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지음 / 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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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좋아하는 감성을 가진 이석원 씨. 가수보다는 작가로써 유명해진 이석원 씨. 벌써 네 권의 책을 출간한 이석원 씨. 안 그래도 요즘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는데 마침 당신의 책이 눈에 들어와 반가움에 집어 들었습니다. 표지 디자인은 성의 없어 보이지만 알맹이가 중요하니까 괜찮아요. 보통의 존재 이후로 수년이 지났는데 그대의 유리 감성은 여전하시더군요. 그간 많은 일도 있었던 것 같구요. 제가 그대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거에요. 그대의 글과 감성이 제가 평소에 쓰는 일기랑 너무 비슷하고 닮아있거든요. 제 일기장을 남들한테 보여줘서 당신과 제 글이 닮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을 정도에요. 남들이 들으면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저는 제 감성이 담긴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좋아해요. 주기적으로 지난 제 일기들을 정주행하거든요. 그만큼 저는 당신의 글도 좋아합니다.


요즘 출판사들은 일기장에 끄적인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는 게 유행인 가봐요. 비슷한 류의 책들이 매주마다 쏟아져 나오던데요. 저도 욕심은 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네요. 개인적인 글이 더 많으니까요. 일기같이 개인적인 글을 책으로 낸다는 것은, 글을 쓸 때부터 남들이 읽어주기를 의식하고 쓴 게 아닐까 해요. 제가 보수적인 걸 수도 있는데, ‘좋아요‘ 받기 위해 작성한 글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근 에세이나 산문집들은 좀처럼 와닿지 않아서 손이 가질 않더라고요. 깊이가 너무 얕다고 할까요. 시처럼 묵직한 걸 원하는 게 아니에요. 여하튼 요즘처럼 가벼운 글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늘 제자리에서 뿌리를 내리는 이석원 씨의 글은 여전히 좋네요.


그런데 예전에 보여주던 느낌과는 왠지 달랐어요. 다른 분들은 별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지만 저는 알 수 있어요. 기존에 보여준 당신의 감성이 미묘하게 바뀌었음을. ‘보통의 존재‘에서 보여준 것과 달리 지금은 남을 의식하고 쓴 글처럼 끈적끈적 함이 묻어 나와요. ‘보통의 존재‘는 담담한 느낌이었는데, 이 책은 담담한 척을 하는 느낌이 종종 있어요. 다는 아니지만 짧은 글들은 본인 만의 마일드한 톤을 볼 수 없었어요. 물론 편집자의 요구대로 수정을 했겠지만 과연 이 책은 본인만의 감성을 들려주기 위해 쓴 것인가요. 혹시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쓴 것은 아닌가요. 본인만이 답을 알겠죠.


제가 이석원 씨의 글을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당신의 글이 대부분 관계 중심으로 쓰이기 때문이에요. 저 또한 삶에서 1순위가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인간적인 이야기를 속삭이는 당신의 글이, 남들과의 감정을 정리하는 당신의 글이 참 좋아요. 본인 스스로도 인간적이라는 말을 듣기 좋아할 만큼 인간미를 원하시더라고요. 당신이 말하는 ‘인간적‘이란 것에 대해 집중해봤어요. 때론 실수도 연발하고 잘못도 저지르지만 이해가 되는 사람, 미워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더군요.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삶의 지혜도 늘어가고, 상처도 덜 받고 그래야 진짜 어른이 된 거라고 생각들 하죠.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죠. 굳이 어른인 척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죠. 세상을 깨달았다 하기엔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우주의 먼지 알갱이 같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는 그런 사람들. 당신이 바라고 원하는 모습은 제가 바라는 모습과도 아주 닮아있어요. 저도 그런 사람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절친한 사람은 많지 않네요. 그래도 전 지금의 제가 좋아요. 이석원 씨도 이제는 자기 자신과 그만 부딪혔으면 좋겠어요. 감성적인 건 좋은데, 유리 감성은 금방 부서져버리니까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제가 알던 분위기와 달라서 아쉬웠는데요. 3부 ‘엄마의 믿음‘에 와서야 진짜 이석원 씨의 감성을 되찾은 듯했어요. 가족에게서 얻는 깨달음이야말로 인생의 진리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부모님과 화기애애 한데도 당신의 투정과 후회들이 너무 공감되었어요. 엄마는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내 인생의 엑스트라가 아니라 엄마 인생의 또다른 주인공인데 말이죠. 근데 자식들은 그것을 항상 늦게 깨닫는 것 같아요. 잘해드려야지 하면서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게 돼요. 어째서 이것만 자꾸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시간을 만들어 준 것도 감사합니다. 어서 건강 회복하시고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부디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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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유어 아이즈
린우드 바클레이 지음, 신상일 옮김 / 해문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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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마지막으로 국내에 발간된 바클레이의 작품을 전부 다 읽었다. 린우드 바클레이는 ‘제2의 할런 코벤‘으로 불리는데, 이는 코벤처럼 가족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만 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패턴도 늘 비슷비슷하여 쉽게 질려버린다. (이미 코벤 작품은 질려서 안 본다.) 이 책은 가족 중 한 명이 사라지고, 사라진 가족이 알고 보니 과거 XXX 출신이었다는, 늘 똑같은 패턴에서 맴돌던 기존 작품과는 확연히 달랐다. 다를 뿐 아니라 대박 재미있어서 이 작품만 보자면 바클레이가 코벤보다 훨씬 낫다고 할 정도이다. 읽고 나서 팔려고 했는데 그냥 소장해야겠군. 어쩌다 보니 맛있는 반찬을 맨 끝에 먹은 기분이 든다.


주인공에게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다 큰 동생이 있다. 어릴 적부터 ‘지도‘에 광적으로 집착해서 전 세계 지도와 도시 지역 곳곳을 외우고, 골목길까지 설명할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동생은 방안에 박혀서 ‘훨 360‘이라는 사이트(Daum의 로드뷰 같은)로 전 세계 곳곳을 살피고 여행하는 게 하루의 일상이다. 어느 날 뉴욕 거리를 여행하다가 3층 창가에서 비닐봉지로 얼굴이 묶여 살해되고 있는 장면을 발견한 동생은, 형을 시켜서 그 장소에 가보라고 시킨다. 동생의 땡깡에 못이긴 형은 문제의 장소를 찾아 뉴욕으로 떠난다.


한편 검찰총장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던 한 여자가 아내에게 돈을 요구하는 협박을 한다. 주지사가 되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도, 자신에게도 엄청난 타격이 올 것을 직감한 아내는 보좌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보좌관은 건너건너 사람을 시켜 협박녀를 제거한다. 그러나 계산 착오로 타인이 살해되었고, 협박녀는 몇 달간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은 협박녀를 찾다가 살인사건 장소에 찾아온 주인공을 알게 되고 그를 역추적한다. 이후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된 두 형제는 이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컨텐츠가 신선했다. 국내에도 다음 회사의 ‘로드뷰‘가 있는데, 360도 캠으로 촬영한 도시 곳곳을 눈으로 볼 수 있다. 로드뷰 촬영 당시에 찍힌 사람이나 동물들 때문에 재미있는 광경을 낳기도 했었는데 이 작품도 그것과 비슷했다. 로드뷰 화면에 살인 장면이 찍혀 있었고, 지도 광 동생이 그걸 발견한 뒤로 점점 꼬이는 사건들. 진짜 작가의 상상력에 좋아요 백만 개 누르고 싶다. 메인 사건 뿐만 아니라 다른 사소한 문제들도 엮어서 반전에 반전을 보여준다. 반전이 대체 몇 번이나 나오는 거야? 숨을 못 쉬겠네. 특히 마지막 반전 두 건은 초 압권이었다.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 반전 횟수는 이 책이 가장 많은 듯.


여러 사건이 엉키긴 했지만 어딘가 단순하다 싶었는데, 가면 갈수록 일어난 일들과 지나간 미스터리들이 한데 뭉쳐서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미심쩍은 사고. 아버지의 노트북에서 발견된 ‘아동 성매매‘라는 검색 단어. 아버지와 동생 사이에 있었던 드러나지 않은 문제. 자신이 CIA와 일한다고 믿는 동생을 찾아온 FBI. 너무 일을 크게 벌려놓는 거 아닌가 할 만큼 걱정이 들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전 대통령과 동생의 대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망상인지 실제인지 궁금하게 만들어 작품의 흥미를 끌어올렸고 역시나 강력한 반전을 일궈냈다. 이런 카타르시스 때문에 독자들이 반전 요소에만 매달리는 게 아닐까? 반전이 약한 책은 재미가 없다고 치부해버리는 독자가 많아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음. 이 반전이란 게 참 날카로운 검같이 강력함과 위험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독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본다.


사건들이 하나 되는 과정이 다소 느리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자연스러워서 완벽한 개연성을 보여주었다. 지난 작품들은 이 정도로 매끄럽지 않았기에, 그동안 작가도 엄청 성장했다는 걸 느꼈다. 여러 면에서 기존 작품들과 다름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미 일이 커지기도 전에 독자가 걱정하게 만드는 기교가 특히 대단했다. 일단 앞으로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대략 예측이 되는 플롯이다. 이러면 보통 독자 입장에서는 김빠지고 기대 없이 읽게 되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긴장은 풀리지 않았고,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작품에 빠져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죄도 없는 주인공이 갑자기 표적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는 것과, 도주 중인 협박녀도 결국 제거 당할 것들은 미리 예측이 된다. 그런데 다 읽고 보니 독자가 이 예측 가능한 것들에 신경을 쏟도록 만들고, 뒤에서는 조커 카드를 여러 장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제프리 디버가 말했던 ‘미스 디렉션‘이란 것인가. 오래간만에 별 다섯 개를 만나서 내 기분 지금 신라! 그나저나 소설은 언제 쓰지... 이놈의 귀차니즘, 어떡하면 좋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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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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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도 한때 유명했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그랬지만, 출소 전날에 탈옥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엄청난 내러티브 때문이기도 했다. 거장 스티븐 킹은 요즘 웬만한 작품마다 칭찬을 해대서 신뢰감이 확 떨어졌지만, 이 작가에 대한 칭찬은 나도 격하게 인정하는 바이다. 일반 하드보일드 범죄소설과 큰 차이는 없지만 타 작가에 비해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이랄까? 그래서 세련된 스릴러를 쓴다는 이미지를 가진 작가로 각인되었다. 이번에는 늘 집필하던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 얼론을 쓰셨는데, 총평은 그냥 그랬다. 시리즈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들은 유독 스탠드얼론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호랑이에서 재규어급으로 떨어졌다 한들 맹수는 맹수이다. 이전 작품들보다는 많이 약하지만 분위기만큼은 알아줘야 한다.


주인공은 10년 전에 700만 달러를 훔치고 살인한 강도 사건으로 교도소에 들어왔다. 10년이라는 복역을 마치고 내일이 출소일인데 그는 석방 전날에 탈옥을 했다. 이유는 주연들도 모르고 독자도 모르고 작가도 모르는 것 같다. 아무튼 세상은 이 빅뉴스에 긴장 타기 시작했다. 한편 탈옥수의 소식을 들은 상원 의원과 측근들은 주인공을 잡아 감방에 넣기 위해 힘을 모은다. 죄수가 탈옥했으니 경찰들이 잡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주인공을 완전 유죄로 몰고 가려는 움직임은 어딘가 구린내가 난다. 그들은 10년 전 강도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탈옥한 이유와 그를 쫓는 경찰들의 진실은 무엇인가.


요약한 내용은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되게 정신없었다. 로보텀 답지 않게 지저분한 플롯이었다고 생각한다. 조 올로클린 시리즈를 쓰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불필요한 설명도, 자잘한 이슈도 너무 많았다. 물론 나중엔 하나로 엮었지만 그 많은 내용들이 주인공의 도주 내용과 큰 연관이 없다고 할까,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까. 일단 주인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신이 없다. 주인공과 친했던 죄수가 석방되어 주인공을 쫓는 것과, 10년 전 강도 사건의 담당 경관이 주인공을 좇는 것. 그리고 그 경관과 함께 움직이는 FBI 요원. 그 외에도 기타 등등. 다들 탈옥수를 잡으려고 우왕좌왕하여 읽는 입장에서는 혼잡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걸 노린 거라면 정말이지 대성공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주인공은 과거 자신이 모셨던 보스의 정부를 사랑하게 되었고, 밀회하다 들켜서 반죽음 상태로 쫓겨났었다. 그런데도 여자를 잊지 못해 계속 쫓아다녔다. 사랑에 눈이 먼 남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남자들은 누구나 경험하는 거니까, 이런 순정파 캐릭터도 나쁘진 않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선 가, 세상 때가 너무 많이 묻어선 가, 주인공이 너무 매력 없었다.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버리는 남자는 너무 비현실적이라 와닿지도 않고, 이런 하드보일드 작품에는 더욱 안 어울리는 설정 같았다. 아무튼 별로야. 게다가 주인공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어. 탈옥하고도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장면만 나와서 미친 듯이 답답했음. 독자를 숨 막혀 죽게 하려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이 두꺼운 분량이 대부분 탈옥수를 잡으려는 내용뿐이고, 주인공이 왜 탈옥한 건지 설명이 없어서 결국 체념하고 읽었다. 조금은 감이라도 와야 하는데 그런 건 없고, 주인공을 쫓는 자들과, 엮여서 피 보는 사람들의 내용을 더 중하게 다룬다. 증발한 700만 달러의 행방은 아예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것도 말을 안 해주니까. 가끔씩 10년 전 내용들이 나오곤 하지만 이게 현재와 별 연관도 없어 보여 그냥저냥 읽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팬심으로, 의리로 읽는 기분이었다.


이 작품이 더 별로 인건 탈옥을 한 뒤로 현재 장면보다 과거 내용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당연히 과거 설명은 필요하다. 주인공에 대해서 알아가야 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런데 과거에만 할애해서 현재에는 ‘탈옥했다‘가 전부이다. 탈옥 후에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작가가 사건과 스토리보다는 캐릭터 설정에만 정성을 쏟아서 읽을수록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몰라 답답했다. 왜 그런 거 있잖아. 예비군들이 현역 시절 자랑할 때 엄청 뻥튀기해서 장황하게 설명하는 거. 그런 건 사실 내용이 재밌는 게 아니야, 그 사람의 말빨이 재밌는 거지. 이 책도 똑같았다. 내내 답답하다가 마지막에 반전 한방 터뜨리고 끝나는 작품들은 이제 질렸다. 게다가 이 책의 반전은 반전 축에도 못 꼈음. 스탠드얼론은 더욱 분발해주세요, 로보텀 슨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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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잠수함
이재량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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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간만에 골 때리는 작품을 만났다. 오쿠다 히데오와 천명관의 스타일이 섞인 듯한 문체와 분위기의 병맛 소설이다. 나 이런 거 짱 좋아함. 대놓고 B급으로 나가는 요나스 요나손 스타일도 좋지만, 이렇게 은근 B급스러운 스타일도 완전 사랑한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세상을 바꾸는 건 또라이들이라고 한다. 이 작가도 (좋은 의미의)또라이가 확실하다. 이런 분이라면 한국 문학계를 움직이고 흔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의 많은 책들이 ‘나쁘지 않다‘였다면 이 책은 ‘좋았다‘라는 쪽에 가깝다. 재밌는 건 희망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인데 자꾸 희망을 노래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작품을 쓰신다면 앞으로 나올 모든 책들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 역시 첫 단추가 중요하다.


봉고차로 성인용품을 판매하는 주인공은 만화방의 두 할배에게 찍혀서 부산까지 모셔드리기로 한다. 가출한 일진 여학생도 함께 말이다. 나사 빠진 세 사람을 상대하며 간신히 부산에 도착했는데, 할배들과 만나기로 한 사람은 연락이 안 된다. 맙소사. 그리고 주인공이 여학생과 노인을 납치했다는 뉴스가 계속 보도되고 있다. 맙소사. 그런데 세 사람은 본인들을 안 도와주면 납치된 거라고 경찰에 거짓 발언을 할 작정이다. 맙소사.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의 노예 역할을 하지만, 대화가 안 통하는 인간들을 상대하는 건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 한 명은 주기적으로 치매 증상이 오고, 한 명은 주기적으로 경련을 일으킨다. 어쩌다가 한 팀이 된 이들은 열심히 지방 순회를 하며 산전 수전을 다 겪게 된다. 상식 밖의 일들을 연속으로 맞닥뜨리는 주인공은 언제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놔, 이거 진짜 너무 웃기네. 간만에 실컷 웃은 것 같다. 병맛 소설은 나름 많이 읽었지만 대부분 ‘피식‘ 정도였지 ‘낄낄‘까지는 아니었다. 근데 이 책은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본좌가 느끼는 바 B급 문학은 막장드라마와 엄연히 다르고 다르다. 일반적인 B급 문학은 코미디 장면이 나와도 진지함을 유지하는데 이 작가는 진지하지 않아서 더 웃기다. 본 작품은 안 맞는 사람들과 공동운명체로 결속돼가는 과정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보통 목적이 달라도 방향이 같아서 한 배를 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공동의 방향도 목표도 없이 하나가 된다. 물론 고생은 주인공이 다 하고 있다. 마치 ‘정글의 법칙‘에서 막내 혼자 집 짓고 사냥하고 뒷정리하는 느낌이랄까. 여하간 엄청 수고한다.


두 노인은 과거 월남전 병사 출신이었다. 베트남의 수이진이란 곳에서 만난 여인에게 둘 다 마음을 뺏겼었다.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고 하고 헤어졌다가 이후 그 지역에 베트콩들이 잠적해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한국군이 수이진을 불살라버렸다. 베트남 여인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두 사람은 노인이 될 때까지 지내다가 죽기 전에 수이진을 가보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 마음은 알겠지만 두 고래 사이에서 등 터지는 새우 꼴인 주인공의 심정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독자들이 위로해주자.


작가는 단 하루의 시간만으로도 평생을 견뎌낼 수 있는 게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럼 우리도 노인들처럼 전장 한가운데 있는 낙원에서 보낸 단 하루의 추억으로 평생을 버틴다는 게 가능할까? 나는 말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노인들이야말로 진정 낭만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다신 볼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고통받는 것이라 할지라도.


분명 어떠한 목적을 이루거나 사건이 해결되는 스토리는 아니다. 그냥 왁자지껄한 해프닝 정도? 절반쯤 읽다가 느낀 건데 작가가 스토리를 미리 짜놓고 쓴 게 아니라, 일단 문제를 만들고 즉흥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의 느낌을 받았다. 녹화 방송보다는 생방송 느낌? 현장감 있는 건 좋지만 정신없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숨기질 못한다. 그래도 워낙 재밌어서 단점이 다 커버된다. 또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이 아니라서 더 좋았다. 이렇게 인간미 넘치는 글이야말로 오래오래 사랑받는 비결이 아닐까. 고전문학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자, 어서 차기작을 만들어주세요, 작가님!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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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플란트 전쟁 - 본격치과담합리얼스릴러
고광욱 지음 / 지식너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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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이런 게 바로 오리지널 코리아 스릴러다! 하고 외국인들한테 보여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국가 망신 당할까 봐 겁나는 리얼 팩션 작품이다. 전 국민이 궁금해하는 비싼 치과 비용에 대한 이유를 알리기 위해 현역 치과의사가 소설을 펴냈다. 본인도 의사면서 같은 업계의 비리를 이처럼 적나라하게 고발해도 괜찮은 걸까? 비록 허구라지만 현실에 전혀 없는 사실은 아닐 테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저자가 걱정되었다. 물론 작품 속 주인공처럼 난 그딴 거 겁 안 난다! 하시겠지만 말이다. 초반에는 이게 무슨 스릴러냐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왜 스릴러인지 알겠더라. 정말로 치과의사들은 본인 밥그릇만 챙기느라 돈 없고 가난한 환자들은 어찌 되든 상관없어할까? 수차례 충격을 먹어서 이게 소설인지 실화인지 분간이 안되고 있다. 길지 않으니까 다들 꼭 읽어봤으면 한다.


소설 속 치과협회에서는 10만 원이면 되는 임플란트 비용을 200만 원으로 정했다. 그러나 이제 막 치과를 개원한 주인공은 100만 원으로 임플란트를 치료해주었다. 기존 의사들은 주인공이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협회에서 담합한 진료비용 및 정책대로 하지 않는 의사와 병원을 일명 ‘덤핑 치과‘로 분류하고 조직적으로 왕따를 시킨다. 치과협회는 치기공협회를 갑질하여 왕따들에게 재료 납품을 중단 시켰다. 또한 덤핑 치과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압박을 주어 하나둘씩 일을 그만두게 한다. 직원도 부족하고, 재료 부족으로 치료도 못하니 자연스레 환자가 끊기면서 병원장의 밥줄도 끊어진다. 갈수록 치졸하게 괴롭히는 협회로 인해 정직한 의사의 선택은 이 바닥을 뜨거나, 무릎 꿇고 용서를 빌거나 둘 중 하나였다. 협회에게 갑질을 당하는 주인공은 변호사 친구와 기자 친구의 손을 잡고 치과협회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과연 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 있을 것인가.


권력의 힘이란 참 무섭다. 진실도 정의도 양심도 권력 앞에서 다 소용이 없다. 있는 놈들이 더하단 말처럼, 배운 것들이 더 저질스러움을 보여주는 책이다. 치대생들은 졸업반 때에도 담합을 한다. 최종 국가시험을 앞두고 학생회에서 최대한의 점수를 정해준다. 이 상한선을 넘길 시 불이익을 당하게 만든다. 서로 경쟁하지 말고 다 같이 안전빵으로 졸업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학교에서부터 시작된 담합 전통은 훗날에 병원을 차린 뒤에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학생 때는 최대 점수를 어기는 게 금지였고, 현역 때는 최소 가격을 어기는 게 금지였다. 주인공은 임플란트의 가격을 어김으로써 치과협회의 배신자가 되었다. 다 같이 잘 사는 길을 두고 지 혼자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뜻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의사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직업일까.


저자는 유디치과 대표이다. 나도 유디치과 싸서 좋아했는데, 반대로 주변에는 싸니까 꺼림칙하다는 사람이 많았다. 참 이상했다. 잘만 치료하던데 뭐가 문제일까. 왜 다들 돈 없다면서 비싸기로 유명한 치과만 찾아가는 걸까. 그런 사람들이 원가를 알게 되면 얼마나 비참할까. 지금은 임플란트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지만, 그 가격으로 두세 개만 치료해도 부담은 여전히 크다. 그래서 저자는 지난 10년의 치과 인생 동안 협회의 담합과 수많은 비리에 맞서싸워왔다. 이 작품이 나온 이후 대한 치과의사협회에서는 저자가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며 비판하기에 나섰다. 그러나 기사 내용에 나오는 협회의 주장과 변론은 그닥 신뢰가 가질 않는다. 지금도 본인들의 구겨진 이미지 회복에만 신경 쓰고 있지, 환자들을 위한 노력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하면 아프지도 말처럼도 들리는군. 돈 많으면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말은 언제부턴가 뼈를 때리는 팩트가 되어버렸다. 돈 잘 번다는 의사들도 돈 없다고 찡찡 거린다면, 그보다도 못한 직장인과 근로자들은 어찌합니까. 어떻게 할까요.


http://www.kns.tv/news/articleView.html?idxno=491550
(대한치과의사협회 이재윤 홍보이사의 라디오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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