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업]가족의 탄생

감독 김태용
출연 고두심, 문소리, 엄태웅, 공효진, 김혜옥, 봉태규,
정유미, 류승범
장르 드라마
시간 113분
개봉 5월 18일

Synopsis
미라(문소리)는 5년 만에 찾아온 동생(엄태웅)과 그의 스무살 연상녀 부인 무신(고두심)의 애정행각을 보려니 심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많은 남자에 배다른 동생까지 딸린 엄마(김혜옥)를 떠나려 애쓰는 선경(공효진)도 마찬가지. 그나마 있던 애인(류승범)과도 이별했다. 또 한쪽에서는 젊은 커플(봉태규, 정유미)들이 티격태격하니 이들의 복잡한 족보를 따져볼 것.

Viewpoint

처음에는 전혀 상관이 없는 세 가지 이야기를 불친절하게 나열해 연출의 미흡함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가족의 탄생’은 알고 보면 연구와 관찰의 기록이다. 이 세 이야기는 가계도 2단에 해당하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가로선을 긋고, 그 가로선에서 세로선을 빼내 자녀들을 그리는 바로 그 가계도 말이다.

그리하여 ‘가족의 탄생’은 ‘가족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떤 환경에서 자라 어떤 특성을 가지게 된 남녀가, 서로 어떤 부분에 끌리고 어떤 부분에서 상처를 받는가를 세심하게 잡아낸다. 이 연구의 백미는 걸러내고 걸러낸 듯한 한마디의 대사와 이 대사를 구사하는 캐릭터들이다. 자신보다 스무살 어린 남자를 따라 그의 누나를 만나러 온 무신의 무심한 트로트나 길게 타들어간 담배, 그런 무신과 동생을 바라보는 노처녀 누나 미라의 조용하면서도 고집이 가득 배있는 표정과 말투는 색깔 강한 배우들의 이름을 단숨에 잊게 한다. 연애사건에서 가장 큰 기억으로 남을만한 대사들은 적재적소에 배치돼 날카롭게 가슴에 박히고, 리얼리티가 넘치는 가족의 탄생과 역사를, 또 그 탄생과 역사의 기초가 되는 연애의 탄생과 역사를 목격하게 된다. 특히 이 연애의 탄생과 역사의 순간들이 탁월하다. 엄마를 잃고, 사랑했던 남자를 잃고, 덤덤하려 애쓰며 내지르는 선경의 “잘들 가세요, 개새끼들아…”나 경석의 “너 꼭 나 아니어도 되잖아” 채현의 “헤픈게 나쁜거야?”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그냥 바라볼 수 없다. 사랑과 아픔의 기억들이, 그 슬픔과 애틋함의 정서가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이다. 김태용 감독은 두 여고생의 내밀한 감정을 따라나섰던 ‘여고괴담2’와 윤도현 밴드의 맨몸 유럽 라이브 투어를 따라나섰던 ‘온 더 로드, 투’를 지나, 조금 더 자신의 색깔을 담은‘가족의 탄생’으로 돌아왔다. 설레는 인물들을 비추는 처음 장면들에서부터 감독의 의도, 시선이 강하게 느껴진다. 영화 후반까지 계속되는 레몬빛 조명에 잦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워크는 따뜻함과 애정, 생동감을 품고 있다. 이것은 가족이 탄생된다는 것의 가치를 전달하는 것으로 시작해,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서는 경이로움의 차원으로 확대된다. 가장 주목해야할 감독의 태도는 그에게 있어서의 가족은 ‘혈연’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의 인물들은 친가족이 아닌, 오히려 혈연에 반하는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감독에게 있어 ‘헤픈 것’은 전혀 나쁜 태도가 아니며, 온갖 감정을 내포한 개인의 역사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사랑이 발생하고, 그 사랑을 따른다는 것은 권할만한 미덕이다. 밥상에 빙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하는 장면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혈연공동체’가 아닌 ‘사랑공동체’로서 진정한 의미의 가족을 형성하는 과정을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혈연’에 연연하다보면 그것은 이미 하나의 규율이고 금기다. 이 차갑고 뻑뻑하고 건조한 세상 속에서 인연과 만남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역설하는 아웃사이더 기질의 감독은 엔딩 크레디트 영상까지 말을 멈추지 않고 열심히다. 지하철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당신도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밥은 먹고 가야지

밥상에서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노모의 “밥은 먹고 가야지”가 눈물샘을 자극하는 드라마, “같이 식사나 하러 갈까요?”로 시작되는 로맨스, 아이들의 혼령이 자꾸만 나타나는 ‘4인용 식탁’이 있는가하면 권위적인 한국형 아침 밥상을 “밥상머리 앞에서는 책 보지 마라” “오늘이 시험이라서요”라는 하나의 대화로 완전히 코미디화 시켜버린 ‘묻지마 패밀리’의 두 번째 에피소드 ‘내 나이키(사진)’도 있다. 얼굴을 마주할 수 있고, 싫어도 얼굴을 마주해야하는 강제적인 목적 ‘섭취’가 존재하기에 밥상은 관계의 장이라는 의미를 획득한다. 어두운 방, 텔레비전과 마주한 채 마른반찬을 집어 드는 ‘반칙왕’의 노부를 떠올렸을 때 울컥하고 감정이 올라오는 것도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다. 홈피 www.familyties.co.kr

A 헤퍼도 사랑이기만 하면 괜찮아 (진아)
A ‘안토니아스 라인’을 연상시키는 대안 가족의 탄생 (영엽)
B+ 김태용 감독의 산만함과 정겨움에 피가 땡긴다 (수빈)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