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스트 유어 아이즈
린우드 바클레이 지음, 신상일 옮김 / 해문출판사 / 201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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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마지막으로 국내에 발간된 바클레이의 작품을 전부 다 읽었다. 린우드 바클레이는 ‘제2의 할런 코벤‘으로 불리는데, 이는 코벤처럼 가족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만 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패턴도 늘 비슷비슷하여 쉽게 질려버린다. (이미 코벤 작품은 질려서 안 본다.) 이 책은 가족 중 한 명이 사라지고, 사라진 가족이 알고 보니 과거 XXX 출신이었다는, 늘 똑같은 패턴에서 맴돌던 기존 작품과는 확연히 달랐다. 다를 뿐 아니라 대박 재미있어서 이 작품만 보자면 바클레이가 코벤보다 훨씬 낫다고 할 정도이다. 읽고 나서 팔려고 했는데 그냥 소장해야겠군. 어쩌다 보니 맛있는 반찬을 맨 끝에 먹은 기분이 든다.


주인공에게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다 큰 동생이 있다. 어릴 적부터 ‘지도‘에 광적으로 집착해서 전 세계 지도와 도시 지역 곳곳을 외우고, 골목길까지 설명할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동생은 방안에 박혀서 ‘훨 360‘이라는 사이트(Daum의 로드뷰 같은)로 전 세계 곳곳을 살피고 여행하는 게 하루의 일상이다. 어느 날 뉴욕 거리를 여행하다가 3층 창가에서 비닐봉지로 얼굴이 묶여 살해되고 있는 장면을 발견한 동생은, 형을 시켜서 그 장소에 가보라고 시킨다. 동생의 땡깡에 못이긴 형은 문제의 장소를 찾아 뉴욕으로 떠난다.


한편 검찰총장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던 한 여자가 아내에게 돈을 요구하는 협박을 한다. 주지사가 되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도, 자신에게도 엄청난 타격이 올 것을 직감한 아내는 보좌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보좌관은 건너건너 사람을 시켜 협박녀를 제거한다. 그러나 계산 착오로 타인이 살해되었고, 협박녀는 몇 달간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은 협박녀를 찾다가 살인사건 장소에 찾아온 주인공을 알게 되고 그를 역추적한다. 이후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된 두 형제는 이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컨텐츠가 신선했다. 국내에도 다음 회사의 ‘로드뷰‘가 있는데, 360도 캠으로 촬영한 도시 곳곳을 눈으로 볼 수 있다. 로드뷰 촬영 당시에 찍힌 사람이나 동물들 때문에 재미있는 광경을 낳기도 했었는데 이 작품도 그것과 비슷했다. 로드뷰 화면에 살인 장면이 찍혀 있었고, 지도 광 동생이 그걸 발견한 뒤로 점점 꼬이는 사건들. 진짜 작가의 상상력에 좋아요 백만 개 누르고 싶다. 메인 사건 뿐만 아니라 다른 사소한 문제들도 엮어서 반전에 반전을 보여준다. 반전이 대체 몇 번이나 나오는 거야? 숨을 못 쉬겠네. 특히 마지막 반전 두 건은 초 압권이었다.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 반전 횟수는 이 책이 가장 많은 듯.


여러 사건이 엉키긴 했지만 어딘가 단순하다 싶었는데, 가면 갈수록 일어난 일들과 지나간 미스터리들이 한데 뭉쳐서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미심쩍은 사고. 아버지의 노트북에서 발견된 ‘아동 성매매‘라는 검색 단어. 아버지와 동생 사이에 있었던 드러나지 않은 문제. 자신이 CIA와 일한다고 믿는 동생을 찾아온 FBI. 너무 일을 크게 벌려놓는 거 아닌가 할 만큼 걱정이 들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전 대통령과 동생의 대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망상인지 실제인지 궁금하게 만들어 작품의 흥미를 끌어올렸고 역시나 강력한 반전을 일궈냈다. 이런 카타르시스 때문에 독자들이 반전 요소에만 매달리는 게 아닐까? 반전이 약한 책은 재미가 없다고 치부해버리는 독자가 많아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음. 이 반전이란 게 참 날카로운 검같이 강력함과 위험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독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본다.


사건들이 하나 되는 과정이 다소 느리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자연스러워서 완벽한 개연성을 보여주었다. 지난 작품들은 이 정도로 매끄럽지 않았기에, 그동안 작가도 엄청 성장했다는 걸 느꼈다. 여러 면에서 기존 작품들과 다름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미 일이 커지기도 전에 독자가 걱정하게 만드는 기교가 특히 대단했다. 일단 앞으로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대략 예측이 되는 플롯이다. 이러면 보통 독자 입장에서는 김빠지고 기대 없이 읽게 되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긴장은 풀리지 않았고,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작품에 빠져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죄도 없는 주인공이 갑자기 표적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는 것과, 도주 중인 협박녀도 결국 제거 당할 것들은 미리 예측이 된다. 그런데 다 읽고 보니 독자가 이 예측 가능한 것들에 신경을 쏟도록 만들고, 뒤에서는 조커 카드를 여러 장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제프리 디버가 말했던 ‘미스 디렉션‘이란 것인가. 오래간만에 별 다섯 개를 만나서 내 기분 지금 신라! 그나저나 소설은 언제 쓰지... 이놈의 귀차니즘, 어떡하면 좋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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