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메이카 여인숙
대프니 듀 모리에 지음, 한애경.이봉지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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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들은 나를 남들과 어울리지 않으려는 아싸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생각은 틀렸다. 인류애가 넘치는 나님은 사람들과 지내는 걸 매우 좋아한다. 단지 직장에는 잘 통하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 대체 그 어느 누가 일부러 고립되고 싶어 할까. 분명히 나님은 싱글 플레이어에 가깝지만 약속을 잡는 것도, 집에 초대하는 것도, 남의 집에 놀러 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들이 더더욱 귀중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말야 내가 이렇게나 사람 좋아하는 스몰 토커인데, 도대체가 맞지 않는 닝겐들 가운데서 몇 시간씩 있으려니 요즘 들어 아주 그냥 오지게 현타를 맞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입사한 곳마다 인간들한테 데여서 퇴사를 했다. 이게 다 내가 너무 착해서 그렇다. 이 같은 애정결핍자들은 타인에게 칼같이 선을 긋거나 완전히 마음을 닫는 게 실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세상은 도통 내 맘 같지 않고 나에게 협조해 주지도 않아 어딜 가든 비주류에 속하고 마는 것이다. 보다시피 나님은 이렇게나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단다. 젠장할.


<자메이카 여인숙>은 듀 모리에의 장편 중 가장 무난하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로 나를 닮은 주인공의 어중간한 성격에 있다. 매 작품마다 뚜렷한 캐릭터를 보여주었던 반면에, 이번 주인공은 수시로 이랬다 저랬다를 하고 있다. 그게 딱히 인간미 있어 보이지도 않는 데다 솔직히 스토리마저 쏘쏘 해서 이래저래 아쉬움이 컸다. 따라서 큰 기대 없이 술술 넘긴다면 그냥저냥 무난한 재미는 볼 수 있을 거다. 그와 별개로 가독성 하나는 참 끝내준다.


모친마저 별이 되어 완전히 고아가 된 메리 옐런. 그녀는 모친의 유언을 따라 이모한테 가서 살기로 한다. 알고 보니 이모네는 타 지역 외진 길목에 덩그러니 있는 여인숙이었고, 지역민들은 그 근처만 가도 부정 탄다며 질색하더랬다. 아아 뭔가 쎄하지만 당장 돈 없고 갈 곳 없는 우리의 따님은 일단 여인숙 초인종을 누르고 본다. 이윽고 등장한 골리앗 체구의 아재가 하는 말, 아임 유어 이모부. 그 옆에서 달달달 떨고 있는 이모의 동공 드리블까지. 주인공이 느낀 불쾌와 당혹이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마치 똥밭에서 하는 10시간짜리 흠뻑쇼 같달까. 저자의 스타일을 알지만서도 볼 때마다 참 거시기허다. 자, 여기까지만 보면 느낌 있고 좋았는데 이다음부터는 RPM이 팍팍 떨어진다. 매번 기대했다가 김빠지는 패턴이 내내 반복되거든. 사실 이게 문제가 아니라, 앞서 말한 주인공의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가 문제였다.


사납고 막돼먹은 이모부 앞에서 꽤나 센 척하는 메리. 그게 다 영혼까지 탈탈 털린 이모를 지키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밤중에 찾아온 밀수꾼들의 불법 현장을 목격하자 저절로 주제 파악이 된다. 이대로 달아나고 싶지만 저 불쌍한 이모를 놔두고 떠날 수야 있나. 그렇다고 그녀를 도와줄 사람이나 있나. 이모부와 밀수꾼들을 신고한다 해도 증거가 없고, 이 외딴 구역을 지나려는 이조차 없다. 자메이카 여인숙은 밀수업 유통지로 딱이었고, 운영자인 이모부를 편드는 이모는 완벽한 인질이었다. 하여 이도 저도 못 가고 멘탈 바사삭 중일 때 등장한 모 남성이 하는 말, 아임 유어 이모부 동생. 결국 마음 뺏긴 그녀는 그에게 휘둘렸다가 반대로 휘어잡는 밀당을 반복한다. 또 세상 무서운 게 없다는 듯 굴다가도 막상 혼자가 되면 두려움에 쩔쩔매기도 한다. 몰래 집 나와서 떠돌기를 몇 번 하고, 밀수꾼들과 엮여 죽을 고비도 수차례 넘긴 주인공을 보며 역시 20대 초는 팔팔하구나... 아 이게 아니라. 아무튼 강인했다가도 한없이 쭈글어드는, 이 극과 극의 성격 때문에 몰입이 여러 번 깨지곤 하였다. 아무래도 초기 작품이라 그런지 좀 미흡하긴 해. 그럼에도 별점을 높게 준 것은 작가 특유의 서스펜스가 일품이라서다.


좀 더 잘 쓰고 싶었지만 너무 피곤해서 이 정도로 끝낼란다. 아직 안 읽은 분들은 얘기한 대로 기대 없이 읽기를 바란다. 적고 보니 주인공 캐릭터에 대해서만 주절주절한 거 같네. 매리도 그냥 나처럼 착해빠져서 그런 거야. 그래서 현타 오지게 맞고 정신 못 차린 걸 거야.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여튼 이렇게 장편은 다 읽었고, 단편들은 뭐 언젠가 읽게 되겄지. 그럼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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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1-17 08:1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모부 동생의 등장이 풀어낼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저도 곧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책은 물론,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ㅋㅋㅋ

물감 2023-01-17 09:08   좋아요 1 | URL
아니아니 기대하지 말고 읽으시라니깐요 ㅋㅋㅋㅋㅋㅋㅋ
이걸 레베카나 레이첼 급으로 생각하고 보시면 안됩니다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3-01-17 10:5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어쩜 이리도 재미있게 쓰시나요?
주인공 성격에 일관성이 없어 독자가 좀 혼란스럽겠는데요. ㅎ
서스펜스의 여왕! 이런 타이틀 제가 작가라면 듣고싶을거같아요.

물감 2023-01-17 11:41   좋아요 1 | URL
쿨캣님 왜이리 오랜만인가요 ㅎㅎㅎ
컨디션이 나빠서 반쯤 포기하며 쓴 건데도 좋아해주시다니, 쿨캣님은 사랑 그 잡채!
작가가 된다면 뭐라도 타이틀이 생기는 게 유리할 것 같긴 해요 ^^

은오 2023-01-17 15:59   좋아요 3 | URL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물감님은 저랑 비슷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20000.

물감 2023-01-17 17:09   좋아요 1 | URL
은오님의 알라딘 활동으로만 봐선 도저히 저랑 같은 과라고 믿기지 않지만 존중해드리겠어요 ㅋㅋㅋ 은오님의 독서와 글쓰기를 응원합니다아

호우 2023-02-01 18:05   좋아요 1 | URL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착하고 선 못 긋고 세상은 내맘같지 않고. 제 얘기인듯 해서 깜짝 놀랐어요. 그래도 힘냅시다^^

물감 2023-02-01 18:34   좋아요 0 | URL
댓글 감사합니다. 역시 착한 사람들은 이렇게 고생만 하다 갈 팔잔가봐요ㅎㅎ 힘내시고 알라딘서 자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