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고요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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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달이었나, 택배 보낸 거래처 주소가 잘못되어 수령자가 연락을 준 적이 있다. 양해를 구한 뒤 회수 택배기사가 방문하면 전달 부탁드린다는 통화 및 문자를 남겼고, 그 일은 다행히 잘 해결되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그 수령자의 번호로 문자가 왔는데, 놀랍게도 가족들이 보낸 부고 문자였다. 생판 모르는 남의 일이긴 했지만 그분의 죽음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겨우 연락 한 차례 주고받았을 뿐인데 그것 또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과 다름없었을까.


시작부터 죽음 얘기를 꺼낸 것은, 이번에 읽은 책이 온통 삶과 죽음을 둘러싸고 있어서였다. 서른을 앞둔 취준생 두 남녀가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간다. 우울한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가뜩이나 쪽팔린 형편을 루저 인생으로 못 박아버렸다. 이 알바는 업무시간도 대중없을뿐더러 일이 매번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이 되어서야 일을 마친 두 사람은, 첫차가 운행할 때까지 서울 도심을 방황하거나 24시간 맥도날드에 들어가서 시간을 때운다. 하루 중 가장 버티기 힘든 그 시간대가 이들만의 자유이자 솔직해지는 순간이었다. 각자의 못났음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시간.


나 하나만 힘들고 아프다면 차라리 다행일까. 집안도 문제 있고, 가족과도 소원하고, 또 그것이 내 탓이기도 한 참말로 노답 그 자체인 상황. 내 앞가림도 잘 못하는데,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데 어디 가서 투정 부릴 수도 없는 노릇. 이 딱한 청춘들의 넋두리를 독자들이 들어주도록 하자. 엄마와 이혼한 남주의 아빠는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엄마가 이혼을 바란 것도, 아빠가 죽음에 흥미가 생긴 것도 다 누나를 죽게 한 남주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서로 목조르기 게임하다가 그만 죽어버린 누나. 그 사건으로 가족들의 고장 난 시계는 그렇게 버려져있었다.


여주를 태운 남주의 스쿠터는 서울 곳곳의 맥도날드로 향한다. 햄버거를 씹으며 신세한탄도 좀 해주고, 소확행을 꿈꾸다가 이내 죽음의 주제로 돌아온다. 며칠 전에는 뒷집 아저씨가 돌연사 하여, 남주 아빠가 조촐한 장례를 치러주었다. 죽음은 이렇게나 우리 가까이에 서식하고 있다. 돈을 모으려면 사망자가 많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죽어달라 할 수도 없지 않냐는 두 사람. 현실에 발목 잡히고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허락된 건 겨우 두세 시간의 서울 일주 뿐이었다. 누구는 죽음을 보고 기나긴 여행이라고 하던데, 적막한 서울의 밤을 쏘다니는 장면들이 꼭 죽음을 여행하는 듯 보이더라.


이혼 후 새 가정을 꾸린 엄마는 어쩌다 한 번씩 집을 찾아왔다. 자유분방하고 막무가내인 엄마를 이해하기에는 떨어져 지낸 세월이 너무도 길었다. 그럼에도 뭐라 할 수 없는 것은, 누나의 죽음을 남주 탓으로 돌리지 않아서였다. 말은 안 했지만 아마도 엄마의 방문은 누나가 그리워서일 거고, 그래서 아빠는 오래도록 이사도 못 가고 이 집과 누나 방을 보관하는 중일 거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너무 잔인한 처방이지 않나. 왕따를 당한 학생이 전학 가듯이, 또 답 없는 직장에서 이직하듯이, 고통스러운 공간에서 그만 벗어나는 게 모두를 위한 길이 아닐까. 보다시피 이런 경우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다행히 남주의 트라우마는 잘 해결되었다. 그리고 둘 다 상조회사에 정규직 면접을 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들과 나를 포함한 청춘 모두의 좋은 결과를 바래본다. 또한 죽음을 수용하고 작별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열린 마음을 가져봐야겠다. 어쩌면 그것이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비결일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예상외로 나이스 한 작품이었다. 내내 우중충한 분위기에 저텐션이라 시큰둥하게 읽었는데, 이제 보니까 가랑비에 옷이 다 젖어버렸다. 우울하면서도 뭔가 기분 좋은 멜랑꼴리함을 잘 표현한 고요한 작가에게 삼삼칠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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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9-12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척 낭만적인 제목인데 내용은 슬프네요. 그래도 뭔가 긍정과 희망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전해져 저도 박수를!

물감 2024-09-12 10:00   좋아요 1 | URL
퇴폐미를 가진 배우의 아우라와 비슷한 느낌일라나요. 슬프긴 한데 또 낭만적인 작품입니다. 이건 읽어보셔야만 이해될 거에요. 가독성도 훌륭했습니다^^

coolcat329 2024-09-12 0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목조르기 게임을 하다가 누나가 죽었다니...기막힌 팔자네요. ㅠㅠ
너무나 센 팔자라 센 직업을 가져야 살 수 있나봅니다. 업상대체라고 하더라구요. 두 사람 다 상조회사 정규직! 됐겠죠?

물감 2024-09-12 10:24   좋아요 1 | URL
누나의 죽음에는 여러 비하인드가 있습니다만, 기막힌 팔자는 틀림없네요 ㅠㅠ
작중에서는 일자리를 찾고 찾다가 결국 상조업체까지 온 것으로 나와요. 그리고 둘 다 상처만 받고 살아와서 그런지 알바 일도 무덤덤하게 하더라고요. 괜히 찡했습니다.
알바경력을 쳐주어서 아마 정규직 되지 않았을까요?! 열린 결말식 희망이긴 해요ㅎㅎ

stella.K 2024-09-12 1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읽어서 좋긴한데 말씀하셨던 그분은 어쩌다 돌아가셨을까요? 그분 가족은 어떻게 물감님께 전화를 한 거고요? 그러니까 본인이 직접 못 전하고 가족이 전한 걸까요? 어쨌든 좀 황망했겠어요. 죽음이 내게서 먼 것 같아도 참 그렇지가 않아요. 그죠?
책 물감님이 좋다고 하시니 저도 기억하겠슴다. 읽게될지는 모르겠지만. ㅋ

물감 2024-09-12 10:37   좋아요 2 | URL
전화가 온 건 아니고 돌아가신 분의 번호로 문자가 온 건데, 가족들이 핸드폰 통화/문자 목록으로 전부 연락을 돌린 거더라고요. 돌아가신 사유는 안 적혀있어 잘 모르겠지만, 짧게나마 애도는 표했습니다. 어제는 보험사에서 암 진단비가 너무 적게 들어있어 추가 가입을 권장하는 전화가 왔는데요, 평소같았으면 됐다고 할텐데 일단 제안서라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이런 걸 걱정하는 날이 오네요. 하하하...
가볍게(?) 읽기 좋은 작품입니다. 생각거리도 풍부하고요. 시간은 잘 가던데요 ㅎㅎ

stella.K 2024-09-12 16: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물감님 방금 프사 바꾸셨네요. 먼저 프사 귀여웠는데. ㅋㅋ

물감 2024-09-12 18:36   좋아요 2 | URL
ㅋㅋㅋ 파란 배경이 다가올 계절과 어울리질 않아서 말이죵

stella.K 2024-09-14 2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핰, 그때는 스맛폰에서 봐서 몰랐는데 PC에서 보니까 이 프사도
되게 재밌네요. 이런 이미지는 어디서 구하시나요? ㅋㅋ
설마 물감님을 대변해 주는 건 아니죠?
어쨌든 들어 온 김에 추석 연휴 잘 보내십쇼.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책도 많이 읽고. 잠도 많이 자고요, ㅎㅎ

물감 2024-09-14 23:17   좋아요 2 | URL
원래 프사는 본인을 어느 정도 대변하지 않나요?ㅋㅋㅋ
스텔라님도 추석 잘 보내시길요😀😁😄

페크pek0501 2024-09-20 1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 님이 바꾸신 프사 때문에 헤매다가 이제 찾음. 물감, 이란 닉네임을 쓰시는 분들이 많네요.
물감 님도 스텔라 님이 K를 붙이신 것처럼 뭘 붙여야 찾기 쉬울 것 같네요. 제 닉네임은 하나뿐인디...ㅋㅋ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니 기본은 너끈히 넘겠지요. 게다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 같고요.
저는 2024신춘문예 수상작품집을 읽고 있어요. 어떤 글이 뽑히는지 궁금했지요. 두 개만 읽으면 완독, 입니다. 그런데 제가 느낀 건 수상작이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라는 것, 입니다.ㅋㅋ

물감 2024-09-23 17:36   좋아요 2 | URL
하하하, 차라리 제 댓글을 찾아서 프사 누르는게 더 편하실 거에요.
저는 서재 방문을 다 그런 식으로 하거든요 ㅋㅋ
페크님도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요새는 서재를 잘 안 와서 소식도 모르겠네요.
저도 수상작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나마 나무옆의자의 세계문학상은 좀 괜찮게 보고 있어요. 읽을 건 많은데 독서는 잘 안되어 큰일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