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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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개구리 심보상 호평이 자자한 책은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데, 김영하 작가의 책들은 그런 색안경이나 거부감이 들지가 않는다. 솔직히 이 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어떻게 하면 독자의 마음이 울리는지를 귀신같이 잘 알기 때문이다. 거기다 절제미가 담긴 고유의 필력까지, 정말 몇 없는 사기캐 중 한 명이다. 그런 재능러가 무려 9년 만에 차기작을 들고 왔는데 을매나 좋았던지, 모든 불만을 싹 지워버렸지 뭡니까 글쎄. 야 이건 올해의 베스트다. 지금도 여운이 가시질 않네.


이것은 휴머노이드와 더불어 살아가는 근 미래의 이야기이다. 요즘 이런 책들이 너무 많아서 별 기대 없이 읽었는데, 기대보다 더 깊은 생각거리를 갖게 해 역시 김영하인가 싶더랬다. 앞서 많은 리뷰가 있으니 줄거리는 생략하겠다. 주인공 철이는 자신이 휴머노이드란 걸 알게 되자 극구 부인한다. 두렵고 불안한 인간의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똑같이 먹고 자고 싸는 자신이 어떻게 기계란 건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비록 로봇이지만 마치 인간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듯한 효과를 주어서, 이렇게 로봇과의 구분이 없어져서 나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면 어떡할래?라는 듯한 역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계속해서 인간인듯한 로봇을 내세워 허물어져가는 윤리와 도덕문제들을 언급한다.


인간과 똑같은 감정과 사고를 가진 로봇은 기계일까, 아니면 인간처럼 대우해도 될까. 인간처럼 질병을 앓고, 운동해서 몸을 단련하고, 공부한 만큼 똑똑해지고, 나이 들면 늙기도 하는, 실제 인간의 육체와 일치하는 휴머노이드를 본다면 그걸 기계라 할 수 있을까. 그런 로봇들이 대중화된다면 인간의 설자리는 점점 잃게 된다. 지금도 심각한 부동산이나 취업문제를 로봇들과 경쟁해야 한다면 이해가 될 거다. 과학은 언제나 극명한 양면성을 보여주었지만, 인간들은 장점에만 주목할 뿐 단점은 감수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해왔다. 몇 번 말했지만 나는 이런 현상에 좀 부정적인 입장이다.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한다는 명분이야 좋지. 근데 그 변화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느덧 낭떠러지 위로 밀려난다. 그렇게 도태된 사람들이 다 빠지고 나면 남은 이들끼리 잘 먹고 잘살까? 글쎄다. 기계가 인간을 장악하고 나서야 과학이 가진 공포를 절감하려나. 그런 전개로 흘러가는 이 작품을 단지 소설이라며 웃고 끝나선 아니 될 일이다.


기계들의 전쟁으로 몸이 부서지고 머리만 남은 철이. 할 줄 아는 건 오로지 생각하는 일뿐인 상황에서, 몸이 없어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절망스러운지를 깨닫는다. 이 장면은 우리가 평범했던 일상을 박탈당했을 때의 비참함을 느끼게 한다. 직장에서 다들 바쁜데 나만 업무가 없을 때의 기분을 아는가? 그 곤욕이 반복되면 진짜 정신병 걸린다. 인간은 자기가 쓸모없다 생각되면 목숨마저 버리는 존재인데, 피조물들이 더 이상 창조자가 필요 없다면 뭐 이제 인생 로그아웃 해야 한다. 작중에서는 인간이 다 죽자 기계들이 서로 만들고 고치면서, 피조물이 창조자로 뒤바뀌는 씁쓸한 시대가 열린다. 그렇게 기계는 인간과, 인간은 세상과 작별인사를 나눈다.


무엇이 인간다움을 결정짓는가. 인간의 개별성은 어떻게 주어지는가. 이 뻔한 주제를 다른 각도로 접근해보자. 인간들은 영생을 꿈꾼다. 그 불가능한 꿈을 로봇은 이룰 수가 있다. 데이터를 백업해뒀다가 새로운 신체에 연결만 하면 끝이다. 몸이 부서졌던 철이는 새로운 신체와 삶을 이어갈 선택권이 주어진다. 친구와의 재회를 바라며 이전과 똑같은 몸을 주문한 철이는, 다시 주어진 삶이 다해 가도 영생을 택하지 않았다. 자신은 로봇이 맞지만 그래도 인간의 의식을 지닌 채로 생을 마감하고자 했다. 이렇듯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일 때가 비로소 인간다워진다고 생각한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겨울이 가면 봄이 와야 한다. 수억만 년을 사는 별들도 언젠가는 소멸하고 만다. 이러한 만물의 법칙 가운데, 끝은 없고 시작만 있는 생애를 꿈꾸는 것이야말로 인간 실격이라 하겠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니까 고귀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 거다.


사실 SF의 인문학들이 다 고만고만해서 매번 흥미롭지는 않다. 그래서 휴머노이드 작품은 이것으로 그만 읽어야겠다. 2022년도 곧 끝나간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힘든 시간들을 보냈는데, 새해에는 덜 아팠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길 소망한다. 그리고 디스토피아 소설들이 제발 현실화되지 않길 바래본다. 나와 당신이 최후의 온전한 인간으로 남겨지길 기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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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12-12 2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영하 작가님은 똑똑하시군요!!
물감님의 마음을 훔쳤어요ㅋㅋㅋ

물감 2022-12-13 07:23   좋아요 1 | URL
저를 만족시키면 똑똑한 작가가 되는군요ㅋㅋㅋ아이 제가 또 뭐라고ㅋㅋㅋ

잠자냥 2022-12-13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물개구리감님이 별 다섯이라니 약간 동하네요?!

물감 2022-12-13 16:17   좋아요 2 | URL
하루에 별명이 하나씩 늘어난다...ㅋㅋㅋ

SF에서 볼 수 있는 인문학의 총 집합체...라고나 할까요.
이야기도 좋았지만 주제와 메시지가 정말 다채롭습니다요 후후후.

독서괭 2022-12-13 18:34   좋아요 1 | URL
자냥님 어떠실지 궁금하네요 ㅎㅎ

독서괭 2022-12-13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물감님은 좋으셨군요! 역시 소설은 직접 읽어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물감 2022-12-13 20:27   좋아요 1 | URL
저는 이같이 인간미 느껴지는 작품을 좋아합니다ㅎㅎㅎ 인기많은 이유도 알겠더라고요~~

꼬마요정 2022-12-14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게 봤어요. 김영하 작가님 이번에 진짜 칼을 간 것 같았어요 ㅎㅎㅎ 영화화 된다는데 기대됩니다^^ 물감님 리뷰 너무 좋아요!!

물감 2022-12-14 17: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진짜 칼을 갈았네~ 이런 기분이 ㅋㅋ
영화라고요!? 와 이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야 할 거같은데요!
아무튼 기대해봅니다 ㅋㅋㅋ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