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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 - 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 ㅣ 처음 만나는 세계 시리즈 1
채은미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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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교양은 늘 친하지 않았다. 교양서적을 펼칠 때면 머릿속에 미세한 장벽이 생겼고, 특히 수학이 섞이면 그 장벽은 거의 벽처럼 느껴졌다. 양자역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이미 머리가 복잡해지고, 왠지 내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채은미 교수의 <처음 만나는 양자의 세계>는 그런 나의 인식을 부드럽게 무너뜨렸다.
이 책은 과학을 낯설고 어려운 언어가 아닌, 우리 일상과 연결된 이야기로 끌어온다. 저자는 물리학을 전공한 학자이지만, 과학을 말할 때조차 문학적 감수성을 잃지 않는다. 양자역학의 기본 개념인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불확정성 원리, 양자 중첩과 얽힘 같은 어려운 용어들을 친절한 비유로 풀어내며, 마치 철학책을 읽는 듯한 사유의 깊이를 전한다. 조금 더 쉽게 풀이하려고 해서 그런지 나도 술술 읽혔다.
읽으며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불확정성 원리’의 철학적 의미였다. 우리는 늘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하려 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양자 세계의 법칙은 명확하게 말한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며, 우리는 그 불확실성 위를 걸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존재의 자연스러운 상태다.
불확실성은 과학의 언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은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관계, 감정, 선택, 미래 — 그 어느 것도 완벽히 측정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을 이야기하면서도, 인간의 삶을 말한다.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도 사유하고, 선택하고, 나아가는 태도가 곧 ‘양자적 삶’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읽는 내내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불확실성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다. 뭔가 확실하지 않으면 불안한 사람인데 그것에 대한 이해를 끌어올렸다. 낯선 양자의 세계를 가까운 세계임을 알려주었다.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내일의 일조차 알 수 없는 시대다. 그러나 저자는 불안 대신 이해를, 두려움 대신 호기심을 제안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하는 과학의 태도는, 불확실한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의 태도와 닮아 있다.
이 책은 차가운 과학을 따뜻한 언어로 번역한다. 이해보다 공감이 먼저 오고, 논리보다 통찰이 더 깊다. 양자역학의 수식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 안에 담긴 세계의 질서와 인간의 삶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가는 우리의 여정, 그 흔들림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어쩌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매일 살아내는 ‘양자의 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