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음악처럼]음악이 곧 나다

‘레이’ ‘앙코르’ ‘샤인’
가끔은 노래를 듣는 행위만으로도 위로 받을 때가 있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구나’ ‘아프고 외롭고 힘든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어’ 라고 자위할 수 있다. 그런 노래를 만나게 되면 계속해서 반복해 듣는 좋지 않은 습관이 있다. 가사가 하나도 들리지 않을 때까지 듣고 또 들으면 그제야 그 노래를 극복하게 된다. 그 노래가 가지고 있는 상처를, 그 감정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다. 노래는 하나의 삶이 아닐까.
진짜로 노래가 영화가 되어버린 예들이 있다. 레이 찰스의 삶을 다룬 ‘레이’, 쟈니 캐쉬의 전기 영화 ‘앙코르’ 등이 그것이다. 소울 음악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레이 찰스의 불행했지만 감동이 있는 삶은 영화 ‘레이’에 담겨진 노래처럼 귓가에 들려온다. 불후의 명곡이라고 할 수 있는 ‘히트 더 로드 잭(Hit the road Jack)’‘언체인 마이 하트(Unchain my heart)’‘조지아 인 마이 마인드(Georgia on my mind)’의 선율 위로 노래의 배경과 레이의 삶이 겹쳐져 그려질 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진실성을 발견하게 된다.
레이와 닮은 격정적이고 시련이 가득한 삶을 산 쟈니 캐쉬도 마찬가지다. ‘크라이 크라이 크라이(Cry Cry Cry)’‘아이 워크 더 라인(I walk the line)’, 준 카터와 듀엣을 하던 ‘잭슨(Jackson)’을 듣는 순간 노래가 곧 쟈니 캐쉬의 삶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비단 팝가수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데이빗 헬프갓의 일생을 그린 ‘샤인’은 음악 속에서만 자유로웠던 영혼을 그린다. 그 영혼은 악마의 교향곡이라고 하는 라흐마니노프를 완벽히 연주할 수 있는 천재였지만 삶의 강박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한다. 부서질 듯한 피아노, 공간을 때리는 현란한 음표 속에서 대단원의 혼란과 아픔을 느낄 수 있다. 생소했던 라흐마니노프나 익숙한 베토벤, 쇼팽의 명곡을 헬프갓의 연주로 직접 들을 수 있는 OST도 귀중하기만 하다.
많은 영화의 소재가 되고 있는 수많은 음악가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노래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고귀한 인내와 고통, 인간적인 고뇌를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아름답고 위대하다는 의미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들에게도 삶에 대한 관대함을 선사해주는 노래가 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유희정 프리랜서 elegys@empal.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리뷰]언러브드

Unloved
감독 만다 쿠니토시
출연 마츠오카 스케, 모리구치 요코, 나카무라 토오루
장르 드라마
시간 117분
개봉 5월 24일

사랑과 자아는 언제나 대립되는 가치다. ‘언러브드’는 사랑이란 감정을 겪으면서 동시에 자아를 잃지 않으려는 한 독립적인 여성의 이야기다. 미츠코(모리구치 요코)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시청 여직원이다. 회사 일로 자주 마주치는 벤처 기업가 가츠노(나카무라 토오루)는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둘은 자연스레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독립적인 미츠코에게 휘황찬란한 가츠노의 생활방식은 부담스럽다. 그와 이별을 결심한 후, 그녀는 우연히 아랫집에 사는 택배회사 직원 시모카와(마츠오카스케)를 만난다. 그와의 만남에서 미츠코는 편안함을 느낀다. 연인이기 이전에 ‘타인’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이 영화는 끝까지 ‘자아’를 포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참신한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처럼 읊는 대사와 설득력 떨어지는 결말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단순히 정서 차이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C+ 떨어지는 리얼리티, 설득력 없는 결말
장영엽 학생리포터 schkolade@hotmail.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리뷰]세일즈우먼

Le Secret
감독 비르지니 와공
출연 안 코에상, 미쉘 봄포일, 토니 토드
장르 드라마
시간 107분
개봉 5월 18일

마리(안 코에상)의 삶은 위태로울 정도로 안정적이다. 자기만을 바라봐주는 가정적인 남편(미쉘 봄포일), 귀여운 아기, 실력을 인정받는 직장까지 모두 갖췄다. 하지만 안정적인 삶의 다른 표현이 ‘변화 가능성이 없는 삶’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위기를 느낀다. 이 때 미국서 왔다는 섹시한 흑인 남자 빌(토니 토드)이 나타나고, 마리는 기다렸다는 듯 위험한 사랑에 빠진다.
‘세일즈우먼’은 권태로움에 빠진 삼십대 여성의 미묘한 심리를 포착해 낸 작품이다. 여성감독의 작품답게 여주인공의 행동은 무심한 듯 섬세하다. 가정에 대한 의무감에서 벗어나 내부의 욕망에 충실한 마리의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흡수할 수 없는 정서적 충격에 소화불량을 느낄 수도 있으니 주의할 것. 안 코에상, 미쉘 봄포일 등 낯선 배우들이 대부분이지만 연기력은 훌륭하다. 제52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주간 상을 수상했다.

B 프랑스판 ‘위기의 주부들' (영엽)
B 오묘한 연출속에 드러나는 미묘한 여자마음 (수빈)
장영엽 학생리포터 schkolade@hotmail.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리뷰]레밍

Lemming
감독 도미니크 몰
출연 로랑 뤼카스,
샬롯 갱스부르, 샬롯 램플링
장르 드라마
시간 129분
개봉 5월 17일

안정된 직장, 이상적인 아내. 알랭(로랑 뤼카스)의 삶은 행복하다. 낯선 도시로 이사 오긴 했지만 그것조차 산뜻한 자극이다. 그러나 사장부부를 식사초대한 날부터 모든 것이 뒤틀린다. 기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상사의 부인 알리스(샬롯 램플링)의 이상행동이 계속되고 스칸디나비아에만 산다는 동물 레밍이 죽은 채(살아났지만) 발견되는 것도 불길하다. 평온한 일상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이 된다.

영화 속의 복선은 관객을 위한 친절한 보조장치다. 그것을 지그시 밟고 따라가기만 하면 탈선하지 않고 예상된 결말로 인도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감독이 파놓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도미니크 몰 감독은 레밍이란 동물로 적절히 복선을 제공하거나 ,함정으로 유도하며 톡톡히 재미를 본다. 죽은 레밍이 수도관에서 발견되는 것은 현실에서 멀어지는 징후로 이상적 복선이다. 반면 출장 중 돌아온 알랭이 주방에서 발견하는 수많은 레밍떼는 뒤이어질 이야기의 단초가 되기보다 알랭과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하나의 함정이다. 병원에서 깨어난 알랭은 자신이 본 것이 환상이라고 강요받는다. 그 순간부터 그와 관객은 가시적인 것에 대해 불신하게 된다. 알리스와 그의 아내 베네딕트가 겹쳐 보이는 것도, 자꾸 꼬여가는 일상도 레밍떼를 본 것처럼 알랭의 환상 속에서 일어난 거짓은 아닌지 끝까지 의심하게 된다. 이러한 불신은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재즈풍의 경쾌한 피아노연주로 시작된 영화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곡 중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불리는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강(The Beautiful Blue Danube Waltz, op 314)’의 장중함을 거쳐 ‘프렌치키스’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Dream A Little Dream Of Me’로 끝남으로써 엉뚱하지만 절묘한 선곡을 통한 긴장감까지 이끌어낸다.
초현실주의 화가 조르지오 데 키리코의 작품의 느낌처럼 표현하고 싶었다는 감독의 소망처럼 영화 속 텅 빈 거리는 신비와 우울로 채워져 있다. 또한 스토리조차 초현실적인 덕분에 스릴러와 호러, 드라마 사이를 오가는 장르적 방황이 어색하지 않다. 스위밍 풀에서 매력적 살인공모자가 되었던 샬롯 램플링은 눈빛조차 초현실적인데, 매서운 눈매 속에 숨긴 푸른 회색빛의 그윽한 눈동자는 관객을 빨아들이기에 충분하다.
B 그러니까 남자들이여, 한눈팔지 말아라(수빈)
B 빙의와 로맨스의 살짝 어색한 만남 (진아)
이수빈 학생리포터 fantastic999@hanmail.ne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픽업]가족의 탄생

감독 김태용
출연 고두심, 문소리, 엄태웅, 공효진, 김혜옥, 봉태규,
정유미, 류승범
장르 드라마
시간 113분
개봉 5월 18일

Synopsis
미라(문소리)는 5년 만에 찾아온 동생(엄태웅)과 그의 스무살 연상녀 부인 무신(고두심)의 애정행각을 보려니 심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많은 남자에 배다른 동생까지 딸린 엄마(김혜옥)를 떠나려 애쓰는 선경(공효진)도 마찬가지. 그나마 있던 애인(류승범)과도 이별했다. 또 한쪽에서는 젊은 커플(봉태규, 정유미)들이 티격태격하니 이들의 복잡한 족보를 따져볼 것.

Viewpoint

처음에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세 가지 이야기를 불친절하게 나열해 연출의 미흡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가족의 탄생’은 알고 보면 연구와 관찰의 기록이다. 이 세 이야기는 가계도 2단에 해당하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가로선을 긋고, 그 가로선에서 세로선을 빼내 자녀들을 그리는 바로 그 가계도 말이다.

그리하여 ‘가족의 탄생’은 ‘가족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떤 환경에서 자라 어떤 특성을 가지게 된 남녀가, 서로 어떤 부분에 끌리고 어떤 부분에서 상처를 받는가를 세심하게 잡아낸다. 이 연구의 백미는 걸러내고 걸러낸 듯한 한마디의 대사와 이 대사를 구사하는 캐릭터들이다. 자신보다 스무살 어린 남자를 따라 그의 누나를 만나러 온 무신의 무심한 트로트나 길게 타들어간 담배, 그런 무신과 동생을 바라보는 노처녀 누나 미라의 조용하면서도 고집이 가득 배있는 표정과 말투는 색깔 강한 배우들의 이름을 단숨에 잊게 한다. 연애사건에서 가장 큰 기억으로 남을만한 대사들은 적재적소에 배치돼 날카롭게 가슴에 박히고, 리얼리티가 넘치는 가족의 탄생과 역사를, 또 그 탄생과 역사의 기초가 되는 연애의 탄생과 역사를 목격하게 된다. 특히 이 연애의 탄생과 역사의 순간들이 탁월하다. 엄마를 잃고, 사랑했던 남자를 잃고, 덤덤하려 애쓰며 내지르는 선경의 “잘들 가세요, 개새끼들아…”나 경석의 “너 꼭 나 아니어도 되잖아” 채현의 “헤픈게 나쁜거야?”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그냥 바라볼 수 없다. 사랑과 아픔의 기억들이, 그 슬픔과 애틋함의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이다. 김태용 감독은 두 여고생의 내밀한 감정을 따라나섰던 ‘여고괴담2’와 윤도현 밴드의 맨몸 유럽 라이브 투어를 따라나섰던 ‘온 더 로드, 투’를 지나, 조금 더 자신의 색깔을 담은‘가족의 탄생’으로 돌아왔다. 설레는 인물들을 비추는 처음 장면들에서부터 감독의 의도, 시선이 강하게 느껴진다. 영화 후반까지 계속되는 레몬빛 조명에 잦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워크는 따뜻함과 애정, 생동감을 품고 있다. 이것은 가족이 탄생된다는 것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해,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경이로움의 차원으로 확대된다. 가장 주목해야할 감독의 태도는 그에게 있어서의 가족은 ‘혈연’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의 인물들은 친가족이 아닌, 오히려 혈연에 반하는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감독에게 있어 ‘헤픈 것’은 전혀 나쁜 태도가 아니며, 온갖 감정을 내포한 개인의 역사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사랑이 발생하고, 그 사랑을 따른다는 것은 권할만한 미덕이다. 밥상에 빙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혈연공동체’가 아닌 ‘사랑공동체’로서 진정한 의미의 가족을 형성하는 과정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혈연’에 연연하다보면 그것은 이미 하나의 규율이고 금기다. 이 차갑고 뻑뻑하고 건조한 세상 속에서 인연과 만남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역설하는 아웃사이더 기질의 감독은 엔딩 크레디트 영상까지 말을 멈추지 않고 열심히다. 지하철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당신도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밥은 먹고 가야지

밥상에서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노모의 “밥은 먹고 가야지”가 눈물샘을 자극하는 드라마, “같이 식사나 하러 갈까요?”로 시작되는 로맨스, 아이들의 혼령이 자꾸만 나타나는 ‘4인용 식탁’이 있는가하면 권위적인 한국형 아침 밥상을 “밥상머리 앞에서는 책 보지 마라” “오늘이 시험이라서요”라는 하나의 대화로 완전히 코미디화 시켜버린 ‘묻지마 패밀리’의 두 번째 에피소드 ‘내 나이키(사진)’도 있다. 얼굴을 마주할 수 있고, 싫어도 얼굴을 마주해야하는 강제적인 목적 ‘섭취’가 존재하기에 밥상은 관계의 장이라는 의미를 획득한다. 어두운 방, 텔레비전과 마주한 채 마른반찬을 집어 드는 ‘반칙왕’의 노부를 떠올렸을 때 울컥하고 감정이 올라오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다. 홈피 www.familyties.co.kr

A 헤퍼도 사랑이기만 하면 괜찮아 (진아)
A ‘안토니아스 라인’을 연상시키는 대안 가족의 탄생 (영엽)
B+ 김태용 감독의 산만함과 정겨움에 피가 땡긴다 (수빈)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