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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 헨리 제임스 장편소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92
헨리 제임스 지음, 이승은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2월
평점 :
유령 소설의 원조 격인 <나사의 회전>을 읽었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길래 궁금했었는데, 요즘 열대야에 딱이겠다 싶어서 골랐드만 따분해갖고 혼났다. 재밌다는 평도 많으므로 이 글은 적당히 무시해도 되겠다. 내용은 생각보다 별거 없다. 두 어린이의 가정교사를 맡은 주인공의 눈에만 유령이 보이기 시작한다. 유령의 인상착의를 보모한테 말했더니, 과거에 죽은 이 저택의 관계자라고 한다. 그것만으로도 두려운데 아이들이 유령과 소통하는 기분도 들고, 자신에게는 꼭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행동하고 있다. 이렇듯 단순하면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지만, TMI에 가까운 주인공의 방대한 내레이션이 오히려 역효과로 느껴졌다. 서양권 작가들의 장황한 묘사와 지나친 미사여구를 남발하는 습관을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몰입의 선을 넘지 않았을 때라야 이야기다워지고 전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생각이 너무나도 많은 탓에 한 장면을 길게 붙잡는 패턴이 반복된다. 그나마 단순한 내용이라 망정이지, 복잡했다면 엄청 늘어졌을 게 눈에 훤하다. 이 작품의 최대 단점이다.
디테일에 대해 할 말이 무궁무진한 작품이긴 했다. 작중 유령은 둘이다.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 이들은 사실 주인공이나 아이들에게 직접적으로 뭔가를 하지는 않는다. 그저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는 게 다일뿐. 아무런 활약도 없어 맥거핀에 가깝다고나 할까. 아이들 얘기로 넘어가자. 이제 갓 입학한 학교에서 쫓겨난 소년은 집으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소년은 절대 학교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게다가 슬픈 기색 하나 없이 주인공의 교육을 잘만 받고 지낸다. 아직 학교는 못 갔지만 여동생도 마찬가지다. 두 아이는 지난 일들에 대해, 즉 자신들이 겪었던 것들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질 않는다. 무엇보다 어린 나이에 전혀 맞지 않는 조숙함과 차분함이,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끔 하면서도 경계하게 만들었다. 딱히 뭐가 없는데도 설정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이게 다가 아니다. 아이들이 자꾸 어딘가를 홀린 듯이 보게 하여 화자의 불안함을 연출한다. 또한 멀쩡한 척하는 아이들의 보호와, 유령을 알아내려는 주인공의 괜한 심리에 젖게 한다. 이처럼 빠져들 수밖에 없는 미스터리 요소는 충분히 활용한 셈이다. 사실 칭찬보다는 태클을 걸어야 할 게 산더미인데, 문제는 저자가 의도적으로 곳곳에 함정을 파 놨다는 거. 아무 생각 없이 읽어나가서 잘 몰랐지만 이렇게 독자와 밀당하는 작품을 꽤나 좋아한다. 역시 소설은 분석하는 맛이제.
일단 주인공이 어째서 아이들과 유령에 관한 얘기를 금기시하는지가 의문이다. 살아생전 유령들이 아이들과 어떤 사이였는지, 이 집에 어떤 가정사가 있었는지 작중에서 전혀 언급된 게 없다. 두 아이를 오래 지켜본 바, 감정 기복이 심하지도 않고 대화 수준도 높은 편이었다. 그러니 자리를 만들어 차분하게 대화를 좀 했으면 싶은데, 주인공 혼자만 짊어지려는 태도로 내내 회피하며 빙빙 돌고 있다. 결국 말만 하고 지켜보기만 했을 뿐, 어떤 행동이랄 것도 없으면서 이상한 사명감에 빠져가지고 그냥. 아니, 사명감보다도 아이들한테 휘어잡혔다는 쪽이 더 맞겠다. 점점 묘한 낌새를 느끼고도 계속 눈 가리고 아웅하며 과잉보호하는 주인공. 교사가 아이큐만 케어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뭘 자꾸 주제넘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지. 지금 말한 것들은 저자의 의도적인 설정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유령한테 쫄지 않는 걸 보면 딱히 새가슴도 아니던데, 유독 아이들 앞에만 서면 깨갱하는 성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태클은 이쯤 하고.
<나사의 회전>은 일부러 설명을 빼놓아 모호한 해석을 낳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소년의 퇴학 사유, 부재중인 집주인, 유령들의 과거, 유령과 아이들의 교감, 보모의 과잉 불안, 그 외 필요한 여러 가지가 누락되어 있다. 그런고로 다양한 해석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많은 해석 중 나는 주인공이 공포로 인해 살짝 맛이 간 거라는 쪽이 그럴싸했다. 다른 이들이 거짓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유령이 보이는 건 주인공뿐이다. 그녀 눈에는 아이들이 유령과 교감하는 듯 보였다지만, 두 아이는 유령과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고 아는 척하는 장면조차 없었다. 이게 주인공 시점에서 보면 모두가 의심스럽게 보이나, 제 삼자의 시점으로 보면 주인공의 과대망상 히스테릭처럼 비춰진다. 근데 또 유령의 생김새까지 맞췄으니 헛것을 봤다고도 할 순 없다. 이처럼 어느 관점에서 해석을 하더라도 꼭 찝찝한 데가 있는 묘한 작품이다. 해석이 더 재밌는 작품이라니, 에라이.
아무래도 읽으면서 카프카가 계속 생각났다. 카프카 역시 이야기 속에 구멍을 파두기로 유명하다. 다만 카프카는 작품이 해석 받기를 거부해서였고, 제임스는 그 반대라는 점이 다르다. 닭이냐 알이냐 식의 끝없는 해석을 낳았으니 형태는 달라도 뿌리는 같은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공통점이라면 이야기를 맛깔나게 쓸 줄 모른다는 건데, 주제나 화두가 괜찮대도 베이스가 밋밋하면 의도한 게 눈에 안 들어온단 말씀. 허나 고전이 투머치한 맛으로 보는 거라면 참아야지 뭐 어쩌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