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골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8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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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칭찬해서 칭찬이 칭찬 같지 않은 작가,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를 이제 딱 중간 편까지 읽었다. 읽기가 아까워 계속 미루고 미루는 시리즈 소설들이 몇 개 있는데, 그렇게 미루다 보면 앞뒤 내용이 가물가물해져서 인물관계나 배경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유명한 해외 문학들은 책 뒤표지에 각종 언론사의 코멘트가 두세 글 정도 표기돼있다. 그런데 코넬리의 작품은 책 서두에도 매번 두 페이지씩 찬사의 글들이 실린다. 그만큼 외국에서는 어마어마한 인기와 영향력을 지녔다는 뜻이 되겠다. 국내의 해외 작품 중 코넬리 책 말고 이런 대우를 받는 책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이미 코넬리는 범죄소설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이제는 나이도 많이 들었는데 아직도 시리즈가 나오는 걸 보면 그만의 날카로운 감각은 여전한가 보다.


산책하던 개가 산속에서 사람 뼈를 물어왔다. 신고를 받고 산을 조사하던 보슈는 다량의 유골을 발견한다. 감식 결과 심하게 학대를 받은 흔적이 가득한 어린이의 뼈였다. 보슈는 과거에 실종된 어린이들을 조사하다가 용의자로 의심되는 한 남자를 찾아간다. 결백을 주장한 용의자는 억울함에 못 이겨 결국 자살한다. 사건과 무관한 시민을 자살하게 만든 보슈와 경찰국의 이미지는 잔뜩 구겨져버렸다. 경찰은 잽싸게 유골의 신원을 알아냈고, 피해자의 가족과 주변인을 통하여 마침내 범인을 검거했다. 그의 자백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듯했으나 보슈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재수사 결과 용의자의 허위 고백으로 드러나 준비하던 재판은 취소되고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한편 보슈와 수차례 삐거덕대던 경찰국은 보슈에게 퇴직을 권고한다. 은퇴하기 전 마지막 사건을 미결로 끝내고 싶지 않은 보슈는 동료도 버리고 혼자서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느라 바빠진다. 


다 된 밥에 재 뿌리기가 반복된다. 해결되었다 싶으면 또 다른 증거가 나타나 제자리걸음의 수사만 하게 된다. 이렇게 범인의 정체를 질질 끌면 짜증 날법도 한데, 코넬리의 소설은 그런 게 없다. 쉬지 않고 재미있다. 진척 없는 사건만으로는 지루할 수도 있으니, 작가는 다른 내용들을 계속 버무린다. 언론에 정보를 흘리는 내부 경찰, 보슈랑 눈 맞은 여자, 예전에 같이 일한 동료 등등. 다양한 양념을 곁들여서 시리즈 고유의 분위기에 독자들을 중독시킨다. 진정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줄 아는 고단수이다.


시리즈 소설들은 메인 사건 말고도 다루는 내용들이 많다. 특히 내부의 적은 매 권마다 꼭 있는데 이번에도 부패한 경찰이 수사를 방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보슈를 싫어하는 경찰국을 상대하면서 기생충들도 걸러내야 하는, 이렇게 안팎으로 적이 가득한 보슈에게는 조용할 날이 없다. 미안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더 재미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형사지만 경찰국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을 위해서 수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은 타협하지 않으며,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끝장을 보려는 성격일 뿐이다. 이번 작품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경찰국의 실수와 잘못을 덮고 언론에 거짓 정보를 발표하려는 윗사람들과, 진실을 밝혀야 하면서도 같은 배를 타고 있어 묵인할 수밖에 없는 보슈의 양심 대립이다. 보슈가 경찰계의 부패함을 언제까지고 못 본척할까 싶었는데 이 책을 끝으로 경찰을 그만두기로 결단 내린다, 와우. 일이 점점 재미있게 돌아간다. 알아서 잘 하겠지 뭐.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전 편들보다는 다소 잔잔한 파도의 작품이었다. 그래서 사건이 주는 재미보다는 가정폭력과 조직 우선주의 같은 사회문제들을 언급하고 다루는 장면에서 오는 페이소스가 더 기억에 남는다. 이런 요소들이 작품과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고 독자에게 울림을 준다. 킬링 타임용 책들은 이런 페이소스가 없다. 아무튼 해리 보슈 시리즈는 무조건 믿고 보는 스릴러이다. 연속해서 다음권을 읽고 싶지만 아껴뒀다가 슬럼프 올 때 읽어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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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1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명절연휴 즐겁고 복된나날 되십시오 ^^

물감 2019-02-02 07:16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도 명절 잘보내세요^^
 
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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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조엘 디케르는 내가 극찬하는 작가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체를 지닌 탑 5 작가 중 한 명이다. 전작에서는 작가로써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었고, 그 당시에는 한참 리뷰 쓰는 데에 몰두했던 터라 많은 공부가 되었었다. 이번 작품은 소설가가 글을 쓰는 원동력에 대해서 짧게 짧게 나오는데 마침 나 또한 요즘 소설을 쓰고 있어서 참고하며 읽었다. 주인공 직업이 작가로 나오는 작품들은 이래서 좋다. 데뷔작 ‘해리 쿼버트‘에서 나온 주인공이 이번에도 나온다. 그러면 마커스 골드먼도 시리즈인 걸까? 전혀 그런 느낌은 없는데 말이지. 전작은 주인공이 성인 된 후에 일어난 일을 기록했고, 이번 책은 주인공의 유년시절을 다루고 있다. 알록달록한 표지와는 다르게 골드먼 일가의 몰락이라는 비극적인 내용이었다.


골드먼 일가는 살고 있는 지역명을 따라 큰아버지네 볼티모어 골드먼과, 주인공네 몬트클레어 골드먼, 두 이름으로 불렸다. 주인공은 자기 집보다 잘 사는 큰아버지 집에 늘 붙어살다시피 했다. 큰집 사촌은 학교에서 늘 왕따를 당했었고, 소년원 출신의 우디가 그를 보호해주다가 큰집 볼티모어 골드먼의 가족이 된다. 그리고 두 사촌과 주인공은 세상 절친한 사이가 되어 행복을 만끽한다. 운동 천재인 우디는 훗날 풋볼 선수가 되었고, 두뇌 천재인 사촌은 큰아버지를 따라 변호사의 길로 간다. 잘난 게 없는 주인공은 조금씩 열등감에 젖기 시작한다. 그러다 세 명이 동시에 좋아한 여자를 주인공이 쟁취하면서 이들의 우정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후 볼티모어의 가족과 친구들은 한 명 한 명씩 일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와장창 무너지는 꿈과 행복들. 과연 볼티모어 일가에게 닥친 태풍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옛날 유럽의 고전영화 필름을 보는 기분이다. 세피아 필터가 들어간 느낌의 화질 낮은 영상이 눈에 보인다. 전작에서 보여주던 시원시원하고 힘 있는 필력이 아니라, 차분하고 느긋한 문체로 썼더라. 아마도 과거의 회상을 기록하다 보니 천천히 곱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문체를 바꾼 게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가독성은 여전히 좋아서 대충 휘리릭 읽어도 쉽게 이해가 된다. 나도 이렇게 읽기 수월하면서 적당한 템포와 무게를 가진 필력을 배우고 싶다. 이런 사람들은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만 제외하고 평생 글 쓰도록 만들어야 함. 


골드먼 집안 남정네들은 전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고집이 엄청 센 것. 자신의 능력을 너무 믿는 나머지 남의 조언과 도움은 절대 받으려 하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쾅 하고 추락해 버렸다. 둘째는 질투와 시기심. 이것 때문에 모든 평화는 산산조각이 난 건데 재미있는 건, 질투하고 사과하길 여러 번 반복하면서도 지난 일들로 어떠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너 없인 못 살아, 하면서도 속으로는 열등감으로 가득 차서 서로가 잘못되기를 바라고 있는 아이러니함.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긴 세월을 함께 하는 동안 질투심은 차곡차곡 쌓여왔고, 그것을 감춘 채 서로를 대해 오다가 오해들만 쌓였다. 그래서 공든 탑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사춘기가 늦게 오면 이렇게나 무섭다.


마침내 혼자 남은 주인공은 소설가가 되어 지난 일들을 작품으로 만들어내었다. 내가 읽는 책도 그 작품이며, 작품 속에서 탄생한 책도 그 내용이다. 전체적으로 과거의 내용을 기록한 기념비 같은 작품이라 숨 막히는 전개 같은 건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작품 해설에 나와있듯이 주인공은 작가 본인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이다. 그래서 마커스 골드먼을 통해 작가의 생애와 철학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작가가 되고 난 이후의 삶에 대한 책들은 많으나, 작가가 되기 이전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들은 많지 않은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희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단순 기록을 넘어 하나의 이야기를 창조해내었으니까.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매력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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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지음 / 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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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감성을 가진 이석원 씨. 가수보다는 작가로써 유명해진 이석원 씨. 벌써 네 권의 책을 출간한 이석원 씨. 안 그래도 요즘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는데 마침 당신의 책이 눈에 들어와 반가움에 집어 들었습니다. 표지 디자인은 성의 없어 보이지만 알맹이가 중요하니까 괜찮아요. 보통의 존재 이후로 수년이 지났는데 그대의 유리 감성은 여전하시더군요. 그간 많은 일도 있었던 것 같구요. 제가 그대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거에요. 그대의 글과 감성이 제가 평소에 쓰는 일기랑 너무 비슷하고 닮아있거든요. 제 일기장을 남들한테 보여줘서 당신과 제 글이 닮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을 정도에요. 남들이 들으면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저는 제 감성이 담긴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좋아해요. 주기적으로 지난 제 일기들을 정주행하거든요. 그만큼 저는 당신의 글도 좋아합니다.


요즘 출판사들은 일기장에 끄적인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는 게 유행인 가봐요. 비슷한 류의 책들이 매주마다 쏟아져 나오던데요. 저도 욕심은 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네요. 개인적인 글이 더 많으니까요. 일기같이 개인적인 글을 책으로 낸다는 것은, 글을 쓸 때부터 남들이 읽어주기를 의식하고 쓴 게 아닐까 해요. 제가 보수적인 걸 수도 있는데, ‘좋아요‘ 받기 위해 작성한 글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근 에세이나 산문집들은 좀처럼 와닿지 않아서 손이 가질 않더라고요. 깊이가 너무 얕다고 할까요. 시처럼 묵직한 걸 원하는 게 아니에요. 여하튼 요즘처럼 가벼운 글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늘 제자리에서 뿌리를 내리는 이석원 씨의 글은 여전히 좋네요.


그런데 예전에 보여주던 느낌과는 왠지 달랐어요. 다른 분들은 별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지만 저는 알 수 있어요. 기존에 보여준 당신의 감성이 미묘하게 바뀌었음을. ‘보통의 존재‘에서 보여준 것과 달리 지금은 남을 의식하고 쓴 글처럼 끈적끈적 함이 묻어 나와요. ‘보통의 존재‘는 담담한 느낌이었는데, 이 책은 담담한 척을 하는 느낌이 종종 있어요. 다는 아니지만 짧은 글들은 본인 만의 마일드한 톤을 볼 수 없었어요. 물론 편집자의 요구대로 수정을 했겠지만 과연 이 책은 본인만의 감성을 들려주기 위해 쓴 것인가요. 혹시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쓴 것은 아닌가요. 본인만이 답을 알겠죠.


제가 이석원 씨의 글을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당신의 글이 대부분 관계 중심으로 쓰이기 때문이에요. 저 또한 삶에서 1순위가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인간적인 이야기를 속삭이는 당신의 글이, 남들과의 감정을 정리하는 당신의 글이 참 좋아요. 본인 스스로도 인간적이라는 말을 듣기 좋아할 만큼 인간미를 원하시더라고요. 당신이 말하는 ‘인간적‘이란 것에 대해 집중해봤어요. 때론 실수도 연발하고 잘못도 저지르지만 이해가 되는 사람, 미워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더군요.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삶의 지혜도 늘어가고, 상처도 덜 받고 그래야 진짜 어른이 된 거라고 생각들 하죠.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죠. 굳이 어른인 척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죠. 세상을 깨달았다 하기엔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우주의 먼지 알갱이 같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는 그런 사람들. 당신이 바라고 원하는 모습은 제가 바라는 모습과도 아주 닮아있어요. 저도 그런 사람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절친한 사람은 많지 않네요. 그래도 전 지금의 제가 좋아요. 이석원 씨도 이제는 자기 자신과 그만 부딪혔으면 좋겠어요. 감성적인 건 좋은데, 유리 감성은 금방 부서져버리니까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제가 알던 분위기와 달라서 아쉬웠는데요. 3부 ‘엄마의 믿음‘에 와서야 진짜 이석원 씨의 감성을 되찾은 듯했어요. 가족에게서 얻는 깨달음이야말로 인생의 진리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부모님과 화기애애 한데도 당신의 투정과 후회들이 너무 공감되었어요. 엄마는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내 인생의 엑스트라가 아니라 엄마 인생의 또다른 주인공인데 말이죠. 근데 자식들은 그것을 항상 늦게 깨닫는 것 같아요. 잘해드려야지 하면서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게 돼요. 어째서 이것만 자꾸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시간을 만들어 준 것도 감사합니다. 어서 건강 회복하시고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부디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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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유어 아이즈
린우드 바클레이 지음, 신상일 옮김 / 해문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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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마지막으로 국내에 발간된 바클레이의 작품을 전부 다 읽었다. 린우드 바클레이는 ‘제2의 할런 코벤‘으로 불리는데, 이는 코벤처럼 가족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만 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패턴도 늘 비슷비슷하여 쉽게 질려버린다. (이미 코벤 작품은 질려서 안 본다.) 이 책은 가족 중 한 명이 사라지고, 사라진 가족이 알고 보니 과거 XXX 출신이었다는, 늘 똑같은 패턴에서 맴돌던 기존 작품과는 확연히 달랐다. 다를 뿐 아니라 대박 재미있어서 이 작품만 보자면 바클레이가 코벤보다 훨씬 낫다고 할 정도이다. 읽고 나서 팔려고 했는데 그냥 소장해야겠군. 어쩌다 보니 맛있는 반찬을 맨 끝에 먹은 기분이 든다.


주인공에게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다 큰 동생이 있다. 어릴 적부터 ‘지도‘에 광적으로 집착해서 전 세계 지도와 도시 지역 곳곳을 외우고, 골목길까지 설명할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동생은 방안에 박혀서 ‘훨 360‘이라는 사이트(Daum의 로드뷰 같은)로 전 세계 곳곳을 살피고 여행하는 게 하루의 일상이다. 어느 날 뉴욕 거리를 여행하다가 3층 창가에서 비닐봉지로 얼굴이 묶여 살해되고 있는 장면을 발견한 동생은, 형을 시켜서 그 장소에 가보라고 시킨다. 동생의 땡깡에 못이긴 형은 문제의 장소를 찾아 뉴욕으로 떠난다.


한편 검찰총장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던 한 여자가 아내에게 돈을 요구하는 협박을 한다. 주지사가 되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도, 자신에게도 엄청난 타격이 올 것을 직감한 아내는 보좌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보좌관은 건너건너 사람을 시켜 협박녀를 제거한다. 그러나 계산 착오로 타인이 살해되었고, 협박녀는 몇 달간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은 협박녀를 찾다가 살인사건 장소에 찾아온 주인공을 알게 되고 그를 역추적한다. 이후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된 두 형제는 이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컨텐츠가 신선했다. 국내에도 다음 회사의 ‘로드뷰‘가 있는데, 360도 캠으로 촬영한 도시 곳곳을 눈으로 볼 수 있다. 로드뷰 촬영 당시에 찍힌 사람이나 동물들 때문에 재미있는 광경을 낳기도 했었는데 이 작품도 그것과 비슷했다. 로드뷰 화면에 살인 장면이 찍혀 있었고, 지도 광 동생이 그걸 발견한 뒤로 점점 꼬이는 사건들. 진짜 작가의 상상력에 좋아요 백만 개 누르고 싶다. 메인 사건 뿐만 아니라 다른 사소한 문제들도 엮어서 반전에 반전을 보여준다. 반전이 대체 몇 번이나 나오는 거야? 숨을 못 쉬겠네. 특히 마지막 반전 두 건은 초 압권이었다.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 반전 횟수는 이 책이 가장 많은 듯.


여러 사건이 엉키긴 했지만 어딘가 단순하다 싶었는데, 가면 갈수록 일어난 일들과 지나간 미스터리들이 한데 뭉쳐서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미심쩍은 사고. 아버지의 노트북에서 발견된 ‘아동 성매매‘라는 검색 단어. 아버지와 동생 사이에 있었던 드러나지 않은 문제. 자신이 CIA와 일한다고 믿는 동생을 찾아온 FBI. 너무 일을 크게 벌려놓는 거 아닌가 할 만큼 걱정이 들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전 대통령과 동생의 대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망상인지 실제인지 궁금하게 만들어 작품의 흥미를 끌어올렸고 역시나 강력한 반전을 일궈냈다. 이런 카타르시스 때문에 독자들이 반전 요소에만 매달리는 게 아닐까? 반전이 약한 책은 재미가 없다고 치부해버리는 독자가 많아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음. 이 반전이란 게 참 날카로운 검같이 강력함과 위험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독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본다.


사건들이 하나 되는 과정이 다소 느리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자연스러워서 완벽한 개연성을 보여주었다. 지난 작품들은 이 정도로 매끄럽지 않았기에, 그동안 작가도 엄청 성장했다는 걸 느꼈다. 여러 면에서 기존 작품들과 다름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미 일이 커지기도 전에 독자가 걱정하게 만드는 기교가 특히 대단했다. 일단 앞으로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대략 예측이 되는 플롯이다. 이러면 보통 독자 입장에서는 김빠지고 기대 없이 읽게 되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긴장은 풀리지 않았고,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작품에 빠져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죄도 없는 주인공이 갑자기 표적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는 것과, 도주 중인 협박녀도 결국 제거 당할 것들은 미리 예측이 된다. 그런데 다 읽고 보니 독자가 이 예측 가능한 것들에 신경을 쏟도록 만들고, 뒤에서는 조커 카드를 여러 장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제프리 디버가 말했던 ‘미스 디렉션‘이란 것인가. 오래간만에 별 다섯 개를 만나서 내 기분 지금 신라! 그나저나 소설은 언제 쓰지... 이놈의 귀차니즘, 어떡하면 좋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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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어 데스 스토리콜렉터 50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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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도 한때 유명했다.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그랬지만, 출소 전날에 탈옥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엄청난 내러티브 때문이기도 했다. 거장 스티븐 킹은 요즘 웬만한 작품마다 칭찬을 해대서 신뢰감이 확 떨어졌지만, 이 작가에 대한 칭찬은 나도 격하게 인정하는 바이다. 일반 하드보일드 범죄소설과 큰 차이는 없지만 타 작가에 비해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편이랄까? 그래서 세련된 스릴러를 쓴다는 이미지를 가진 작가로 각인되었다. 이번에는 늘 집필하던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 얼론을 쓰셨는데, 총평은 그냥 그랬다. 시리즈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들은 유독 스탠드얼론에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호랑이에서 재규어급으로 떨어졌다 한들 맹수는 맹수이다. 이전 작품들보다는 많이 약하지만 분위기만큼은 알아줘야 한다.


주인공은 10년 전에 700만 달러를 훔치고 살인한 강도 사건으로 교도소에 들어왔다. 10년이라는 복역을 마치고 내일이 출소일인데 그는 석방 전날에 탈옥을 했다. 이유는 주연들도 모르고 독자도 모르고 작가도 모르는 것 같다. 아무튼 세상은 이 빅뉴스에 긴장 타기 시작했다. 한편 탈옥수의 소식을 들은 상원 의원과 측근들은 주인공을 잡아 감방에 넣기 위해 힘을 모은다. 죄수가 탈옥했으니 경찰들이 잡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주인공을 완전 유죄로 몰고 가려는 움직임은 어딘가 구린내가 난다. 그들은 10년 전 강도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탈옥한 이유와 그를 쫓는 경찰들의 진실은 무엇인가.


요약한 내용은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되게 정신없었다. 로보텀 답지 않게 지저분한 플롯이었다고 생각한다. 조 올로클린 시리즈를 쓰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 불필요한 설명도, 자잘한 이슈도 너무 많았다. 물론 나중엔 하나로 엮었지만 그 많은 내용들이 주인공의 도주 내용과 큰 연관이 없다고 할까,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까. 일단 주인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신이 없다. 주인공과 친했던 죄수가 석방되어 주인공을 쫓는 것과, 10년 전 강도 사건의 담당 경관이 주인공을 좇는 것. 그리고 그 경관과 함께 움직이는 FBI 요원. 그 외에도 기타 등등. 다들 탈옥수를 잡으려고 우왕좌왕하여 읽는 입장에서는 혼잡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걸 노린 거라면 정말이지 대성공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주인공은 과거 자신이 모셨던 보스의 정부를 사랑하게 되었고, 밀회하다 들켜서 반죽음 상태로 쫓겨났었다. 그런데도 여자를 잊지 못해 계속 쫓아다녔다. 사랑에 눈이 먼 남자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남자들은 누구나 경험하는 거니까, 이런 순정파 캐릭터도 나쁘진 않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선 가, 세상 때가 너무 많이 묻어선 가, 주인공이 너무 매력 없었다.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버리는 남자는 너무 비현실적이라 와닿지도 않고, 이런 하드보일드 작품에는 더욱 안 어울리는 설정 같았다. 아무튼 별로야. 게다가 주인공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어. 탈옥하고도 목적지 없이 방황하는 장면만 나와서 미친 듯이 답답했음. 독자를 숨 막혀 죽게 하려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이 두꺼운 분량이 대부분 탈옥수를 잡으려는 내용뿐이고, 주인공이 왜 탈옥한 건지 설명이 없어서 결국 체념하고 읽었다. 조금은 감이라도 와야 하는데 그런 건 없고, 주인공을 쫓는 자들과, 엮여서 피 보는 사람들의 내용을 더 중하게 다룬다. 증발한 700만 달러의 행방은 아예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것도 말을 안 해주니까. 가끔씩 10년 전 내용들이 나오곤 하지만 이게 현재와 별 연관도 없어 보여 그냥저냥 읽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팬심으로, 의리로 읽는 기분이었다.


이 작품이 더 별로 인건 탈옥을 한 뒤로 현재 장면보다 과거 내용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당연히 과거 설명은 필요하다. 주인공에 대해서 알아가야 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런데 과거에만 할애해서 현재에는 ‘탈옥했다‘가 전부이다. 탈옥 후에 이렇다 할 내용이 없다. 작가가 사건과 스토리보다는 캐릭터 설정에만 정성을 쏟아서 읽을수록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몰라 답답했다. 왜 그런 거 있잖아. 예비군들이 현역 시절 자랑할 때 엄청 뻥튀기해서 장황하게 설명하는 거. 그런 건 사실 내용이 재밌는 게 아니야, 그 사람의 말빨이 재밌는 거지. 이 책도 똑같았다. 내내 답답하다가 마지막에 반전 한방 터뜨리고 끝나는 작품들은 이제 질렸다. 게다가 이 책의 반전은 반전 축에도 못 꼈음. 스탠드얼론은 더욱 분발해주세요, 로보텀 슨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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