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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않은 쌍둥이 - 프란츠 카프카 x 에곤 실레 ㅣ 세계문화전집 2
프란츠 카프카.에곤 실레 지음, 홍선기 엮음 / 모티브 / 2026년 6월
평점 :
《만나지 않은 쌍둥이》프란츠 카프카×에곤 실레
#세계문학전집 #소설가홍선기엮음 #모티브
프란츠 카프카와 에곤 실레. 이 두 예술가가 동시대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만났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홍선기 소설가가 엮은 《만나지 않은 쌍둥이》를 펼쳐 카프카의 문장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그 틈새로 에곤 실레의 뒤틀리고 날 선 그림들이 다음장에 한몸인양 떠오른다. 마치 만나지 않았어야 할 두 사람이 운명적인 쌍둥이로 다시 태어난 것만 같다. 그들의 작품이 겹쳐지는 순간 발생하는 기묘한 시너지는, 각자가 짊어졌던 실존적 불안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독자의 마음을 강렬하게 두드린다. 나는 왜 이런 고통과 아픔이 있는 글과 그림에 끌리는가. 카프카의 문장 속에는 늘 서늘한 공기가 감돈다. 그것은 그가 평생 굴레처럼 짊어져야 했던 아버지의 압도적인 권위, 그 거대한 벽 앞에서 느끼던 무력감이다. 실레의 그림 역시 다르지 않다. 왜곡된 신체와 비틀린 선들은 그가 내면 깊숙이 간직한 불안정한 마음을 여과 없이 토해낸다.
나 역시 카프카의 마음을 뼈저리게 이해한다. 나 또한 그처럼 무서운 아버지 아래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세상에 태어나 가장 처음 마주하는 '절대적인 세계'이기에, 그곳에서 경험한 정서적 학대는 단순히 지나간 기억이 아니라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내 내면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신체적 학대도 물론 절대 용납될 수 없지만, 정서적 학대가 얼마나 정신과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자아를 파괴하는지 모른다. 카프카에게 글쓰기는 단순히 예술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라는 거대한 성채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독립시키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었다. 아버지를 향한 결핍과 갈망, 그럼에도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역설적이게도 아버지가 유일하게 자신을 인정해 줄 것이라 믿었던, 그래서 세상에 붙잡아 두는 유일한 끈이자 도구였다. 실레의 삶 역시 어린 시절 매독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며 가정이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 피어났다. 그들에게 예술은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여기서 문득, 왜 인류가 추앙하는 거장들은 한결같이 가혹한 삶을 살다 갔으며, 생전에는 이해받지 못하고 하대받다가 사후에야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는 것일까. 이는 마치 90년대 대중문화 전성기 시절, 당시에는 과격한 퍼포먼스나 파격적인 스타일로 대중의 비난과 멸시를 받았던 스타들이 현시대에 이르러 '시대를 앞서간 아이콘'으로 재조명되는 현상과 기묘하게 닮아 있다. 당시의 대중은 그들의 독창성을 소화할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비난으로 응대할 수밖에 없었다. 당대에는 설명할 수 없었던 고통과 파격이, 시대의 흐름이 한참 뒤에야 그들의 보폭을 따라잡으면서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술가의 고통은 시대를 앞서가는 결핍을 미리 앓는 것과 같다. 그들은 너무 일찍 미래를 보았고, 너무 깊이 자신의 내면을 파헤쳤기에 동시대인들에게는 그저 '불온한 예술가'로 치부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은 그들의 날 선 아픔을 서서히 본질적인 가치로 정제해낸다. 사후의 재평가란 그들을 뒤늦게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비로소 그들의 고통을 견디고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졌다는 방증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인생의 중대한 갈림길에서 곤란한 결정의 순간을 맞이한다. 이 사람이 없으면 안 될 것 같고, 이 선택을 하지 않으면 삶이 무너질 것 같은 절박함 속에서 우리는 흔들린다. 실레가 그랬듯, 인생은 예측 불가능한 미로와 같다. 분명 이 인연이 아니면 못 살 것 같은 순간에도, 어떤 운명의 쳇바퀴는 전혀 다른 곳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사람이 삶을 바꾸기로 결심할 때, 정신 또한 180도 완전히 뒤바뀌는가보다. 열일곱 살의 실레가 자신의 그림을 들고 클림트를 찾아갔던 그 용기는, 인생의 길잡이를 만나는 동시에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의지의 시작이었다.
카프카가 문장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듯, 실레가 붓 끝으로 자신의 실존을 증명했듯, 우리 또한 각자의 불안을 삶의 기록으로 승화시키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순간, 나는 나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볼 용기를 얻는다. 아버지라는 거대한 권위 아래 억눌려 있던 나의 과거도, 이제는 나만의 문장으로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만나지 않은 쌍둥이인 두 사람의 내면을 마주한다. 시간이 흘러 내 삶 또한 누군가에게 재평가될 수 있을 만큼 치열했는지, 혹은 그 치열함 자체가 나를 구원했는지 거장들의 그림자를 좇아본다. 오늘날 우리가 그들을 보며 위로를 얻는 것은, 그들이 비로소 우리 시대의 고통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