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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VS 철학 -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철학 대 철학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난맥상으로 흩어져 있는 철학의 얼개를 잡아보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특히 서양편과 동양편으로 나누고, 다시 주제별로 철학자들의 견해를 대립시킨 후 저자의 의견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기술되어 직접 강의를 듣는 것 같은 생동감이 있다. 독서 후 관심있는 주제를 골라 철학자 별로 공부해나가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철학의 의제들이 한 데 엮이는 맥락이 없이, 다소 분절적인 질의들로 채워지다보니, 읽고난 후 하나로 꿰어지는 줄기를 가늠하지 못하겠는 어려움이 있다. 또 분량상 철학자의 주저에서 인용된 일부 문장으로써 주요 내용이 소개될 수 밖에 없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보니, 깊이있는 읽기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을 것 같다.
객관적 세계가 생물종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으므로 하나의 생명체가 죽으면 하나의 세계가 사라진다는 마투라나의 비유, 사유재산제로부터 소외받은 이들이 경찰이나 관료가 되어 사유재산제를 옹호하도록 하는, 즉 자신의 적을 자신의 방어자로 만드는 국가와 법률의 통치에 대한 루소의 통찰, 이론적 관심, 실천적 관심, 무관심으로 연결되는 진선미에 대한 칸트의 인식, 성욕이나 에로티즘, 사랑은 맹목적 의지로서 오직 종족 보존을 위한 수단이라는 쇼펜하우어의 일갈, 자아는 몸, 감각, 지각, 성향, 의식 등 오온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효과라는 싯다르타의 진단, 인간의 신체를 기계가 아닌 유기체로 파악한 편작 등의 삽화 등이 인상깊게 남는다.
한국에서 철학은 가능한가, 도발적인 의제가 가장 마지막에 배치되었는데, 이 땅에서 철학하기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부제가 내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부랴부랴 직수입된 철학 중 시류에 따라 번역 또는 소개하는 정도로 연명하면서 철학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이제 갓 철학자로 나선 이들이 발붙일 대지 없이 방황하고 배회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인 듯 하여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이 땅에서 철학하기가 슬픈 자화상이 되지 않도록 배지를 늘려가려면, 시원찮더라도 학계 밖에서 진지를 구축하듯 이 책은 많이 읽혀져야 한다.
거칠더라도 어떻게든 책으로 엮어내 철학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것만 해도 저자에게는 크게 감사할 일이다.
나는 다짐했다. 언젠가는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자들을 한 권에 담아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야겠다고 말이다. 무엇인가와 마주쳐야만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 혹은 미워할 수도 있다. 철학자들과 그들의 텍스트를 접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돌풍처럼 밀어붙이는 철학자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겠는가? 나의 철학사는 단순한 철학사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나의 야심은 이보다 더 크다. 그것은 나의 철학사를 통해 독자들이 자신을 달뜨게 만드는 정신적 멘토를 찾고, 나아가 자신만의 철학자를 마치 열광적인 팬처럼 사랑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랑이 강할수록 우리의 앎도 깊어지고, 우리 자신도 바로 그만큼 성숙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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