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으로 본 한국역사 - 젊은이들을 위한 새 편집
함석헌 지음 / 한길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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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밤, 한 줄기 바람에 잠시 창이 설겅인다. 폭염으로 들끓던 도심의 열기는 어느새 무심한 어둠 속에서 산산이 흩어지고 지난 며칠동안 열대야로 끝끝내 잠 못 이루고 뒤척였던 고생스런 경험도이제는 바람과 더불어 한 풀 꺾이는 듯 하다.

   무슨 까닭인지 여름에 접어들 무렵 엉뚱한 꿈이 생겼다. 진중한 고민 없이 사회초년병으로 떠밀려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내달리다가 갑자기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라고 할까.시인의 표현대로 인생의 거친 노영에서 한순간 발 잃고 쫓기는 짐승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명하므로 달리기는 하는데 그 질주를 옹호할만한 나만의 답변이 없음을 깨닫게 되면서 '나'란 존재는 한없이 옹색해졌고, 생활은 막막해졌다. 한 번 가슴에 내려앉기 시작한 답답함은 일순간 감정의 틈새에 숭숭 구멍을 뚫어버리곤 지금껏 아무 문제없던 모범적인 사회인의 행보를 성큼 가로막아 섰다. 일상은 맥빠졌고 머리 속은 자갈을 잘게 갈아 한꺼번에 뒤섞은 마냥 무겁기만 했다. 그러므로 뜻하지 않게 찾아온 이 혼돈을 뒤엎어 의지를 관통하고 심장을 꿰뚫어 나의 살아가는 까닭과 내가 선 지금의 좌표의 의미를 온건히 드러내 보일 명쾌한 바람, 무더위의 맹폭을 이기고 기계처럼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상의 이면을 파고들어 시들어 가는 영혼을 소성시킬 살아있는 '바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아닐까 싶은 그날의 클릭은 내겐 참으로 큰 행운이다. 하릴없이 반복적으로 클릭을 남발하며 넷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YMCA관계자의 추천도서 기고를 읽게 된 것이다. 시련과 고달픔의 연속이었던 만학의 학창시절을 지낸 필자는 청계천의 헌 책방 구석에서 우연히 발견한 함석헌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밤을 세우며 읽었고 역사관, 종교관, 세계관, 인생관을 관조하며 출발선에서 다시 다짐하였노라면서 속도로 치닫고 뿌리를 잃어버린 현대문화에 병든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서점으로 달려가 당장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구입했고 떨리는 심정으로 읽어 내려가면서 광폭스러울 만큼 시원스런 '활자'의 바람을 맞아 그 어느 해보다도 시원한 여름나기를 할 수 있었다. 열정과 동요, 절망과 좌절, 그리고 희망으로 이어지는 한민족 반만년 역사의 맥을 짚는 선생님의 통렬한 뜻풀이를 뒤따르자니 연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도 지지 않을 만큼 열심을 품고 활자를 읽어나가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선생님께서는 '식물 생활의 근본이 되는 땅이 흙과 물이 합한 것이 듯이, 인간 생활의 근거가 되는 사실은 인생적인 면과 역사적인 면으로 되어 있으며 물 없는 흙 없고 흙을 떠난 물 없듯이 역사 없는 인생도 없고 인생을 내논 역사도 없다'고 단언하셨지만 사실 나는 부끄럽게도 역사 없는 인생도 있을 수 있다는 듯 역사적 각성 없이 잘도 내달려왔다. 그동안 '역사'란 암기의 편린들로 제시되어 어떻게든 기억 속에 구겨 넣어야할 사실의 나열이거나 몇 몇 초인적 무리들의 일신에 따라 그 큰 줄기가 뒤바뀌는 영웅담 정도로 인식되었다. 역사는 언제나 '내'것이 아니었고 '그들'의 것이었다. 한번도 민중의 고통과 고뇌, 아픔과 슬픔, 자각과 결심으로 채워진 역사의 행로를 엿보지 못한 까닭에, 이제는 정말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삶으로 바탕 지어진 역사를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넘기는 순간 순간 사뭇 비장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지금껏 알고 있던 사관에서 벗어나 굴곡진 한민족의 삶을 전혀 새로운 기독교적 입장에서 고찰해 보겠노라는 선생님의 선언은 그 비장함의 두께를 더욱 두텁게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편협한 교리주의나 독단적 종교관으로 극단적인 한민족 중심의 역사관을 피력하시면 어쩌나, 염려 비슷한 감정마저 일었다. 그러나 읽어갈수록 선생님의 '뜻'은 단지 기독교란 특정 종교적 관념이 아니라 모든 종교를 초월하여 마침내 진리의 논리를 획득한, 보다 넓은 시야에서만 가꿀 수 있는 위대한 통찰력의 산물임이 명확하고도 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뜻'은 세계와 동떨어져 한민족의 융성과 번창만 소망하는 기복의 역사관이 아니라 세계가 하나로 엮어지는 어울림 속에서 한국인의 존재 가치를 찾고 인류 전체의 공영을 위한 길 찾기의 지표로 자리 매김하며 벅찬 희열과 함께 오래된 갈증을 씻어내는 샘물이 되었다.   


   단군 조선의 당당했던 역사의 출발이 풀무 속의 삼국시대로 이어지고 고난의 연옥 길을 걷듯 부끄럼이 퍼붓던 통일신라시대를 거쳐 진정한 '나'를 잃어버려 중국과 왜에게 끝없이 침노당한 고려로 내려온 그 자취. 거란과 여진을 몰아내 옛 영토를 복원하려던 북진정책이 깨어지고 몽고바람으로 쑥대밭이 되어버린 고려왕조의 영락, 기습으로 찬탈한 수난의 오백년 조선왕조의 중축이 부러지며 치욕스런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의 기쁨을 맛본 것도 잠시 6 25전쟁과 4 19혁명, 5 16 군사 쿠데타로 시작된 암흑 같던 군사정권...역사의 굴절된 고비를 마주할 때마다 한국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고 '한국인이 그러면 그렇지'란 자괴감에 침잠되지 않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쩔 수 없이 치부를 한껏 드러내어 운명의 갈림길에서 똑바로 정신차리지 못해 오욕의 역사를 그려낸 우리 민족의 잘잘 못을 피눈물로 고발하는 선생님의 절절한 절규와 꾸짖음은 어느새 '나'에게로 쏟아지는 질타가 되었다. 이민족의 말발굽에 짓밟힌 민족정신은 '나'를 버리고 '밖'에서 가치를 찾는 일그러진 현재의 내 모습으로 투영되었고 이상을 쫓기보다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당장의 살 길을 도모하는 것이 우선이라던 무리들의 비열한 지론은 미처 깨닫지 못한 허튼 일상을 쫓는 내 신념이었다. 고난을 참고 넘어서면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나 무조건 과장하고 유리하게 첨삭하며 역사를 유린 하는 자세가 아니라 '삶이 고난'이라는 대 전제하에 고난이 갖는 의미를 재해석하고 현재의 삶의 자양분으로 삼을 때 역사는 참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선생님의 주장. 마지막 장으로 치닫는 독서의 막바지에 이르면서 '뜻'은 서서히 가슴속에 섬광처럼 박히는 별이 되었다.

   반만년 찬란한 역사라고는 하나 마음을 잃어버렸고 꿈을 떨쳐버려 결국 껍데기만 남은 허섭한 유산만 매만지곤 그래도 살아내었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자기 위안을 삼는 역사가 아니라 숱한 수난 속에서 갈보처럼 우롱 당하였으나 그 역사의 숨은 뜻을 찾아 미래의 새로운 이상으로 풀무질해내는 살아있는 역사, 그 참 뜻을 읽어내는 눈. 곧 눈 뜨임의 과정을 위하여 호된 질책과 꾸지람이 아니면 안되었다. 더듬다보면 모질도록 거친 표독스런 힐난도 있었고 눈물을 쏟아내지 않고는 도저히 다음 장으로 넘길 수 없게 하는 애잔한 언어의 장막도 있었다. 그저 '수난의 왕녀'란 오명으로 우리 역사의 속성을 단정짓는 것이 아니라 늙은 갈보의 모습에서 인생의 참가치를 찾아내는 예술가의 눈으로 고난 속에 숨은 역사의 진정한 의미를 속시원히 풀어내는 선생님의 피맺힌 육성 앞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고난과 시련의 지난 역사에 대한 부끄러움은 긍지와 애정의 시선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고난이 죄를 씻고 인생을 깊게 하며 위대하게 한다. 핍박을 받아 대적을 포용하는 관대함을 얻고 궁핍과 형벌을 참아 자유와 고귀를 얻을 수 있다'는 직언과 '세계사의 하수구. 불의를 받아들여 보이지 않는 무한의 바다로 통하여 끝없이 도덕적 시대정신을 정화시키며 나와 세상을 건지는 사명을 다하는 세계사의 하수구로 내 속을 뚫어 하나님에게 직통하는 지하도를 파라'는 격려. 그것은 한국인이며 동시에 세계인으로 살아가는 '나'를 향한 묵언의 명령이었다.

   시대를 아우르며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큰 어른이 있다는 사실, 얼마나 깊은 위안이며 자랑인지 혹 선생님은 아실런지.. 책을 읽기 전 '역사적 존재'로서의 '나'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떤 실적을 쌓고 무엇을 축적할 것인지 사회인의 답습된 질문에 답하기 위한 맹목적 질주는 점화되었다. 역사가 왜 중요하며 살아가는 데 무에 그리 도움이 된다는 것인가. 나만 잘 살면 되고 그저 평탄한 일상만 영위하면 그만 아닌가. '역사적 존재'로서의 내가 잠든 사이 '개인적 존재'로서의 나는 이기심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절대균형을 찾지 못하고 기우뚱거리는 그 찰나, 어떤 운명처럼 그 위태로운 질주를 가로막고 메마른 음성으로 내 이름을 부르고 단순한 언어적 유희로 내 존재를 뭉그리는 병폐적 일상을 딛어 반만년 역사의 혈맥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민족혼을 깨우라는 부르짖음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통해서 '나'는 그저 부평초처럼 떠돌다 생을 마감하는 들뜬 존재가 아니라 선생님의 말씀대로 대한민국이란 대지에 자리잡고 서 끝없이 양분을 빨아올리는 한민족의 뿌리로서 전 세대의 영욕의 역사 속에 숨은 뜻을 간파하고 그 뜻으로 바로 서 다가올 세대의 평화와 안녕을 도모하는 '고리'임을 깨닫게 되었다.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나는 태어남과 동시에 한국인이 갖는 거대한 역사적 조류에 편입되었다. 부정할 수 없는 태생적 운명, 한.국.인. 북핵문제, 계층과 지역, 세대간 화합, 사회개혁과 경제적 안정, 도덕성과 신뢰의 회복, 남북통일의 염원,진정한 민주주의의 뿌리내림. 나아가 세계 인류의 공영과 발전.. 이 사회와 시대가 떠 안고 있는 모든 문제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결국 '나'의 것이었다. '개인적 존재'로부터 '역사적 존재'로의 탈피. 나의 인생과 한민족 역사의 존망이 씨실과 날실로 엮어지는 그 중심에 던져진 선생님의 숙제다. 사력을 다하여 선생님은 나를 깨우셨고, 진정한 '기상'은 철저히 내 몫으로 남았다. 지금 조각나 제시된 현실을, 앞으로 마주하게 될 미래의 청사진으로 이어나가는 힘은 즉흥적인 감흥이나 막연한 기대감이 아니라 꼼꼼하고 내실 있는 이성과 냉철한 판단력이 아닐까.

   창을 열고 폐부 깊숙이 '바람'을 들이마신다. 이제 나의 호흡은 어제의 것이어서는 안 된다. 현실의 얄팍한 개인적 계산 안에서 한없이 굴절되고 큰 꿈을 빼앗겨 웅얼거림으로 소진하는 일상 안에서 힘 잃는 얕은 호흡이 아니라 한국인 세계인으로서 갖는 동시대인의 벅찬 연대의식으로 뿜어져 나와 마침내 전세계의 평화와 안녕이란 큰 꿈으로 직진하는 깊고도 힘찬 호흡이어야만 한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역사의 터널을 뚫고 온 지금, 나비가 허물을 벗고 새로이 성장의 삶을 살아가듯 이제부터 나의 '질주'는 역사가 증명한 '뜻'의 덧옷을 입고 한국인이 갖는 시대적 사명감으로 무장한, 축복받은 고난의 '정진'이다.

(2004 한길사 독후감 공모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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