 보게 된다. 그는 아름답고 온전한 것만 향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외면하는 곳으로 향한다. 더럽고, 상처 입고, 무너진 자리로 다가간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그리스도교 문학이 단순히 신앙을 말하는 글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을 끝까지 파고들어 결국 신을 마주하게 만드는 여정에 가깝다. 일반 문학이 인간의 고통과 죄를 그려낸다면, 그리스도교 문학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인간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무너진 자리에서조차 다시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내내 공감하면서도 어려웠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내가 아직 붙들지 못한 질문들이 남아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내가 고심끝에 놓아버리는 나의 선택들 앞에서, 무엇을 끝까지 붙들어야 하는지 다시 묻게 된다.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질문 하나를, 오래 마음에 남기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의 집 정원 구경 - 사적인 정원 16곳에서 배우는 가드닝 노하우
박희영(양평서정이네) 지음, 박원순 감수 / 클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의집정원구경_박희영 #출판사클

남의 집 정원 구경을 읽었다. 나는 그저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랜선 동물·식물 집사’에 가깝다. 직접 가꾸고 키우는 일에는 서툴고, 솔직히 큰 흥미도 없었다. 식물을 들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어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스스로를 완전 'T형 생활러’라 여겨왔다. 그런 내가 요즘은 먹는 채소를 조금씩 키우며 소소한 기쁨을 느끼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그런 내 마음을 정확히 건드렸다. 잘 가꿔진 ‘남의 집 정원’이라니,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것 같았다.
새벽 러닝을 하며 한강으로 향하던 길, 표지 속 정원처럼 잘 꾸며진 공간에 잠시 머문 적이 있다. 김밥 한 줄과 요구르트를 곁에 두고,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으며 앉아 있으니 과장 없이 지상낙원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게 정원을 가꿀 공간은 없지만, 아주 먼 훗날의 가능성을 조용히 상상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정원에 머무르지 않고, ‘남의 집 정원 구경’이라는 이름으로 이웃의 정원 16곳을 담아낸다. 전국을 누비며 기록한 정원들은 사진뿐 아니라 평면도까지 함께 실려 있어, 독자가 직접 그 공간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구조와 흐름까지 읽게 만드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중에서도 장미로 가득한 ‘우드베일리 가든’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겹장미 ‘자르댕 드 프랑스’는 화려함과 단정함을 동시에 지닌, 오래 시선을 붙잡는 매력이 있었다.

최근 이사를 하며 집 안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어 DIY 그림으로 장미와 해바라기를 채색하고 있다. 꾸미기꽝인 내가 조금씩 미감여사가 되어가는걸까? 나의 정원을 가질 수 없다면, 시선이라도 머물 수 있는 풍경을 실내에 들이고 싶은 마음이다. 예전에는 '왜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꽃을 가꿀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그 질문이 조금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사람은 결국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통해 마음을 정돈하고, 그 안에서 위안을 찾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선은 자연스레 더 선별적으로 변한다. 소란한 뉴스와 복잡한 정세 속에서, 오히려 단순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더 오래 바라보고 싶어진다. 이 책은 그 욕구를 자극하는 동시에, ‘가꾸는 삶’에 대한 거리를 조금 좁혀준다. 당장 정원을 만들 수는 없더라도, 무엇을 보고 싶은지, 어떤 풍경 속에 머물고 싶은지는 선택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이 남기는 것은 동경이 아니라 방향이다. 남의 집 정원을 구경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언젠가 나만의 작은 풍경을 만들고 싶다는 구체적인 마음. 그 마음이 생겼다면, 이미 절반은 시작된 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종과 함께한 사람들
강현규 지음 / 메이트북스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종과함께한사람들_강현규 #메이트북스

<단종과 함께 한 사람들>을 읽었다. 얼마 전 16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온 터라, 단종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영화 속 장면들이 어디까지 사실과 맞닿아 있는지,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사람들의 선택은 어떤 결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무엇보다 단종과 혼인했지만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낸 정순황후의 삶까지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단종과 함께했던 11인의 이야기는 신의에 대한 이야기였고, 나는 그 신의를 내 삶과 연결해 보고 싶었다.

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저울질하기보다는 조금 손해를 보는 쪽을 택해왔다.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그 순간만큼은 진심을 다해 내어주려 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맞다고 믿었고, 그것이 나름의 기준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크게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만난 사람들은 내가 생각해온 기준보다 훨씬 더 깊고 무거운 선택을 하고 있었다. 특히 엄흥도의 이야기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었다. 그것은 단순한 충성이나 의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가문이 몰락할 수도 있고, 식구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자리에서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그 대목에서 오래 멈춰 있었다. 나는 손해를 감수하는 선택을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손해였다. 나도 마음쓸때에는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할때가 있다. 그러나 엄흥도의 선택은 삶 전체를 내놓는 결단에 가까웠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그저 강물에 떠내려가겠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는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감행했을까. 두려움이 없었을 리 없고, 망설임이 없었을 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동했다. 말이 아닌 삶으로 신의를 지켜낸 것이다.

만약 그때 단종의 시신이 거두어지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훗날 숙종이 단종을 복위시키려 했을 때, 그 허망함과 탄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24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영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기억을 통해 단종의 묻힌 곳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은 또 다른 의미의 신의처럼 느껴졌다. 한 사람의 충성과 한 지역 사람들의 기억이 역사를 이어낸 셈이다.
단종의 삶은 짧고 비극적이었다. 그러나 정순황후의 삶은 그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길고 고단했다. 열여덟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남편인 단종마저 사약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상실 이후의 삶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다. 매일 동이 트기 전 동쪽을 향해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슬픔이었을 텐데, 그녀는 끝내 삶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에서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신의를 지킨다는 것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을 거두지 않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동안 손해를 감수하는 선택을 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통해 그 선택의 깊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앞으로도 나는 여전히 손해를 감수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다만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그 선택의 무게를 더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 계산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끝까지 지켜내는 마음.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더 붙들고 살아가야 할 기준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