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α]고개 돌리지 말 것

나체와 사랑의 회복
제니 사빌의 그림(사진)과 조우했을 때를 기억한다. 내 생활 혹은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 안절부절 못하는 사지육신을 책상 앞에 묶어뒀는데 모니터에 ‘턱’ 나타나버린 거대한 비만 여성의 누드. 500kg에 육박하여 초고도 비만이라 불리는 그녀들을 만났던 이전의 방식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생사를 오가다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에피소드도 아니었고,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두 아들,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상처와 어둠을 심어줬던 어머니도 아니었다. 저 깊숙한 곳에 있는 갖가지 감정과 욕망들을 몸짓과 표정으로 표출해 고통이란 것이 얼마나 도도하고 도발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이 화가의 작품이 가로 1.8m, 세로 1.8m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진다는 소리에 그 충격적일 광경을 목격하고 싶은 충동이 울컥 올라왔다.
추한 몸의 나체는 ‘성’의 개념이 아닌 ‘실존’의 개념으로 해석된다는데 감동이 있다. 그것은 자기발견 혹은 자기표현에서 오는 카타르시스 일 수 있겠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는 휴머니즘의 발견 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있는’ 대단한 에너지가 생성되는 것이다. 이번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애니메이션 ‘베티(Betty)’ ‘치명적 비만(Fat fatal)’ 또한 일순간 추한 느낌을 주는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같은 메시지를 더한다. 타성에 의해 고개 돌리고 거부했던 것들이 계속 제시되고, 관객은 이를 응시함으로써 사랑의 에너지를 회복한다. 추하다는 판단 혹은 표현을 사용하기 이전의 내밀한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회귀이며 회복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도 ‘백치들’ ‘브레이킹 더 웨이브’를 통해 같은 경험을 안긴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처음 남자의 나체를 직면한 여자는 두려움과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의 몸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응시의 순간 하나가 영화 전체를 사랑 이야기로 만들어 버린다.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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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rd League]거짓말 같은 하루

김진배 씨 이사하는 날
감독 김형석 시간 20분 연출 16mm, 컬러 년도 2006년
이사하는 날만큼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도 드물 것이다. 영희도, 철수도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살았다는 흔적을 집안 구석구석에 남겨놓고 떠난다는 건 분명 집을 옮기는 것 이상의 의의를 가지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에는 대부분 애증이 뒤섞여 있기에, 속 시원하면서도 아쉬운 법이다.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아내와 함께 찍은 결혼사진을 쓰레기봉투에 억지로 밀어 넣으려는 김진배씨처럼 말이다. 안 그래도 착잡한 심정, 옆집 커플은 싸웠는지 대낮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급기야 여자는 복도에 나앉는다. 그러나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도 될 수 있는 법. 어느새 해는 지고 추위에 떨고 있는 여자 앞에 슬쩍 캔커피를 건네는 김진배씨. 어느새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김치찌개(여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칫국)에 밥까지 먹인다. 그녀 빼고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남자친구의 바람기에 대해 쓴 소리를 하지만 여자는 듣는 둥 마는 둥이다. ‘한 번 떠난 남자 마음 다시 안 돌아온다’는 김진배씨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애인의 집에 들어가 짐을 챙기고, 물건마다 하나하나의 추억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사랑했던 시절을 돌이키려 애쓴다. 그러나 그녀 앞에 나타난 연인의 곁에는 다른 여자가 있다.
김진배씨에게 그날 밤은 기묘한 사건의 연속이다. 다음날이면 집과 영원히 남남이 되는데, 아침까지 남남이던 사람과 한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인생은 그렇게 예측 불가능하다. 종일 많은 일을 겪은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안고 있다. 소주 한잔에 울고, 소주 한잔에 위로받는다. 거짓말 같은 정전 뒤, 여자는 사라지고 어느덧 아침이다. 이사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김진배 씨의 모습은 전날과 사뭇 다르다.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괜히 애꿎은 곰인형을 툭툭 쳐보다가 ‘이사 좀 미룰 수 없을까요’라며 이삿짐센터에 전화를 건다. 순간 몰아닥치는 일꾼들, 여자가 머리핀을 떨어뜨리지 않았더라면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졌을 하루다.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달아나는 사건, 그것을 해프닝(happening)이라 부른다. 그리고 해프닝은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진짜 이유다.
장영엽 학생리포터 schkolad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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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음악처럼]나른하지만 희망적인 재즈하세!

스윙걸즈 スウィングガ-ルズ
음악이 전부인 영화가 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쟈니 캐쉬의 일대기를 그린 ‘앙코르’나 레이 찰스의 삶은 다룬 ‘레이’가 그러하다. 가수의 삶이란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음악이 전부다. 마치 뮤지컬처럼 노래를 통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여기 조금 다른 영화가 있다. 가수가 꿈이라서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활활 타오르는 여고생도 아닌, 그저 지루한 일상에서 ‘재즈’를 배우고 알아가는 여자아이들의 이야기, 바로‘스윙걸스’다.
수많은 명곡들이 ‘스윙걸스’의 발랄함으로 다시 태어나 귀를 즐겁게 한다. 재즈를 잘 모르는 사람도 들으면 ‘아, 이 노래!’하고 무릎을 탁 칠 수 있는‘In the Mood’. 특히나 경연대회에 나가지 못할 것을 안 스윙걸스가 실망하여 기차 안에 침울해 있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Take the a train’은 새삼 마음을 벅차게 만든다. 경연대회에 나가 신나게 들려주는 ‘Mexican Flyer’나 ‘Sing Sing Sing’은 흥겨워 입가에 절로 미소가 머무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즐겁고 가슴 따뜻했던 노래는 ‘Swing Talk’다. 재즈밴드를 만들긴 했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던 스즈키와 아이들은 힘이 빠진 채 건널목을 건넌다. 그때 범생이 세키구치 귀에 들려오던 신호등 음악소리.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반박자 늦은 리듬을 타면서 아이들은 재즈가 무엇인지, 어떤 느낌인지 비로소 깨닫는다. 노래 제목도 ‘스윙이 말을 건다’라는 뜻으로 어렵지 않은 음색에 경쾌한 리듬으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사실 개인적으로 ‘학원물’에 약하다. 약하다는 것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 너무 즐겁고 좋다, 그래서 바보가 된다는 말이다. ‘스윙걸스’가 그저 학원물이겠거니 하고 보게 됐지만 기대치 않게 듣게 되는 재즈송들, 미숙하지만 스윙걸스의 열정적인 연주가 어느새 영화에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발견은, 생활 판타지를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유효한 것이었다.
재즈에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있다. 나른하지만 희망적인 그 느낌이 ‘스윙걸스’에 오롯이 담겨있다. 참,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나오는 노래는 냇킹콜의 ‘러브(Love)’인데 립싱크를 하는 주인공들이 너무 귀엽다(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사랑스런 센스!).
유희정 프리랜서 elegy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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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뎀

Ils
감독 다비드 모로, 자비에 팔뤼
출연 올리비아 보나미, 마이클 코헨
장르 공포, 스릴러
시간 76분
개봉 4월 20일
교사인 클레멘타인(올리비아 보나미)는 수업을 마치고 연인 루카(마이클 코헨)가 있는 별장으로 행한다. 둘 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다가 밤을 맞았는데, 아래층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분명이 전원을 껐던 텔레비전 잡음이 들린다. 무슨 일일까 살피지만 아무런 흔적이 없다. 그때, 두 사람을 쫓는 괴음. 그 어느 때보다 길고 긴 밤이 시작된다.
프랑스 공포 스릴러라는 말에 ‘늑대의 후예들’ ‘비독’과 같은 영화들을 떠올린다면 실망할 수 있겠다. 삐걱거리는 소리, 반쯤 가려지거나 흐릿하게 처리되는 화면, 궁지로 몰아가는 점층적인 배경음악 등 전형적인 공포유발의 요소들을 사용한다. 무난하게 공포를 조성하다 충격적인 실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대단원을 드디어 펼치는데, 앞의 내용과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해 뜬금없을 뿐더러, 반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연출도 부재해 결국 전형적인 ‘공포 분위기 조성 시도 영화’로 끝을 맺는다.

C 당신이 다 아는 공포영화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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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달빛 속삭임

月光の 섭き
감독 시오타 아키히코
출연 미즈하시 켄지, 츠구미
장르 멜로
시간 100 분 개봉 4월 20일
열일곱 고등학생 타쿠야(미즈하시 켄지)는 검도부 친구인 사츠키(츠쿠미)를 좋아한다. 사츠키의 고백으로 데이트를 시작한 두 사람은 풋풋한 사랑을 키워나가는 듯한데, 타쿠야의 서랍에서 이상한 녹음테이프가 발견된다.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로 갈등하는 두 사람은 결국 이별하게 되지만, 쉽게 사랑을 놓치는 못한다.
평범한 사춘기의 소년 소녀가 사랑이라는 감정 속에 내제돼 있던 사디즘, 마조히즘을 발견하면서 겪는 불안과 갈등, 성장을 서정적으로 표현해 호평을 받기도 한 ‘달빛 속삭임’은 작가적인 면모를 드러내고 있는 시오타 아키히코 감독의 작품이다. 일본사회의 문제들을 묘사하기 위한 상징으로 10대들을 등장시킨다는 감독의 맥락에서 ‘달빛 속삭임’은 새로운 세기를 앞둔 90년대 후반의 사회분위기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상징을 알아채고 의미를 부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C 사도마조히즘, 그 이상도 이하도 찾을 수 없는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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