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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18년 6월
평점 :
다 죽어가던 나의 까칠함이 이 책 덕분에 다시 부활했다. 내가 질색하는 일명 ‘이과‘소설이다. 온통 수학, 과학적인 내용으로 가득하여 내가 지금 소설을 읽고 있는 건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읽는 건지 구분이 안된다. 그만큼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보다는 온갖 잡다한 지식과 설명으로 도배되어있다. 문학적인 즐거움을 찾아볼 수 없는 이런 무채색의 작품을 나는 너무 싫어한다. 전 세계에서 400만 부 이상이 팔린 책이라는데, 대체 이 책의 어디가 그렇게 매력적인 거임? 나 빼고 세상 전부가 수학 과학 마니아들이신가.
옆집 푸들이 쇠스랑에 찔려 죽어있었다. 마침 근처에 있던 소년이 용의자가 되었다가 풀려나고, 이 사건의 범인을 찾기로 한다. 그러나 소년이 사건에 엮이길 원치 않는 아빠는 아들의 탐정놀이를 강제 중단시킨다. 소년은 자폐증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아빠의 옷장을 뒤지던 소년이 엄마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들을 발견한다. 심장병으로 죽었다던 엄마는 멀쩡히 런던에서 살고 있었다. 아빠와의 트러블이 있은 후 소년은 엄마를 찾으러 런던에 간다. 하지만 동네를 떠나본 적 없는 이 어린 영혼은 가는 곳곳마다 어려움에 봉착하는데...
전에 읽었던 ‘아몬드‘의 주인공이 생각난다. 편도체가 손상되어 감정을 못 느끼던 소년. 이 책의 주인공은 행동 장애를 가지고 있어 끝없이 ‘왜요?‘를 반복하는 5살 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머리는 또 좋아서 패닉이 올 때면 머릿속으로 근의 공식이나 방정식 같은 수학 문제를 푸는 등 상당한 괴짜 기질을 보인다. 물론 이 캐릭터를 만든 건 작가이므로 이 작가 또한 괴짜라는 뜻이다. 아무튼 내 스타일은 아님. 나중에 엄마를 찾으러 간 다음부터는 분위기가 전환되길 바랐다. 그러나 소년의 여정은 반지원정대처럼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는 게 아니라서 어떤 재미도 감동도 없었다. 영양가 없는 문장도 많아 맥 빠지는 것도 여러 번이었다. 이쯤이면 작가가 일부러 이러는 거 같기도 하고.
제목만 보면 개에게 일어난 사건을 둘러싼 스토리인 듯한데 그 내용은 아주 잠깐뿐이었다. 추리하는 장면은 없고 소년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한다는 자기소개를 디테일하게 늘어놓는 내용이 더 많다. 캐릭터가 그러하니 이해를 해야겠지만 그런 횡설수설하는 듯한 글로 내 아까운 시간을 왜 날려야 하는가. 범인 또한 맥빠지게 밝혀진다. 아빠가 감정 조절 실패로 홧김에 죽인 거였다. 참고로 이건 스포가 아니다. 어차피 이 책은 범인 잡는 탐정 소설이 아니니까. 지금 생각해보니 뭔가 어그로성 제목에 낚인 듯. 차라리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나 ‘이웃집 아이를 차로 치고 말았어‘ 같은 정직한 제목으로 지었으면 욕이나 덜먹지. 작가가 문학 형식을 빌려서 본인의 똑똑함을 자랑하고 싶은 거로밖에 안 보인다.
이 분위기 산만한 작품에 그나마 집중할만하면 자꾸 딴 길로 샌다. 할머니와 대화하던 중 갑자기 우주 천체의 법칙을 설명하질 않나, 지도교사와 상담 중 갑자기 수학공식을 설명하질 않나. 챕터마다 스토리로 시작해서 온갖 공식 내용으로 끝난다. 요즘 말로 엄청난 설명충이다. 나는 문학에 이런 내용들로 분량이 채워지는 것을 싫어한다. 전혀 궁금하지도 않은 물리학, 원자학, 수학, 천체학 설명을 내가 왜 들어야 함? 그게 알고 싶었으면 전공서적을 읽었겠지. 주인공한테 애정이든 동정이든 감정이입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불필요한 내용들 때문에 도저히 정이 안 든다. 싫어하면 안 될 캐릭터를 이런 식으로 싫어지게 만드는 건 작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만든 캐릭터를 혼자만 좋아하면 어떡하냐, 독자들이 사랑하게 만드셔야지. 아무튼 베스트셀러는 나랑 안 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