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다 잊혀져도 잊고 싶지 않은 오직 하나

이터널 선샤인 & 내일의 기억

 

 

망각은 신이 사람에게 내려 준 특권이라고 했다. 새롭게 기억되는 만큼 지나간 사소한 사실들을 우리는 잃어버린다. 만약 망각의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을까. 기억하는 것보다 감사한 것은 잊는 것이다. 지나간 고통스러운 기억들,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상처들이 잊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하루 하루를 버텨낼 수 있을까. 그러나 기억과 상처들은 시간이 지난 먼 훗날의 언젠가에는 창가에 널어둔 빨래가 소리 없이 마르듯 말끔히 사라진다. 그것이 하루를 또 붙잡고 살아낼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 된다.

 

<이터널 선샤인>은 망각에 모티브를 둔 영화다. 조엘(짐 캐리)와 헤어지고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그와의 모든 기억을 지워버린 여자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 조엘은 자신도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하고 기억을 지워주는 곳을 찾아간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그들이 사랑했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이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 보았을 생각일 것이다. 그와 함께했던 모든 과거를 잊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상상으로만 끝났던 그런 일이 영화에서는 실제로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다시 사랑에 빠진다. 사랑했던 기억은 지워졌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 영화는 우리에게 추억이 있는 사람은 추억이 없는 사람에 비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든 것을 잊는다 하더라도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 놓고 그 언제라도 선명하게 떠올리고 싶은, 반짝반짝 빛나던 일상의 순간들이 있다. 행복했던 시간들, 함께 웃고 즐겼던 소중한 사람들. 친구, 가족, 동료, 그리고 참 고운 내 사랑하는 이… 그들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잊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우개로 지워내듯 말끔하게 내 인생의 소중한 부분들이 없어진다면. <내일의 기억>은 사에키(와타나베 켄)에게 중년에 찾아온 알츠하이머 때문에 점차 기억을 상실해가는 과정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영화다. 기억을 잃어감과 함께 기력도 함께 쇠해가며 무너지는 주인공의 모습은 인간의 무력함에 눈물짓게 한다. ‘내일’의 ‘기억’이라는 역설적인 뜻의 제목은 영화의 이러한 내용과 잘 맞물려 있다. 영화는 전형적인 일본 멜로다운 차분한 느낌이다. 다소 신파처럼 느껴지고 식상할 법도 한 소재는 아름다운 영상과 주인공들의 심금을 울리는 연기로 인해 더욱 빛난다. 이 영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소재나 주요 줄거리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들의 ‘사랑했던’ 시간에 집중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단순히 잊혀진다는 사실이 슬픈 것이 아니라, 잊혀져야만 하는 그 순간들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이 슬픈 것이기 때문에.

 

유진주 대학생기자/sappy27@naver.com

http://camhe.com/default.asp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레이야 2007-05-23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터널 선샤인을 봤던 기억이 새롭네요. 망각은 어쩌면 축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 잊혀도 도저히 잊히지 않은 어느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겠지요.

Heⓔ 2007-05-24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터널선샤인과 내일의기억 둘 다 봤는데...개인적으로 이터널선샤인에 압승이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내일의기억은..연기도 좋고...소재도 좋았는데...영화 한 편을 놓고 봤을 때는 그런 좋은 부분들을 가지고 만들다 만 듯한 뭔가 완성도가 허전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뿅뿅 2007-05-25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터널 선샤인만 봤는데 히님의 말씀을 들으니 내일의 기억도 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