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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사 ㅣ 소설 음양사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김소연 옮김, 김종덕 해설 / 손안의책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무서움도 초일류급으로 잘 타지만, 그런 이야기도 초특급으로 좋아한다. 이우혁의 <퇴마록>을 읽을 당시, 신혼이었던 나는 남편의 당직때문에 혼자 자야만 했다. 국내편을 읽던 도중 너무 무서워진 나는 그 한밤중에 집을 나와 결혼전에 지냈던 기숙사로 숨어 들었다. 한밤중에 집을 나오니, 환하게 밝혀진 상가들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며 오히려 안심이 됐던 순간을 잊을수가 없다. 난 그날 밤 기숙사로 들어가 옛친구의 이불을 같이 덮으며 귀신으로 부터 도망쳤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무서운 책을 봐야할까 생각도 하겠지만, 이런 퇴마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엔 전설의 고향을 보신 분이면 다 동감하실 것이다. 보지 않으려해도 자꾸만 보게되는 궁금한 이야기. 그러나 음양사는 좀 달랐다. 처음 영화로 접하게 된 음양사. 제목만 보면 제대로 오해하기 쉬운 음양사. 퇴마사라고 했으면 단박에 이해를 했겠지만, 음양사가 뭔지도 몰랐던 그때는 살짝 야한 얘기가 아닌지, 조금은 기대를 했지만 영화는 시작 초반부터 나의 기대는 새로운 기대감으로 영화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랬던 영화가 극장판 음양사에 불과 했었다니, 너무 의외다. 영화를 보고 난후, 난 시시때때로 아베노 세이메이가 읊조렸던 주술을 흉내냈고, 그들이 하는 말투를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따라했다. 고백하자면 이 책을 읽는 순간에도 그들의 말을 흉내내기도 했다.
한 권에 여러이야기의 퇴마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원한을 품은 귀신의 이야기나, 남자의 배신으로 원한이 맺힌 원귀의 이야기나, 글에 깃든 령을 돌려보내는 이야기나, 의도치않게 불사의 몸이 되어버린 인간도 귀신도 아닌자의 이야기들이다.
사물의 근본적인 모양을 묶는 것은, 이름이 아닌가..
주(呪)란 이름이 아닌가 하는 하는 이야기라네..
이름이 있는 모든 것은 모두 주에 묶여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도 그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조차도 주로 묶을수 있다는 이야기는 꽤 철학적인 이야기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꽤 무섭기도 하다. 모든 이름을 가진것은 주에 묶여있다니, 새로운 이론이지만 왠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하기도 하는 낯설지 않은 이 기분은 뭔지.
세이메이는 타고난 퇴마사다. 제 아무리 고약한 요괴도 세이메이에겐 당하지 못한다. 세이메이와 함께 하는 히로마사 역시 무사이지만 용기가 뛰어난 사람이다. 성실근면함의 대명사로 소개되는 히로마사는 세이메이와 함께 하며 온갖것을 경험한다. 그러나 항상 퇴마를 요청해 오는 사람도 히로마사이다. 천황을 '그 남자'를 칭하는 세이메이와 결코 친해지지 못할 것 같은 정직한 사나이 히로마사는 정체를 도무지 알 수 없는 남자 '세이메이'와 진심으로 우정을 나눈다. 세이메이 역시 정직한 사나이 히로마사에게 진심을 다한다. 가끔은 세이메이의 퇴마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가끔은 퇴마에 초를 치기도 하는 히로마사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은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세이메이는 히로마사의 실수를 전혀 탓하지 않고 이미 실수 할 것에 대한 준비도 해 두는 치밀함을 보이며 지극히 인간적인 그의 실수를 이해하며 때로는 그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여러가지 이야기 중, 하나를 소개해 본다.
천황이 천황으로 오르기 전, 사냥을 하다 길을 잃고 사냥개 두마리와 숲을 헤메다 인가를 발견한다. 그 집에는 모녀만 살고있었는데 천황은 미래를 약속하고 그날밤 딸과 인연을 맺는다. 다음 날 대궐로 돌아가며 꼭 데리러 오리라 굳게 약속한다. 그 약속을 믿으며 기다리기를 15년. 이제나 저제나 데려갈 날만을 기다리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딸만 혼자 남아 원망의 말을 올리며 천황이 정표로 두고 간 사냥개 두마리를 죽이고 그녀도 죽는다. 그녀의 혼은 원귀가 되어 밤마다 대궐로 향하고, 뜻하지 않게 히로마사에게 잘못 전달된 연애편지가 바로 죽은 그녀가 천황에게 전달되어야 할 편지임을 세이메이로 부터 듣고는 천황에게 알린다. 천황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에게 미안해하며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염불을 올린다. 그녀에게 천황의 머리카락 한줌을 전해받은 그녀의 원혼은, 그 머리카락에 볼을 부비고 입을 맞추며 만족해 한다. 모든 한을 푼 그녀는 망자가 가야 할 곳으로 가고, 히로마사와 세이메이는 그녀의 반쯤 썪은 얼굴에 만족 어린 미소를 보며 진심으로 가엾어 한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했다. 그러나 그 말은 왠지 여자는 뒤끝이 길다 라고 들린다. 남자의 한도 무시못할 한이지만 왜 유독 여자의 한(恨)에 이런 말들이 붙게 되는지, 조금은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위에 소개한 내용의 여인은, 남자를 기다리다 못해 지쳐서 저렇게 원혼이 되어버린 것이것만, 그녀는 자기를 잊어버린 남자가 준 머리카락 한 줌만으로도 기꺼이 만족하지 않는가! 착한 소녀가 원혼이 되었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차라리 기다리게 하지 않았다면, 저 소녀는 좋은 남자를 만나 살림을 꾸리고 아기를 낳아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무정한 남자의 마음이, 그리고 그 무정한 남자를 너무 사랑했던 바보같은 여자마음이 내 마음을 울린다.
세이메이의 복장을 보면, 가리기누라고 한다. 일본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나는 한동안 광적으로 집착했던 <고스트 바둑왕>에 나오던 후지와라노 사이의 옷과 똑같다. 후지와라노 사이는 신의 한수를 보기위해 바둑판에 머물던 영혼이다. 영화에서 보던 음양사의 세이메이의 복장을 보고, 저렇게 불편한 옷으로 어떻게 퇴마를 할까 하고 궁금했지만, 신의 한수를 보기위해 머무르던 사이의 복장과 유니폼처럼 똑같았다. 가리기누는 민간의 의복이었으나, 그 기능성 때문에 후에는 관인들의 의관으로 발전됐다고 한다. 시대적 배경이 같은건지 아니면 그 나라의 고전복식은 변화가 없는 것인지 새삼 궁금해진다.
"가세."
"가세."
일은 그리 되었다.
또다른 그들의 시작이다.
그들의 활약을 보여줄 2권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