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방과 후 옥상

감독 이석훈
출연 봉태규, 김태현, 하석진, 정구연
장르 코미디, 드라마
시간 103분
개봉 3월 16일

사랑은 감히 꿈꾸지 못한 것을 가능케 한다. 적어도 만년 왕따 남궁달(봉태규)에게는 그렇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미나(정구연)을 돕는답시고 나섰지만 늘 재수 없던 탓에 하필이면 학교짱 제구(하석진)를 건드린 것이다. 왕따 클리닉에서조차 구제받지 못한 가여운 영혼이 과연 ‘안 나와도 죽고 도망쳐도 죽고 어쨌든 죽는다’는 방과 후 옥상으로의 호출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어찌해서라도 불행을 피해보려는 남궁달의 눈물겨운 탈출기를 보노라면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속담이 생각난다. 물론 한참을 궁지에서 헤매고서야 비로소 물만한 배짱을 지니기에 고난기가 제법 길다는 것을 염두 해둬야 한다. 하지만 고작 4시까지의 반나절 남짓한 시간이 뭐가 그리 길까 의심한다면 남궁달의 알찬 고행시간표를 준비한 감독이 서운할 일이다. 돈으로 해결 보려는 ‘물질만능주의식 해결법’에서부터 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작은 위험을 감수하는 ‘잔꾀’를 거쳐 강한 자의 힘에 의존해 보려는 ‘빌붙기 전법’까지 주어진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온갖 방법이 동원된다.
비록 그런 모습들이 가볍게 웃고 넘기기에는 무거운 현실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유쾌하다. 그것은 ‘깔끔하고 단정한 영화이기보다 거칠더라도 장난을 많이 치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남궁달이 약육강식의 사회로 비유되는 학교를 연상할 때마다 적절히 등장하는 CG화면이나 그의 상상속의 세계는, 제법 코믹해서 왕따 문제를 얄팍한 소재거리로 전락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 정도다. 거기다 갖가지 조퇴방법을 제시해주는 ‘조퇴 컨설턴트’나 소문을 주름잡고 있는 허풍쟁이, 학교주위를 배회하는 외부세력들이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든다. 하지만 깔깔대며 웃다가 문득 감독이 던진 농담의 뼈를 발견하게 되니 왕따 탈피의 모호한 경계면을 찾은 남궁달 역시 고민한다. 물론 이내 그 진지함을 떨쳐내고 뻔한 청춘영화의 노선을 밟게 되지만 그 예측 가능함이 오히려 얄팍한 청춘을 닮아 밉지 않다.

B 감독님, 유머 좀 하시는군요! (수빈)
A 무엇을 생각하든 더 웃긴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영엽)

이수빈 학생리포터 fantastic999@hanmail.ne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리뷰] 스윙 걸즈

Swing Girls
감독 야구치 시노부
출연 우에노 쥬리, 칸지야 시호리,
토요시마 유카리, 히라오카 유타
장르 코미디
시간 105분
개봉 3월 23일

비록 낙제생인지라 방학 때도 보충수업을 받는 처지지만 의욕만큼은 남에 뒤지지 않는 토모코(우에노 쥬리)와 12명의 보충수업 친구들은 요즘 재즈에 심취했다. 식중독에 걸려서 입원중인 밴드부를 대신해 야구부응원을 나가게 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오로지 보충수업 땡땡이가 목적이었지만 이제 신호등의 신호대기음조차 재즈로 들리니, 이들은 진정 재즈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는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중독성 짙은 것들이 많다. 그 중 음악의 중독성은 꽤 짙다. 그래서 ‘스쿨 오브 락’이나 ‘꽃피는 봄이 오면’, 그리고 ‘브래스트 오프’에 이르기까지 음악에 무지하거나 아마추어였던 누군가들은 결국 여러 역경을 딛고 큰 대회에 진출하여 삶을 음악적 방법론으로 승화시키곤 했다. 토모코 일행도 음악에 심취한 여타 영화들처럼 재즈에 단단히 걸려들었다. 밴드부가 너무 빨리 퇴원하게 되어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재즈리듬을 따라 스스로 모여들게 됐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재즈를 미끼로 관객을 꾀어내려 한다.
마침 일본 청춘영화 또한 꽤 중독성 있는 장르여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전작 ‘비밀의 화원’이나 ‘워터보이즈’를 기억하고 있다면 ‘스윙걸즈’의 매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구김살일랑 전혀 없고, 그에 맞게 유치한 장면들도 적지 않지만, 그것이야 말로 작은 에피소드로 제대로 웃길 줄 아는 일본 코미디의 특징이다. 일본 영화계의 ‘무서운 아이’라고 불리는 감독의 상상력은 ‘웰컴 투 동막골’과 견주어지는 기발한 멧돼지 신을 연출해냈고 모든 생활을 재즈리듬으로 소화시키는 토모코들의 능력을 뮤지컬 느낌으로 적절히 살려낸다.
그리고 보통 음악의 리듬과 엇갈려 엇박자 효과를 내는 재즈의 싱코페이션을 흉내 내어 후반부에 강렬한 공연으로 일갈해 줌으로써 영화자체가 재즈가 되게 하는 기발한 연출을 감행한다. 때문에 지극히 전형적인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다채롭고, ‘오로지 가벼워라’는 감독의 메시지가 제대로 살아나, 엔딩크레디트에서 넷 킹콜의 L-O-V-E가 흐를 때면 귀여운 ‘스윙걸’들(그리고 청일점인 보이)을 ‘LOVE’할 수밖에 없다.

B+ 재즈와 사랑에 빠지게 하는 신비의 묘약

이수빈 학생리포터 fantastic999@hanmail.ne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리뷰]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감독 제임스 맥티그
출연 나탈리 포트만, 휴고 위빙
장르 액션, SF
시간 132분
개봉 3월 17일

앨런 무어 원작의 코믹스로 이미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있는 ‘브이 포 벤데타’는 매트릭스 이후 하나의 거대한 브랜드가 돼버린 워쇼스키 형제의 각색을 거쳐 새롭게 재탄생했다. ‘기억하라, 기억하라, 11월 5일을. 화약음모사건을’로 시작하는 첫 장면부터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미래 사회의 모습은 어둡고 적막하다. 자신을 ‘V’라 부르는 정체불명의 한 사나이(휴고 위빙)가 화약음모 사건의 실패로 처형당해야 했던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쓴 채 혁명의 시작을 알린다. ‘V’가 재판소를 폭파하던 날, 우연히 그의 도움을 받은 이비(나탈리 포트만)는 정부를 상대로 한 그의 투쟁에 동참하게 된다.

이 영화 속에는 윌리엄 블레이크와 셰익스피어의 시를 포함한 수많은 은유와 메시지가 존재하며, ‘매트릭스’에서처럼‘신념’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다만 좀 더 정치적이다. 특이할만한 점은 민중, 자유, 정의와 같은 지극히 정치적인 단어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투쟁 의도와 방법이 상당히 개인적이라는 점이다. 즉, 복수는 한 남자의 분노에서 비롯되지만 그의 신념은 바이러스처럼 시민들에게 전달되고, 신념은 곧 시각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의사당으로 진격하는 장면은 그래서 이 영화 최대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사상은 영원하지만 사람은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동시에 일깨워줌으로써 보다 인간적인 영웅 상이 제시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얼굴 한 번 드러내지 않고 특유의 우아한 억양을 맘껏 드러내며 최고의 연기를 펼쳐준 우리의 스미스 요원(휴고 위빙)의 캐스팅은 더할 나위 없다. 후반부로 가면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떨어지는 사건의 정점, 그 에너지의 증폭력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가장 마지막 순간 차이코프스키의 서곡이 다시 한 번 울려 퍼질 때, 거짓말처럼 그의 혁명에 동조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매트릭스’의 잣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면야, 어찌 훌륭한 영화가 아니겠는가.

A ‘V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영엽)
B+ 벌려놓긴 했는데 수습이 안되는군요, 뒷심이 부족해요! (수빈)

장영엽 학생리포터 schkolade@hotmail.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픽업] 굿 나잇, 앤 굿 럭

Good Night, And Good Luck
감독 조지 클루니
출연 데이빗 스트래던, 조지 클루니
장르 드라마
시간 100분
개봉 3월 16일

Synopsis

2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냉전시대가 도래했다. 스탈린, 소련과 한국전쟁의 교착상태를 통해 공산주의의 실체를 확인한 미국은 공포에 휩쌓였다.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 1950년 2월, 공화당 상원의원 맥카시가 연설 도중 서류뭉치를 들어 올리며 내뱉은 이 한마디는 집단 공포에 불을 붙였다. 그 후, 1954년까지 애국으로 가장된 반공산주의 선풍은 가라앉지 않았고 일명 ‘맥카시즘’이라는 단어가 미국 역사에 기록됐다.

Viewpoint

왼손에 반쯤 타들어간 담배를 들고 “굿 이브닝” 이란 짧은 인사를 건넨 날카로운 인상의 뉴스맨이 촌철살인의 멘트을 쏟아낸다. 그는 진심이 묻어나는 한마디의 논평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어지는 에누리 없는 작별인사 “굿 나잇, 앤 굿 럭”.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은 미국방송 CBS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 ‘SEE IT NOW’와 진행자 에드워드 머로우의 얘기다. 사돈의 팔촌이 공산주의자의 곁을 지나가기만 해도 공산주의자로 몰려 마녀사냥감이 되던 때에 머로우는 맥카시와의 정면 승부를 시도했고, 영화는 그 현장을 재현한다.

영화는 영화 속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25분가량의 프로그램만큼이나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대의를 위해 연신 담배를 피워대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기자들의 치열한 현장을 짧은 컷 안에 담아내고, 뿌연 담배연기와 모든 풍경을 흑백으로 기록한다. 여기에 재즈 보컬 다이앤 리브스의 농도 짙은 목소리가 간간히 더해지면 관객은 ‘지적 낭만’에 빠질 수밖에 없다. 또한 사건 당시 방송됐던 맥카시의 자료화면을 삽입하여 리얼리티를 더하고, 대중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반인류적인 냉전체제를 주도했던 선동가에 대항할 것을 주문한다. 관객이 품게 되는 정의실현의 욕구는 반공산주의 사회의 억압과 자연스레 그 억압을 물려받을 수 밖에 없는 방송사와의 갈등 속에 증폭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진실을 추구하고, 프로답게 갈등하는 인물들을 통한 대리경험이 이뤄질 수 있다.
‘지적 낭만’과 대리경험은 인물들이 미화되기 직전의 수준에서 영화가 진행되기에 가능하다. 머로우는 영웅이긴 하지만, 몰입을 획득하고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을 정도의 관객과의 거리를 유지하려 애쓴다. 기준선을 중심으로 미세한 차이의 절제와 과장을 오가며 균형을 잡는 영화는 아슬아슬하기까지 하나 결국엔 성공하여 베니스영화제, 골든글로브 시상식,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선전했다. 머로우 역을 맡아 열연한 데이빗 스트래던의 카메라를 향해 치켜뜬 눈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충실한 동지를 연기한 조지 클루니를 비롯해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신뢰감을 주는 배우들과 그들의 실루엣을 리듬감 있게 클로즈업하는 카메라워크는 담배 연기만큼이나 매혹적이다. 물론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 ‘진실보도’가 영화의 핵심이자 미덕이다. 특히 머로우의 입을 빌어 전달되는 이념에 대한 냉철한 논평 “저는 우리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더라도 공산주의를 논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등은 현재를 사는 이들의 머리와 가슴 모두를 울릴 만하다.
가장 섹시한 배우에서 감독으로 변신한 조지 클루니는 전작 ‘컨페션(Confessions Of A Dangerous Mind)’에서 현란한 쇼와 진행자 척 배리스를 그야말로 ‘연출’해 감독으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다. ‘컨벤션’을 고려하면 감독이 지나치게 고전적이고 무난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하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굿 나잇, 앤 굿 럭”이라는 끝인사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영화는 떠날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이의 뒷모습처럼 긴 여운을 남겨 감독 조지 클루니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한다.

그 때 그 시절을 말한다
미국 역사에서 맥카시즘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까닭에 이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주로 미국 정치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던 Emile de Antonio 감독은 ‘Point of Order!(1964, 사진)’, ‘McCarthy: Death of a Witch Hunter(1971)’을 통해 맥카시와 맥카시즘을 조명했고, 그의 충실한 반공정책 하원의원회 고문관이었던 로이 콘을 다룬 영화 ‘권력자 콘 (Citizen Cohn, 1992)’도 제작됐다. 벗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맥카시즘의 단추를 하나하나 잘랐냈던 머로우의 행적은 텔레비전 영화 ‘Murrow(1985)’로 방송됐다. 그 시절 마녀사냥의 첫 번째 표적이 할리우드였단 사실도 흥미롭다. 창작 검열에 대한 재기발랄하고 날카로운 풍자, 우디 앨런 주연의 ‘프론트(The Front, 1976)’와 같은 해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Hollywood on Trial (1976)’도 살펴볼 만하다. 홈피www.goodnight2006.com

A 진실보도에 대한 낭만적 고찰 (진아)
A 흑백논리와 흑백화면이 만들어낸 찬란한 성찰 (수빈)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씨네스페셜]보이지 않는 물결

물의 4가지 표정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인용했던 작가 알랭 드 보통은 ‘강’이라는 단어는 변하지 않지만 그 단어 안에 흐르고 있는 물은 단 한순간도 같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생을 흐르는 물에 비유하는 것도 바로 이런 시간의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반되는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의미를 던지기도 합니다. 여름을 맞이한 기념으로 시원한 물에 눈 한번 담가보시죠.
바다 혹은 자아와 싸우는 작은 인간
대지의 끝, 깊고 푸른 바다는 인간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혹은 신의 영역이다. 두려움과 벅찬 기대를 안고 바다로 나선 사람들은 바다와 사투를 벌이거나, 완벽히 하나가 된다. 거대한 흰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고 복수의 항해를 시작하는 ‘백경’의 에이헙 선장(그레고리 펙)은 부서지는 하얀 파도만큼이나 날이 선 집착과 광기로 인간의 의지와 존재감을 드넓은 바다 위에 펼친다. 그러나, 바다는 인간의 승리를 허락지 않는다. 그저 저항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대하다. 바다가 베푸는 가장 큰 상은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게 허락하는 것, 그들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에이헙 선장이 바다 속으로 서서히 멀어져가는 라스트 신의 울림은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항해를 꿈꾸는 사람들,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나 ‘화이트 스콜’의 인물들은 모두 에이헙 선장의 연장선 상에 있으며, 작은 서핑보드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파도정복에 나서는 ‘폭풍 속으로’ ‘블루 크러쉬’의 서퍼들 또한 다르지 않다. 성찰에 가까운 시선으로 이러한 깨달음을 전달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1958년과 1990년, 스펜서 트레이시와 안소니 퀸의 열연에 의해 영화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해저의 깊이가 깊어지면, 영화는 ‘잠수함 혹은 잠수’라는 장치를 통해 폐쇄된 공간을 형성하고 인물의 내면을 항해하기 시작한다. ‘크림슨 타이드’ ‘유령’의 드라마틱한 갈등은 이 장치의 결과물이며, 코미디로 갈등상황을 대체하긴 했지만 빌 머레이 주연의 ‘스티븐 지소와의 해저생활’도 미세한 감정의 흐름을 잡아낸다. 인간에게 있어 바다가 가진 양면성, 고난과 평온이 마력적이듯 이러한 영화 또한 바다라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를 연출하기보다는 야생 그대로 보여주고자 애쓴다.
물의 두 가지 얼굴, 소통과 단절
굳이 거대한 해일이나 세찬 폭풍우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존재만으로 뚜렷한 물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탁월하다. ‘섬’이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활’의 주요배경은 물이 만들어내는 분리의 공간이다. 이곳은 주인공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의도적으로 단절시킨 곳이기도 하고, 타의에 의해 그것을 경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섬’의 현식(김유석)은 자살을 하고자 한적한 낚시터에 찾아든다. 세상으로부터 도피의 공간이 되는 낚시터는 물로 둘러싸여 잠시 그를 고립시켜준다. ‘활’의 노인도 바다라는 거대한 경계로 구분된 자신의 배 안에서 세상을 외면한 채 자신의 지배욕을 드러낸다. 그런가하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밥(빌 머레이)은 세숫대야에 얼굴을 담그거나 목욕을 함으로써 단절의 순간을 맞는다.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아내와 통화를 하던 밥은 자주색 카펫얘기나 하며 자신의 말 따위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아내를 깨닫고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욕조에 얼굴을 담근다. 도쿄와 일본사람들과 아내에게서 그는 철저히 소외되고 단절돼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소통으로 이끌어주는 것 또한 물이다. ‘루시아’에서 루시아(파즈 베가)는 로렌조와 헤어진 뒤 지중해의 외딴 섬에 가서야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바다를 통해 엘레나를 알게 되고 카를로스를 만나면서 6년 동안의 과거와 교감한다. 물은 그녀를 소통으로 이끌어준 셈이다.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의 여자가 뿜어내는 물 역시 욕망의 통로가 되고, 남자의 안식이 된다. 그 물이 흘러들어간 곳에는 물고기가 모여들어 역동적인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마농의 샘’에서 물이 세대를 이어주는 삶의 목적이 되는 것은, 단절됐던 것을 다시 포용하고 소통시키는 어머니 자궁의 양수로서의 물을 떠올리게 한다.
일상을 적시는 검은 물의 공포
이상하게 기분 나쁘면서도 보고 또 보게 되는 일본 영화들에서 물은 단단히 한 몫을 한다. ‘검은 물 밑에서’에서의 물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공포를 조성하는 핵심소재이다. ‘또옥 또옥’ 길게 여운을 남기며 잦아드는 물방울 소리는 검은머리만 삐죽 솟은 알 수 없는 소녀의 정체와 맞물리면서 소름끼치는 경험을 선사한다.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이미 전작 ‘링’에서 우물을 등장시켜 많은 관객의 저녁잠을 앗아갔다. 어슴푸레 비치는 우물 안에는 여자의 엉킨 머리카락과 익사한 듯한 사체가 있고, 우물 속에서 걸어 나오는 여자의 축 쳐진 형상은 물에 젖은 ‘물귀신’ 그 이상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링’을 리메이크했던 우리나라는 ‘령’을 통해 다시 한번 물을 이용한 공포를 선보인다. 우물에 빠져 죽은 친구는 자신을 죽인 친구들에게 복수를 하며 굵은 줄기의 물을 토하게 하거나, 병원침대에 누운 채로 익사시킨다. 물이 가진 비일상성, 이물감 혹은 이질감은 이렇게 장르적인 특성과 맞물려 애용되기도 한다.
한편, ‘하얀방’과 ‘디아이2’의 포스터를 보면 양수 속의 태아라는 잉태의 신비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으로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즉물적인 공포라기보다 잉태라는 신성하고 소중한 것을 전복하고 제거하는데서 오는 위협과 두려움이다. 양수는 태아를 보호하는 안전한 공간이 아닌 악과 저주의 통로 역할을 하게 된다. 스케일을 넓히면 검은 바다라는 매력적인 공포의 대상을 만날 수 있다. 깊고 푸른 바다는 경외의 대상이지만, 40년 전 실종된 보물선을 예인하러간 ‘고스트 쉽’의 인물들에게는 악마의 바다이다. 핏빛의 시체들과 그들의 동고동락을 감상하다보면 후반부에 등장하는 싸한 풍경도 만날 수 있다.
흐르는강물처럼, 사랑도 흐른다
바다로, 호수로, 빗방울로. 변화무쌍한 물의 특성은 쉽게 섞였다가도 쉽게 갈라지는 사랑의 모습과 닮았다. 그래서인지 물은 로맨틱 영화에서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 왔다. 그 중에서 제일 빈번하게 등장하는 아이템을 꼽으라면 ‘비’다. 사랑하는 사람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쏟아지는 비 속에서 ‘싱잉 인 더 레인(singin’ in the rain)’을 열창하며 경쾌한 탭댄스를 선보였던 진 켈리의 모습은 영화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포스터가 인상적인 ‘4월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선배에게 빌린 빨간 우산을 쓰고 비속으로 뛰어가던 우즈키(마츠 다카코)의 미소는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시절의 기네스 펠트로와 에단 호크가 등장하는 ‘위대한 유산’에는 그 유명한 분수대 키스 신이 등장한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분수대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시고 있던 핀(에단 호크)에게 다가간 에스텔라(기네스 팰트로)가 입을 맞추는 장면은 풋풋하면서도 한없이 매혹적이다. 바다에서는 인어공주의 로맨스가 한창이다. 어린 시절 바다에 빠진 ‘스플래쉬’의 알렌(톰 행크스)은 인어의 도움으로 구출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청년이 되어 우연히 재회한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푸른 바다 속에서 이뤄졌던 알렌과 인어의 낭만적인 수중 키스 신과 더불어,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인어들의 세계로 함께 유유히 사라지던 라스트 신은 환상적이고도 아름답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의 우디 앨런에 따르면 낭만의 도시 베니스에서 폰(줄리아 로버츠)과 사랑을 키워나갈 때도, 사랑의 상처를 안고 옛 아내와 파리에서 재회해 아름다운 춤을 출 때도, 언제나 강물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강물을 따라 사랑도 계속 흐를 것이다.
대학내일 문화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