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의 4가지 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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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을 인용했던 작가 알랭 드 보통은 ‘강’이라는 단어는 변하지 않지만 그 단어 안에 흐르고 있는 물은 단 한순간도 같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생을 흐르는 물에 비유하는 것도 바로 이런 시간의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반되는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의미를 던지기도 합니다. 여름을 맞이한 기념으로 시원한 물에 눈 한번 담가보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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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혹은 자아와 싸우는 작은 인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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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끝, 깊고 푸른 바다는 인간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 혹은 신의 영역이다. 두려움과 벅찬 기대를 안고 바다로 나선 사람들은 바다와 사투를 벌이거나, 완벽히 하나가 된다. 거대한 흰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고 복수의 항해를 시작하는 ‘백경’의 에이헙 선장(그레고리 펙)은 부서지는 하얀 파도만큼이나 날이 선 집착과 광기로 인간의 의지와 존재감을 드넓은 바다 위에 펼친다. 그러나, 바다는 인간의 승리를 허락지 않는다. 그저 저항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대하다. 바다가 베푸는 가장 큰 상은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게 허락하는 것, 그들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에이헙 선장이 바다 속으로 서서히 멀어져가는 라스트 신의 울림은 바로 여기에서 발생한다. 항해를 꿈꾸는 사람들,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나 ‘화이트 스콜’의 인물들은 모두 에이헙 선장의 연장선 상에 있으며, 작은 서핑보드 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파도정복에 나서는 ‘폭풍 속으로’ ‘블루 크러쉬’의 서퍼들 또한 다르지 않다. 성찰에 가까운 시선으로 이러한 깨달음을 전달하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1958년과 1990년, 스펜서 트레이시와 안소니 퀸의 열연에 의해 영화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해저의 깊이가 깊어지면, 영화는 ‘잠수함 혹은 잠수’라는 장치를 통해 폐쇄된 공간을 형성하고 인물의 내면을 항해하기 시작한다. ‘크림슨 타이드’ ‘유령’의 드라마틱한 갈등은 이 장치의 결과물이며, 코미디로 갈등상황을 대체하긴 했지만 빌 머레이 주연의 ‘스티븐 지소와의 해저생활’도 미세한 감정의 흐름을 잡아낸다. 인간에게 있어 바다가 가진 양면성, 고난과 평온이 마력적이듯 이러한 영화 또한 바다라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를 연출하기보다는 야생 그대로 보여주고자 애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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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의 두 가지 얼굴, 소통과 단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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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거대한 해일이나 세찬 폭풍우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존재만으로 뚜렷한 물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탁월하다. ‘섬’이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활’의 주요배경은 물이 만들어내는 분리의 공간이다. 이곳은 주인공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의도적으로 단절시킨 곳이기도 하고, 타의에 의해 그것을 경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섬’의 현식(김유석)은 자살을 하고자 한적한 낚시터에 찾아든다. 세상으로부터 도피의 공간이 되는 낚시터는 물로 둘러싸여 잠시 그를 고립시켜준다. ‘활’의 노인도 바다라는 거대한 경계로 구분된 자신의 배 안에서 세상을 외면한 채 자신의 지배욕을 드러낸다. 그런가하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밥(빌 머레이)은 세숫대야에 얼굴을 담그거나 목욕을 함으로써 단절의 순간을 맞는다.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아내와 통화를 하던 밥은 자주색 카펫얘기나 하며 자신의 말 따위에는 귀 기울이지 않는 아내를 깨닫고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욕조에 얼굴을 담근다. 도쿄와 일본사람들과 아내에게서 그는 철저히 소외되고 단절돼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소통으로 이끌어주는 것 또한 물이다. ‘루시아’에서 루시아(파즈 베가)는 로렌조와 헤어진 뒤 지중해의 외딴 섬에 가서야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바다를 통해 엘레나를 알게 되고 카를로스를 만나면서 6년 동안의 과거와 교감한다. 물은 그녀를 소통으로 이끌어준 셈이다.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의 여자가 뿜어내는 물 역시 욕망의 통로가 되고, 남자의 안식이 된다. 그 물이 흘러들어간 곳에는 물고기가 모여들어 역동적인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이와 유사하게 ‘마농의 샘’에서 물이 세대를 이어주는 삶의 목적이 되는 것은, 단절됐던 것을 다시 포용하고 소통시키는 어머니 자궁의 양수로서의 물을 떠올리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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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을 적시는 검은 물의 공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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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기분 나쁘면서도 보고 또 보게 되는 일본 영화들에서 물은 단단히 한 몫을 한다. ‘검은 물 밑에서’에서의 물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공포를 조성하는 핵심소재이다. ‘또옥 또옥’ 길게 여운을 남기며 잦아드는 물방울 소리는 검은머리만 삐죽 솟은 알 수 없는 소녀의 정체와 맞물리면서 소름끼치는 경험을 선사한다. 나카타 히데오 감독은 이미 전작 ‘링’에서 우물을 등장시켜 많은 관객의 저녁잠을 앗아갔다. 어슴푸레 비치는 우물 안에는 여자의 엉킨 머리카락과 익사한 듯한 사체가 있고, 우물 속에서 걸어 나오는 여자의 축 쳐진 형상은 물에 젖은 ‘물귀신’ 그 이상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링’을 리메이크했던 우리나라는 ‘령’을 통해 다시 한번 물을 이용한 공포를 선보인다. 우물에 빠져 죽은 친구는 자신을 죽인 친구들에게 복수를 하며 굵은 줄기의 물을 토하게 하거나, 병원침대에 누운 채로 익사시킨다. 물이 가진 비일상성, 이물감 혹은 이질감은 이렇게 장르적인 특성과 맞물려 애용되기도 한다. 한편, ‘하얀방’과 ‘디아이2’의 포스터를 보면 양수 속의 태아라는 잉태의 신비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으로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즉물적인 공포라기보다 잉태라는 신성하고 소중한 것을 전복하고 제거하는데서 오는 위협과 두려움이다. 양수는 태아를 보호하는 안전한 공간이 아닌 악과 저주의 통로 역할을 하게 된다. 스케일을 넓히면 검은 바다라는 매력적인 공포의 대상을 만날 수 있다. 깊고 푸른 바다는 경외의 대상이지만, 40년 전 실종된 보물선을 예인하러간 ‘고스트 쉽’의 인물들에게는 악마의 바다이다. 핏빛의 시체들과 그들의 동고동락을 감상하다보면 후반부에 등장하는 싸한 풍경도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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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르는강물처럼, 사랑도 흐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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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호수로, 빗방울로. 변화무쌍한 물의 특성은 쉽게 섞였다가도 쉽게 갈라지는 사랑의 모습과 닮았다. 그래서인지 물은 로맨틱 영화에서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 왔다. 그 중에서 제일 빈번하게 등장하는 아이템을 꼽으라면 ‘비’다. 사랑하는 사람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쏟아지는 비 속에서 ‘싱잉 인 더 레인(singin’ in the rain)’을 열창하며 경쾌한 탭댄스를 선보였던 진 켈리의 모습은 영화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포스터가 인상적인 ‘4월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선배에게 빌린 빨간 우산을 쓰고 비속으로 뛰어가던 우즈키(마츠 다카코)의 미소는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시절의 기네스 펠트로와 에단 호크가 등장하는 ‘위대한 유산’에는 그 유명한 분수대 키스 신이 등장한다. 푸른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분수대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시고 있던 핀(에단 호크)에게 다가간 에스텔라(기네스 팰트로)가 입을 맞추는 장면은 풋풋하면서도 한없이 매혹적이다. 바다에서는 인어공주의 로맨스가 한창이다. 어린 시절 바다에 빠진 ‘스플래쉬’의 알렌(톰 행크스)은 인어의 도움으로 구출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청년이 되어 우연히 재회한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푸른 바다 속에서 이뤄졌던 알렌과 인어의 낭만적인 수중 키스 신과 더불어,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인어들의 세계로 함께 유유히 사라지던 라스트 신은 환상적이고도 아름답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의 우디 앨런에 따르면 낭만의 도시 베니스에서 폰(줄리아 로버츠)과 사랑을 키워나갈 때도, 사랑의 상처를 안고 옛 아내와 파리에서 재회해 아름다운 춤을 출 때도, 언제나 강물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강물을 따라 사랑도 계속 흐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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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내일 문화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