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 사빌의 그림(사진)과 조우했을 때를 기억한다. 내 생활 혹은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해 안절부절 못하는 사지육신을 책상 앞에 묶어뒀는데 모니터에 ‘턱’ 나타나버린 거대한 비만 여성의 누드. 500kg에 육박하여 초고도 비만이라 불리는 그녀들을 만났던 이전의 방식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생사를 오가다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에피소드도 아니었고,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두 아들,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상처와 어둠을 심어줬던 어머니도 아니었다. 저 깊숙한 곳에 있는 갖가지 감정과 욕망들을 몸짓과 표정으로 표출해 고통이란 것이 얼마나 도도하고 도발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이 화가의 작품이 가로 1.8m, 세로 1.8m 크기의 캔버스에 그려진다는 소리에 그 충격적일 광경을 목격하고 싶은 충동이 울컥 올라왔다. 추한 몸의 나체는 ‘성’의 개념이 아닌 ‘실존’의 개념으로 해석된다는데 감동이 있다. 그것은 자기발견 혹은 자기표현에서 오는 카타르시스 일 수 있겠고,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는 휴머니즘의 발견 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있는’ 대단한 에너지가 생성되는 것이다. 이번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된 애니메이션 ‘베티(Betty)’ ‘치명적 비만(Fat fatal)’ 또한 일순간 추한 느낌을 주는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같은 메시지를 더한다. 타성에 의해 고개 돌리고 거부했던 것들이 계속 제시되고, 관객은 이를 응시함으로써 사랑의 에너지를 회복한다. 추하다는 판단 혹은 표현을 사용하기 이전의 내밀한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회귀이며 회복이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도 ‘백치들’ ‘브레이킹 더 웨이브’를 통해 같은 경험을 안긴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에서 처음 남자의 나체를 직면한 여자는 두려움과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의 몸을 응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응시의 순간 하나가 영화 전체를 사랑 이야기로 만들어 버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