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rd League]거짓말 같은 하루

김진배 씨 이사하는 날
감독 김형석 시간 20분 연출 16mm, 컬러 년도 2006년
이사하는 날만큼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도 드물 것이다. 영희도, 철수도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살았다는 흔적을 집안 구석구석에 남겨놓고 떠난다는 건 분명 집을 옮기는 것 이상의 의의를 가지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에는 대부분 애증이 뒤섞여 있기에, 속 시원하면서도 아쉬운 법이다.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아내와 함께 찍은 결혼사진을 쓰레기봉투에 억지로 밀어 넣으려는 김진배씨처럼 말이다. 안 그래도 착잡한 심정, 옆집 커플은 싸웠는지 대낮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급기야 여자는 복도에 나앉는다. 그러나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도 될 수 있는 법. 어느새 해는 지고 추위에 떨고 있는 여자 앞에 슬쩍 캔커피를 건네는 김진배씨. 어느새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김치찌개(여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칫국)에 밥까지 먹인다. 그녀 빼고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남자친구의 바람기에 대해 쓴 소리를 하지만 여자는 듣는 둥 마는 둥이다. ‘한 번 떠난 남자 마음 다시 안 돌아온다’는 김진배씨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애인의 집에 들어가 짐을 챙기고, 물건마다 하나하나의 추억을 적은 포스트잇을 붙여 사랑했던 시절을 돌이키려 애쓴다. 그러나 그녀 앞에 나타난 연인의 곁에는 다른 여자가 있다.
김진배씨에게 그날 밤은 기묘한 사건의 연속이다. 다음날이면 집과 영원히 남남이 되는데, 아침까지 남남이던 사람과 한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인생은 그렇게 예측 불가능하다. 종일 많은 일을 겪은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상처를 안고 있다. 소주 한잔에 울고, 소주 한잔에 위로받는다. 거짓말 같은 정전 뒤, 여자는 사라지고 어느덧 아침이다. 이사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김진배 씨의 모습은 전날과 사뭇 다르다.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괜히 애꿎은 곰인형을 툭툭 쳐보다가 ‘이사 좀 미룰 수 없을까요’라며 이삿짐센터에 전화를 건다. 순간 몰아닥치는 일꾼들, 여자가 머리핀을 떨어뜨리지 않았더라면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느껴졌을 하루다.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달아나는 사건, 그것을 해프닝(happening)이라 부른다. 그리고 해프닝은 이 영화가 사랑스러운 진짜 이유다.
장영엽 학생리포터 schkolad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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