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집구석들 ㅣ 창비세계문학 88
에밀 졸라 지음, 임희근 옮김 / 창비 / 2021년 10월
평점 :
이런저런 이유로 독서에 흥미가 떨어진 날들이었다. 다시 본래의 리듬을 찾아야 할 텐데 큰일이다. 게으름 때문에 여태까지 붙들고 있었던 에밀 졸라의 <집구석들>을 겨우 완독했다. 솔직히 분량도 많았지만 졸라의 작품치고는 썩 흡인력이 없었단 말이다. 등장인물은 또 어찌나 많았는지, 복잡하고 정신없어서 기 빨렸던 작품이었다. 그냥 대충 적고 끝내야겠다.
옥타브 무레가 주인공인데, 본인의 가문에 대한 소개나 언급이 전무하여 ‘루공 마카르 총서‘로 보긴 좀 애매하다. 이게 주인공보다도 주변인들의 내용이 메인이라서 그렇다. 대강 요약하자면 파리의 어느 아파트로 입주한 유부녀 킬러인 옥타브의 야심과, 콩가루 집안을 숨기려는 중산층들의 발버둥으로 나눌 수 있다. 일단 중반까지는 J 집안의 차녀가 건물주의 아들과 결혼하기까지의 내용인데, 여기까지가 드럽게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하차할 뻔했다. 거기에다 온갖 인물들의 자잘한 이야기가 얼마나 치고 빠져대는지 막 정신이 없었다니까. 아직 안 읽은 분들은 참고하시길.
아파트에서 유일한 젊은 독신인 주인공은, 온갖 여자에게 들이대고 밀회를 즐기며 출세의 기회를 엿본다. 그러나 신분 상승의 기미는커녕 불륜의 현장이 발각되어 이미지만 버린다. 처음에는 옥타브가 제법 명석하고 똘똘한 인물로 묘사되더니, 갈수록 여자에게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 모질이로 변해버린다. 아쉽게도 주인공의 분량이 매우 적어서, 그런 상태나 심경의 변화가 납득이 되질 않았다. 요 친구의 불륜 상대가 J 집안의 차녀였는데, 이 일로 차녀 부부의 양가는 말할 것도 없고, 끼어들기 좋아하는 주변 집들과 기타 가십 남녀들이 아주 그냥 떠들썩했다. 나는 이보다 복잡한 인간사도 잘만 읽는 편인데, 이번 작품은 분량 때문인지 읽는 내내 기가 빨렸더랬다. 어휴.
그 밖에도 등장인물이 많은 만큼 별별 장면이 많았다. 불륜을 저지르고 그걸 알고도 묵인하는 가정. 갚기로 한 돈을 주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가정. 남자의 갖다 바치는 금전을 당연시하게 가르치고 또 배우는 가정 등등. 이런 사람들과 지낸다면 성직자라도 인간 혐오증에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자연주의문학을 고집하는 작가가 왜 이런 작품을 썼는지도 대강 이해가 된다. 듣자 하니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로 저격당했다고 믿은 중산층들이 작가를 잔뜩 비난했단다. 그러니까 부르주아들의 꼬락서니가 얼마나 꼴불견이었겠나. 나 같아도 맥이고 싶었을 듯. 아무튼 통쾌함과는 별개로 만족도는 높지 않았던 작품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