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어휘 공부 - 나의 말과 글이 특별해지는
신효원 지음 / 책장속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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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어휘공부 #신효원지음 #책장속북스 #어휘를채워내삶의밀도를높이는법

나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쓸때의 문장과 글을 보면 여간 단조로운 게 아니다. 깊이는 둘째치고 어휘력이 부족하다보니 쓰는 단어는 한정되어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못알아듣는 단어나 복잡한 단어를 이리저리 짜깁기해서 쓰기는 싫다. 전에도 말했지만 글을 너무 잘 쓰려고 하면 문장의 조합이 질서없이 꾸며대기만 하면 더 꾸미려다가 볼품없는 글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리뷰를 쓰는 지금도 혹여 내가 맞는 단어를 쓰는지 네이땡에 찾아봐서 단어검색 후 적절한지 확인하고 쓰는데 유독 다양한 단어를 쓰지 않는 나에게는 어휘공부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저자는 부사 한두개로 농도만 달리해도 우리 언어의 세계는 풍성하며 무채색의 글에 한 단어에 갖가지의 표현들을 사용해서 우리의 언어세계의 확장으로 섬세하고 밀도있게 감정과 느낌을 표현하는 어휘를 적제적소에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무채색의 언어, 진부하고 뻔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아닌 무지개빛으로 언어의 세계를 확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건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몰랐던 단어는 말할 것도 없이 있었는데 그래도 그 와중에 이 단어도 들어갈 수 있겠다라고 생각해서 책을 넘기며 핸드폰으로 비슷한 단어를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어라? 이 단어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뜻을 찾아보면 옛 어휘와 지금의 어휘가 조금씩 변화하면서 표현법의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면 "간여하다"와 "관여하다"인데 같은 뜻인 줄 알았으나 관여하다는 어떤일에 관계하여 참여함 이고, 간여하다는 어떤일에 간섭하여 참여하다였다. 단어가 나와있는 대백과사전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렇게 ㄱ부터 ㅎ까지 잘 정리되어있는 책으로 읽으니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단어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센스와 다채로운 어휘의 사용으로 삶의 이야기를 밀도있게 풀어나가고 싶다. 내 눈에 들어 온 어휘들은 서늘하다, 어둡다, 비슷하다, 싸우다, 허전하다가 눈에 들어왔는데 좀 더 다양한 언어의 표현이 재미있고 간간했다. 언어세계의 확장으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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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메타포 꿈 - 생애 말 영적 돌봄에 대하여
켈리 버클리.패트리샤 버클리 지음, 윤득형 옮김 / 샘솟는기쁨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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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죽음의메타포꿈 #켈리버클리외1인지음 #윤득형옮김 #샘솟는기쁨 #생애말영적돌봄을위하여

누구든 꿈을 꾼다. 나도 예전에 꿈을 꾸면 칼라나 흑백, 아니면 필름을 빨리 돌리듯이 시간의 속성이 몇배로 빨라져서 깨고 나면 이게 무슨꿈인가 싶을 정도로 다이나믹한 꿈을 꾸기도 했었다. 그런데 꿈이 어떤 나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지는 모르고 그냥 지나친 순간이 정말 많다. 꿈을 매일꾸고 있는 사람이 아닌지라 꿈일지를 써도 완전히 꿈꾼 내용을 기억하지 못해서 꿈의 단락단락만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죽음과 꿈의 연관성은 어떤 것일까? 삶과 죽음의 간접적이고, 암시적인 꿈은 어떤 꿈인지 궁금했다.

죽음과 꿈의 상관관계를 깊이 있게 다루고, 죽음을 앞둔 환자의 가족이나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의 꿈으로 인해 삶과 죽음을 돌아보며, 수용하며, 죽음직전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글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마무리가 중요하다. 죽음을 앞둔 환자의 꿈에 등장하여 보이는 특정의 사물을 확인하여 그것의 의미를 알아내어 환자의 심리나 영적으로 어떠한지를 알게되며 꿈을 꾼자도 해석을 하여 자신의 삶을 마무리한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인간은 꿈을 언제부터 꾸기 시작하는가? 였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그리움을 죽은자의 꿈에서의 방문으로 인해 그 꿈이 주는 의미와 해석은 읽으며 이해를 도왔다. 죽음의 시간을 앞두게 되면 무엇을 목적에 두고 사는가부터 죽음에 다다르고, 죽음을 맞이한 후 사후에 어떻게 될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꿈은 삶과 죽음에 깊은 관계가 있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꿈에 나오는 사람은 생의 끝에 안내자로 죽어가는 자의 급박한 현실에 대한 초기예측이라고 한다. 생애를 끝맺음을 맺는 시점에서 꿈이 죽음을 맞이할때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게되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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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S. 루이스 길라잡이 - 순전한 그리스도인의 초상을 찾아서 에드워즈 루이스 컬렉션 2
알리스터 E. 맥그래스 외 지음 / 세움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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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루이스길라잡이 #일리스터맥그래스외5인지음 #세움북스 #에드워즈루이스컬렉션

`CS루이스 컨퍼런스`가 6년간 서울에서 진행하였는데 6인의 컨퍼런스 논문집을 통해 루이스를 처음 접하거나 루이스를 알고 있으나 그의 면모를 여러방향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논문집을 통해 루이스의 통찰력을 면밀히 볼 수 있었다. 그가 신학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 연구와 탐구하여 입체적으로 다각도로 그를 분석하여 CS루이스길라잡이를 통해 루이스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집이 되겠다.

영적 거장들의 책을 간간히 읽을때면 탁월한 통찰력과 사고의 깊이를 느낄 수가 있는데 거기에 루이스는 목회자나 사역자가 아님에도 뛰어난 변증가이자 신학자였다. 그 외에도 작가, 문학 비평가, 철학가, 실천적 윤리학자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다방면에 뛰어난 그이지만 변증가로써, 철학자로써, 신학자로써의 루이스는 어땠는지 중점적으로 보았다. 하나님의 본질은 존재론적으로 세 위격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의 인격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와 교제 속에 계신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배울점은 날마다 하나님을 알아가려하고, 평신도임에도 신학자못지않은 신학자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그의 통찰력과 신학적깊이가 탁월하다는 것에 있다. 일상이 영성이 요즘 나의 화두인데
일상에 하나님을 배워가고, 힘쓰며 성숙한 신앙인이 되고자 한다.

철학자로써의 루이스는 <고통의 문제>와 <헤아려 본 슬픔> 에서 자신의 고통과 고통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토로하듯 써내려갔다.

P.147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고통을 주시고 고통을 통해 치료를 해 주신다는 것이다.

의사에 비유했는데 의사는 썩은 치아를 자비없이 치료목적으로 도려낸다. 치료하고자 주는 고통이라고 칭하였다.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논문집이나 어려움없이 이해하는데 잘 읽히기도 했다. 루이스가 어떤 인물인지 세부적인 탐구를 통해서 그의 저서를 읽어볼 때에도 큰 도움이 되겠다.

#신간 #기독교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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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는 인간 - 확증편향의 시대, 인간에 대한 새롭고 오래된 대답
박규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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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는인간 #박규철지음 #추수밭

아우구스티누스와 소크라테스의 명언이 나의 마음을 움직인다. 나는 내가 모르는 것을 정말 잘 알고 있다. 내가 옳은것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오류투성이 인간이다. 인간을 이해고, 진리를 탐구하고자 한다면 옛 선인들의 지혜를 알아가게되는 철학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확증편향시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시대에 살고있다. 나부터도 내가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서로 다른 정치적인 생각이나 종교도 서로의 가치만 내세우고 타자에게 이해하라는 태도로 일관한 것을 볼 수 있다.

회의주의에서 의심에서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는가 싶었다. 읽으며 내가 생각하는 삶의 가치와 비슷한 선인들은 누가있는가 보니 '피론'이 추구하는 가치 <초연함, 태연함, 마음의 평안>으로 나에게 꼭 필요한 가치이다. 어떤 상황이 와도 마음의 평안을 추구하는 것이다. 회의주의 사고는 마냥 의심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것과는 다르다. 피론처럼 다른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오직 나에 평정심만 찾는것이 삶의 해답은 아니겠지만 꼭 필요한 삶의 태도인건 분명하다.

흥미롭게 읽었던 챕터는 몽테뉴에 철학이었다. 몽테뉴는 관용의 철학자이자 자비의 원리를 가지고 있는 철학이라 관심이 갔다. 더더욱 흥미로운 것은 피론의 가치를 원하나 몽테뉴의 철학과 반대인데 사람의 마음은 항상 불안해 있지만 마음의 평안과 안정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몽테뉴는 독단적인 확신보다는 지속적인 의심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몽테뉴의 시대는 불행의 시대를 살았지만 관용의 자세를 가지고, 몽테뉴 가족간의 종교가 서로 다르지만 서로의 종교를 존중했다. 사람이 일관된 자세를 취하고 자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참 부럽기도 하다. 중용의 자세를 가지고 상대를 존중하며 내 목소리를 높이는 자세를 몽테뉴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관용적이고 중용의 자세를 취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종교인 이전에 한사람의 사람으로 바라봐주며 공감과 이해가 더욱 필요한 현시점이다. 나부터도 관용이 어렵다. 수용하는것도 어렵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서 벗어나게되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수용적인 태도, 일관성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철학에 대해 깊이 탐이해보려면 소크라테스부터 몽테뉴까지 샅샅이는 아니지만 인간에 대해 또 나에 대해 가치를 찾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모든것을 다 알고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상대를 수용하려는 자세와 관용적인 태도가 절실하다. 공동체보다는 각각 개인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공동체안에서 내 목소리만 내는 것이 아닌, 듣는 자세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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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 문학 읽는 그리스도인
이정일 지음 / 예책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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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문학의숲에서하나님을만난다 #이정일지음 #예책 #문학읽는그리스도인

글쓰기를 기도와 소명으로 삼고, 여러장르의 다양한 책을 통해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문학을 통해 느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신앙적인 것을 캐치하여 자신의 일상에 적용시키기도 한다.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도 감명깊게 읽었는데 이번 책 또한 제목의 이끌림으로 읽게 되었다. 저자는 대학에서 세계문학과 SF소설을 가르치며 전방부대 교회에서 군 선교사로 섬기고 있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문학안에 내재되어 있는 우리네 인생의 녹아들어있는 가치있는 내용을 느꼈을때에 그것을 교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신앙을 세워나가는 것으로 성경의 이야기와 대비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읽으면서 내가 생각치 못한 포인트에서도 그 깊이와 생각을 보며 성경이 아닌 다른 장르의 책을 접할때에 그 속에서 느끼는 것을 성경적으로 풀이하여 문학을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문학을 읽다보면 여러사람의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며 갇혀만 있던 사고에서 다양한 인물의 삶을 통해 간접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신앙이나 신학서적을 읽기도 하지만 균형있는 사고와 타인을 이해하고 깊이있는 사유를 하기 위해 문학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책읽기를 시도하고 실행하고 있다. 고전이 주는 이로움도 있지만 문학은 그 시대를 투영하여 인물을 그려내기 때문에 사실이 아닌 허구의 이야기라도 주변에 있을법한 이야기가 즐비하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느낀것은 책을 읽기전과는 확실히 생각을 하며 나의 생각을 표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P.214 힘들수록 '나'를 잘 살펴야 합니다. 자신을 명확히 아는 건 변화를 위한 시작점에 선 것과 같기에 문학은 언제나 '나'를 들여다봅니다. 내가 어떻게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살핍니다. 내가 바로 서면 내가 걷는 인생길만큼 세상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이게 문학이 꿈을 꾸는 방식이고, 그리스도인이 살아 온 삶의 태도이며,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입니다.

목차에 9권의 소설을 다루고 있지만 챕터 끝즈음에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을 권하고 있다. 책을 읽을때에 머리에 번쩍이고 밝은 빛이 이르면서 다른 생각이 들어가며 기존에 있던 사고방식이나 생각의 틀이 깨어졌을 때 이것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한단계 성숙해지는 기분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묘미가 은근히 있다. 문학을 읽으며 주인공이 내가 되어 하는 상상도 하며 느끼지 못한 감정들은 느끼는 것도 즐거움이라 하겠다.

제 9장 '삶에는 교양이 필요하다'라는 주제인데 거기에서 다룬 신앙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와닿았는데 신앙생활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닌 장거리 마라톤임을 잊어서는 안되며, 성공이 핵심이 아니다. 성공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성공에만 집중하며 바라보며 추구하는 삶은 추후에 꼭 탈이 난다는 것이다. 권위를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가치를 붙들고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란다. 위험을 감지하는 신앙, 가끔은 나를 돌아보며 신앙을 점검하며 나를 돌아보며 모순되지 않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느꼈다.

#문학을읽으며하나님을느끼다 #다양한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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