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問 라이브러리 2
도정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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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의심하기가 미덕이 되어야하는 세상만큼 불행한 사회도 없을 것 같다. 기술과 접목된 자본의 권력, 도태의 공포를 살포하며 끊임없이 경쟁을 자극하는 시장전체주의의 주도면밀한 내면화, 세계화 이데올로기를 뿌리에 두고 스스로를 검열하는 자기 감시의 극치, 그 뒤틀린 이면을 스스로 깨닫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러므로 시장전체주의가 뿌려대는 강력한 문제점을 철저히 해체하고,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를 하나하나 의심하도록 독려하는 문장들이 감사하다.

   아큐 현상에 대한 통찰이 깊이 남는다. 정체성을 잃어가면서도, 미국 문화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면서 세계화를 지향하고 있다고 믿는 천박성이야말로 기를 쓰고 극복해야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자본과 기술의 대연정으로 탄생한 기술권력의 미시적 분산은 두고두고 기억해야할 주제다. 감시기술의 사유화는 기술의 정치적 성격이 모호한데다, 권력 행사자가 숱한 사적 개인이며, 그 미시화된 감시 권력이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평등과 행복, 자유의 조건이라는 점. 모두가 감시의 대상이 되면서, 동시에 모두를 감시하는 사회 속에서 특정한 적은 점점 더 규정하기 어려워지고, 이 때문에 이성은 더욱 마비되어 버린다는 지적.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얕은 사회 의식의 팽창은 결국 기술과 자본의 연합 앞에서 인간의 가치를 철저하게 목적이 아니라 도구로 변질시킨다.

   교육의 배반과 배반의 교육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가장 가슴이 아렸던 부분. 에세이를 통해 인간의 내적 변화는 내면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환경의 변화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스스로 주제를 선정하고, 해답의 고민을 풀어가는 미국 고등학생의 삽화가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 까닭이다. IMF를 겪으면서 어느 순간 교육의 목표가 시장에 헌신하는 혹은 잘 적응하는 도구적 인간 육성에 집중되면서, 교육의 핵심가치는 경쟁으로 쏠리고, '돈'의 가치로 환산되기 시작했다. 자본 권력과 시장 전체주의의 만능성이 침투한 교육현장에서 최고의 교육적 성과는, 의심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도구적 인간일 수 밖에 없다.

  시장이 과연 최선의 대안이며, 경쟁이 최고의 가치인지, 기술과 자본의 해부에 관한 한 가장 예리한 칼날을 가진, 인문학의 위기를 왜 예사로이 바라봐서는 안 되는지, 날카로운 질문과 해답의 실마리를 동시에 찾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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