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글쓰기 #제프고인스지음 #박일귀옮김 #CUP 나의 글은 책을 본격적으로 읽은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누구와 대화해도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도 삼천포로 빠지며, 조리있게 말하지 못하는 건 머릿속에 생각정리가 안되고 조금의 소심함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읽은 책을 독후감을 써보자에서 시작된 독후감이었다. 어려운 건 내 머릿속에 하고싶은 얘기는 많으나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다. 제프 고인스가 말하는 글쓰기는 무얼까? 내가 생각하는 작가의 기준은? 몇권을 냈다고 다 작가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무용으로 보면 그 단계마다의 라인이 있다. 어느정도의 지점에서 넘어가다보면 초, 중, 고급의 단계처럼 작가도 그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정의를 조금 바꿔주는 책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 모두가 작가이다. 너두 나두 야~나두. 책을 읽으며 좋은 건 유연한 사고를 하게끔 이끌어준다.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을 바로 깨부셔주면서 다른 세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생각의 전환을 주는 다른이의 목소리가 담긴 책이 좋다. 하지만 제프 고인스가 말하는 작가란 내가 생각했던 것과 180도 다르게 말한다. 작가라고 자신을 믿는 순간부터 작가가 된다. 자신이 작가가 되었다고 믿어질때까지 작가라고 하라니. 글을 쓰면 그 글은 마무리를 해야한다. 꾸준히 써야하는 것.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야하는 게 중요하다. 좋은 작가는 끊임없이 훈련한다. 글이 완성될 때까지 다듬고 또 다듬는다. 독후감 쓸때에도 간혹 단어를 틀리게 쓰는 경우가 있는데 몇 번을 다시보고 글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맞게 고치기도 해야겠다. 퇴고의 과정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야겠다.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으로 전적으로 필요치 않는 단어가 아니면 장황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쓸데없는 추가의 글이나 관형사는 쓸모없는 표현이니 지워야 한다. 첫 책을 내기 위해 작가가 구축해야 할 것들에 관해 적어놓았다.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으로 작가의 길의 발돋움이 되어준다. #너두나두작가 #전보다작가라는단어가가깝군
#아쿠타가와류노스케 #청춘 #최고은옮김#북다 #교보문고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처음 접해 본 일본작가이다. 1892년 일본 도쿄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일본의 소설가이며 스승은 나쓰메 소세키이다. 익히 들어 본 제목으로는 <라쇼몽>이며 <코>가 나쓰메의 극찬을 받으며 문단진출의 기회를 얻었다. 항상 막연한 불안으로 인해 자살을 생각했던 그는 1927년에 부인의 동창생으로 자신의 비서로 있던 히라마쓰 마쓰코와 동반자살을 약속했으나 여자의 변심으로 실패했다. 3개월 이후 그는 사이토 모키지로부터 치사량의 수면제를 먹고 자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죽음은 관동대지진과 맞먹을만큼의 사회적 충격이었다. 더욱 놀랐던 건 담배를 몹시 좋아해서 하루에 180개비씩 피웠다고 한다. 주로 단편소설을 썼으며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현재까지도 인정받고 있다. 짧은 단편이지만 읽고난 후에 굉장히 여운이 많이 남는 임팩트있는 소설이라고 느꼈다. 게사와 모리토라는 단편은 게사에게 모리토는 남편을 죽이겠다고 선포한다. 게사와 함께 죽이자고 공모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원래는 게사의 반응을 살피며 어떤건지 알아보기 위한 것인데 의욕이 너무 앞서갔다. 그 어두운 밤에 게사와 약속을 해버렸지만 이내 이런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혼돈에 사로잡혔다. 약속은 했지만 역으로 남편이 모리토를 죽이러오는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걱정으로 휩싸여있는것은 모르고 게사는 머리맡에 있는 등잔불을 꺼버린다. 귤이라는 단편에서는 잔뜩 부르튼 볼을 가진 시골소녀가 잘 열어지지도 않은 기차의 창문을 열려고 낑낑댔을때에 그 느낌이 상당한 묘사로 그 자리에 있는듯한 느낌이 들정도였다. 간혹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날이 너무 덥거나 바깥공기를 들이마시고 싶을때에 나도 모르게 터널인것을 생각못하고 창문을 열어버린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가 차안을 꽈악채우는 느낌이 드는데 이 소녀도 터널로 진입한 순간에 묵직한 유리창을 힘껏 아래로 내려본다. P.45 그리고 그 네모난 구멍을 통해 검댕을 녹인 듯 시커먼 공기가 갑자기 숨막히는 연기로 변해 차 안에 자욱하게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온 연기가 내 온몸 구석구석에 들어온 듯한 불쾌감을 자아낸다. 그 연기로 인해 나의 정신도 피폐해지는 느낌이다. 단편 하나하나가 이렇게 사람의 심리를 자세히 그려넣을 수 있구나. 손에 뗄수가 없을정도로 흡입력과 몰입도가 상당하다. 12편의 단편은 그의 마음과 같은것인가 청춘인 젊은 날에 쓴 글인데 달필이 되려면 삶은 고달프고 힘겨워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P.113 하지만 산책을 나가는 것 자체가 내게는 두려운 일이었다. 내 방의 문밖으로 나가는 것,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일조차 내 신경은 견딜 수 없던 것이다. 우울하고 마음이 심연으로 가라앉을때에 걷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무기력과 몸도 쇠약해지면 산책이 좋다는 것도 알지만 한발짝 나가는 것도 도전일 것이다. 아무일도 아무것도 아닌것조차 날카로워질테니까. 짐짓 나를 짓누르는 무언가에 힘을 낼 수 없었을때에 바닥과 나는 하나가 된 듯 했다. 불안이 항상 내재되어 있는 건 인간의 기본탑재인 것 같다. 청춘의 고뇌가 담긴 책으로 나는 그의 세계를 여행했다.
#감으로읽고각으로쓴다 #김미옥지음 #파람북 저자는 활자중독자, 독서선동가로 불리는 서평가이자 문예평론가이다. 여기저기 이사다니며 이방인같은 마음이 나와같았다. 힘든히기에 그녀를 붙들어주는 것은 읽기였고, 그녀를 세운것은 글쓰기였다. 촘촘하고 첨철한 그녀의 글이 좋다. 사람냄새나는 그녀의 글이 참 좋다. 서평가의 책을 읽는 이유는 내가 왜 읽고 쓰는가 나의 정체성도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순간도 책을 놓지 않은 순간들. 그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빛나는 그녀를 만든것이 아닐까. 책을 읽으며 세상과 소통하고 글쓰기를 통해 치유되는 그녀의 글을 읽으니 나도 치유되는 것 같았다. 고유영역에서의 성실함과 진솔함으로 꾸준히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는 사람의 인생은 괜찮게 산 삶이라고 말한다. 쓰기의 표현이 와닿는 표현들이라 좋았다. 그녀가 읽은 아라이 유키의 <말에 구원받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읽은 후 말에 대하여 큰 공감이 갔다. 사회에서 모두에게 일어날법한일들은 '자기 책임'으로 돌리며 타인이 느낀 고통에 무감각한 공감이 없는 현시대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이다. 남의 슬픔과 아픔을 공감하기보다는 다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무조건적인 '자기 책임'으로 인하여 상대를 배척하는 것이다. 정말 사소한 것들도 다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모든것을 니가 거기에 있던 탓이라고 돌리는 것도 문제이다. 어릴때부터 책과 가까이한 그녀는 어른이 되어 큰 깨달음을 얻었던 경험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책읽기를 할때에 '닥치고 읽기'이다. 스스로 읽게 하는것이 독서의 가치를 인식하게 하는것이라는 것. 책읽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게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어떤 책이 좋은 책이고 나에게 분별해서 읽으라고 했지만 나는 여태 읽어낸 책중에 쓸모가 없는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 책안에는 각자만의 서사가 있기때문이다. 불과 얼마까지만 해도 필요없는 책, 읽을 필요없는 책이라며 내 마음대로 제단하기도 했는데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가장 좋은 책이다. 그녀의 책에 대한 생각과 글은 좋았다. 어떤 책이 좋은 책이냐고 묻지 마시라. 지금 읽고 있는 책이 가장 좋은책이다. 미오기작가의 책처럼.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듯이 책, 옷은 나에게 그런것이다. 간혹 책이 나에게 오는데 그녀도 그랬다. 책은 찾아오는거라고. 김미옥작가의 책도 그렇게 나에게 찾아왔다.#김미옥체
#죄책감과작별하는부모 #서유지지음 #리얼러닝 첫째가 어린이집을 가고 둘째가 태어나면서 부모교육강의는 틈틈히 들었었다. 아이를 키우는 양육방식, 사는방식이 다 다르지만 부모양육에 관한 것은 읽어보려 한다.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저자를 만났다. 자녀중심의 교육이 많은데 "부모"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그런건지 좋았다. 자녀에게 어떻게 해주었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자녀교육서와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런책은 읽으면서도 내가 현재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도 부족해보이고 작아지기 마련이다. 나는 왜 저 엄마처럼 못할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우울해지기 십상이었다. 부모마다의 자녀키우는 방식이 다 틀리기 때문인데 나의 부족한 부분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부족한 것을 인정하며 현재를 '이정도면 괜찮으며 충분한'부모로써 나를 인식하며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부모가 되야겠다. 훈육과 혼내는 것에 대해 한동안 구분이 안되어서 이도저도 안됐었던 게 사실이었는데 올바른 훈육으로 잘못된 행동을 올바로 고치도록 해야한다. 명료하게 가르치고 차분히 말해주기. P.116 지혜로운 힘을 가진 부모는 자녀에게 생각과 표현의 자유를 줍니다. 자녀가 자신의 감정을 다룰 수 있게 생각과 욕구를 표현하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자녀가 책임감있는 사람으로 크기 위해서 아이에게 너무 잘못된 것만 지적하지 않고 너그러운 부모가 되야겠다. 한번 지적하게 되면 끝도없이 잔소리 시전하고 듣기싫은 소리를 늘어놓기가 일쑤인데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에게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제해결에 있어서 여러방향을 제시하는 부모, 너그러운 부모가 되야겠다. 아이가 실수하면 나도 모르게 깊은 탄식의 한숨과 표정이 나오는데 그것들도 고치도록 의식해야겠다. 나에게 어려운 건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인데 어릴적 자라면서 부모와 많은 대화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의식적으로 대화를 하지 않으면 대화가 안되기에 노력한다. 책을 읽어주는 것도 문해력을 키워주기 위해 읽어주기도 하지만 아이와 책을 매개체로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책으로 소통하기도 한다. 아이키우다보면 의기소침해지고 작아질때가 간혹있다. 내 양육방식이 잘못되어 있는것은 고치고, 잘하고 있다며 저자가 내 등을 토닥토닥여주는 느낌이었다. 나는 내 선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하는데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에 번아웃이 오는데 이 책을 통해 조금 여유로운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좋았던 건 자녀양육서가 아닌 부모지침서여서 좋았던 거다. 그간 저자가 어떤 강의를 하고 아이를 키웠는지를 알기에 책의 내용이 더 와닿았다.
#그리스도의중재 #토마스F토렌스지음 #김학봉옮김 #사자와어린양 토마스 F.토렌스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신학자"중 한명이다. 부모님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에서가 아닌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중국내지선교회 파송 선교사인 토마스 로렌스와 애니 엘리자베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20세기 현대 영국 신학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번역에는 아신대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학봉교수의 번역으로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표지의 그리스도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로 ' 판토크라토르(Pantocrator: παντοκράτωρ)'는 만물의 통치자, 전능자라는 뜻이다. 오른쪽얼굴인 엄숙하고 근엄한 신적속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굽혀진 세손가락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펴진 두손가락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보석이 장식된 복음서를 들고 있다. 책의 목적은 학생, 목회자, 교회 지도자가 복음을 신학적으로 이해하는데 있지만 일반성도인 나도 계시ㆍ화해ㆍ성육신에 관하여 저자가 말하고 있는 과학적ㆍ삼위일체적 탐구에 대해 알아보았다. 인간과 하나님의 중재자인 예수님은 우리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기에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조건없이 복음으로 전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은혜이다. 완전한 인간으로오신 그리스도는 중재자로써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깊게 새기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방식으로의 구현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고통을 받아야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오셔서 예수님안에서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이 완전히 일치되어 예수님의 한 인격으로 불가분하게 연합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계시를 인간에게 적합하게 전달한다. 하나님이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안에서 길과 진리이자 생명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친밀히 인간에게 오셨다. 하나님의 존재안에 있는 성자와 성부가 있다는 사실이다. 복음의 모든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이다.복음을 이해하고 삼위일체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의 본성 자체이자 계시 그 자체이다. 하나님과 인간을 잇는 중재자로써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맥락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온전한 길을 그리스도께서 열어주셨다.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주신 그리스도는 옛자아를 짊어지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순종을 통하여 인간을 대신하였다. P.237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성령의 중재를 통해서만 성부와 교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속죄와 삼위일체가 그리스도교 복음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삼위일체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구원의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행하신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