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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서 쓴 수기 ㅣ 창비세계문학 10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근식 옮김 / 창비 / 2012년 10월
평점 :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사회 용어가 있다. 어느 집단이든지 간에 또라이가 꼭 있어서 생겨난 말인데, 요즘은 빌런이라는 표현으로 순화해서 불리는 중이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도 그 빌런이 계시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믹서기에 넣어 갈아버려도 시원찮을 저런 인간조차 문학 속의 인물로 배정된다면 하나의 훌륭한 서사가 탄생한단 말이지. 그렇담 누구의 어떤 삶이든지 간에 다 보기 나름이라는 얘긴가. <지하에서 쓴 수기>를 읽다가 곁길로 뻗어나간 생각을 적어봤다. 이번 주인공은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자의식 과잉의 또라이시다. 현실에서는 조금도 관심 주지 않을 인간인데, 왜 이같은 비호감도 책으로 만나면 잠자코 지켜보는 게 가능할까. 문학의 힘이란.
이것은 40년간의 지하 생활로 잡생각의 가지들이 마구 뻗어나갔던 어느 괴짜의 독백록이다. 1부에서는 웬 헛소리가 메들리로 나오길래 또 잘못 걸렸나 싶었다. 근데 읽다 보니 어라, 의외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닌 것이다. ‘나‘는 이런저런 담론의 각 장마다 수시로 트집을 잡고 불만을 표하는데, 그의 발언들은 살다가 한 번씩 삐딱해졌을 때에 들 법한 생각이어서 막 언짢거나 거부감이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나‘는 남들에게 존경받기를 원하지만 그럴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 이렇게 쓴소리나 내뱉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나‘를 경멸하고 내 말에 반박한다면 철저히 응징하겠단다. 이렇듯 심보가 고약하고 저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지만 개인의 욕구가 타인의 방향과 다른 것뿐이다. 그러니까 사회적 통념에서 좋고 나쁨은 있어도, 맞고 틀림은 없음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있다. 다소 표현이 거칠어서 그렇지, 은근히 철학적이고 사색적인 작품이다.
난해하다고 알려진 작품이던데, 나는 1부에서 보여준 난해함보다 2부의 난해함이 좀 더 거시기했다. 2부는 이야기 식으로 바뀌어서 좋았다만, ‘나‘의 멘탈이 극과 극을 오가느라 따라잡기에 버거웠다. ‘나‘는 싫어하는 동창의 송별식을 억지로 따라와 물을 흐려놓는다. 친구들의 비난에도 자신의 애티튜드를 고집하는 ‘나‘는 돌아서서 후회했다가 다시 욱하는 이 태세 전환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지하공간에 오래 갇혀서 맛이 간 줄 알았더니 실제 지하가 아닌 의식의 음지를 가리키는 말이란다. 원래 남들과 잘 못 어울리는 성격의 ‘나‘는 스스로를 낭만주의자라 일컫는다. 그 특성이란 모든 걸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뚜렷하게 바라보며- 아름답고 고상한 것을 내적으로 지켜내어 자신을 완전하게 보존하는 것이다(80p). 따라서 자신의 확고한 믿음과 판단에 관하여는 절대 사수해야만 했던 건데, 혹여 그 똥고집들이 신념에서 비롯됐다면 모를까, 제 성정을 못 참고 막 나가니까 어이가 없는 거다.
‘나‘의 난해함은 계속된다. 이제 막 직업여성이 된 리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참된 삶과 사랑을 읊어가며 인생 대선배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 사랑이 어떻고, 결혼은 어떻고, 부부와 자식 관계는 어떠하며... 온갖 청산유수의 훈계를 스트레이트로 쏟아내는데, 바로 이전까지 친구들에게 독기를 품고 칼을 갈던 상황에서 갑자기 이런 장면으로 이어져 도무지 맥락이 없었다랄까. 그렇게 헤어지고 ‘나‘의 집을 찾아온 리자는 그의 분노조절장애를 직접 보고서 당황한다. 자신의 가난과 허세를 들켜버린 ‘나‘는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린 친구에게 괜한 자존심을 부려댄다. 지가 상처 줬으면서 수치와 모욕을 받았다는 건 또 무슨 사고방식일까. 사회활동이 없거나 인간관계가 끊어진 사람이 자기 생각에 갇혀버리면 이렇게나 위험하다.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진짜 참 나이 먹고 뭣들 하는 짓거리인지. 하지만 이것 또한 앞서 말한 옳고 그름이란 과연 존재하는가를 곱씹어 보게 해준다는 사실. 그래도 말야, 존경받고 싶다면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무래도 좋다지만 똥으로 메주를 쑤어선 안되는 겁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