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애 -하 범우고전선 52
레온 트로츠키 지음, 박광순 옮김 / 범우사 / 2001년 8월
평점 :
품절


언제부터인가 단절되었던 그 길, 저편에 그가 서 있었다. 때론 예외도 있지만 단절은 불신을 조장하고 불신은 편견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솔직히 러시아 혁명사, 아니 사회주의와 관련된 역사를 훑는 것은 금지된 영역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 발동이 걸려 지적 사치를 추구하는 것 인양 생각되어 까닭 모를 불편함과 죄책감 비슷한 걱정스러움까지 유발했었다. 이런 근거 없는 편벽진 감수성의 근원은 역사의 무수한 갈래의 길 중 몇 몇 중요한 대로가 언제나 배제된 채 소개되었거나 소개되었더라도 빈정대듯이 모든 길의 속성을 단 한 줄로 요약해버린 암기 위주의 편린들로 해부되어 제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의식을 깨친 이래 줄곧 통찰과 정진으로 일관한 트로츠키와 달리 편협과 속단으로 역사적 시야를 가꾸어 온 나는 의혹과 미심의 눈초리를 끝내 거두지 못하고 책을 펼쳤다. 단 한 번도 길이 아니었으며 결단코 벽으로만 제시되었던 러시아 혁명, 그 격정의 현장으로 안내하는 그의 육성은 담담했지만 내겐 떨림 그 자체였다.

다복한 유년시절과 우등생으로 손꼽히며 다소 냉소적인 분위기마저 풍기는 학창시절에 대한 회고는 그동안 '혁명가'란 단어가 내게 주는 허상을 철저히 깨부수려는 의도로 집필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겸손한 묘사와 정확한 표현으로 채워져 있었다. 냉철하며 비판적인 면모와 영웅적 일신으로 모든 전투를 창공에서 바라보는 예지까지 겸비한, 인간 이상의 그 어떤 존재와 대비되는 '혁명가'로서의 의미. 나는 범인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인간으로서 혁명가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철저히 내 독단을 가볍게 뭉게는 한편 -그의 표현대로-보고 알고 흡수하고 싶은 욕구가 만족할 줄 모르고 인쇄된 문장을 삼켜버리는 행위 속에서, 인생 전반에 걸쳐 경험한 온갖 기쁘고 슬픈 것들의 독서 체험 속에서 암시나 전제로 포함되었다는 토로로 혁명적 사고의 시작은 선천적 비범성이 아니라 그의 부단한 연구와 독서, 끝없이 이어진 성실한 메모 속에서 서서히 시작되었음을 엿보게 했다.

'인생은 아름답다'는 그의 당돌한 유언이 한때나마 허튼 망상처럼 느껴진 것은 당연히 최초의 혁명조직을 만들고 투옥과 유형, 재판과 탈주가 반복되었던 청년시절을 접하면서부터였다. 이 고집스러운 청년은 탈주의 순간마저 비극이 아니라 모험으로 인식했다. 굴곡진 혁명가의 삶을 올곧게 인도한 별이 굽힐 줄 모르는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신념이었다면 격랑이 쉴 새 없이 몰아친 생활을 풍요롭게 가꾸어낸 힘은 분명히 그의 긍정적 사고라는 확신이 들었다. 생생한 체험을 겪은 사람에게서 듣는 역사의 현장 이야기는 그동안 왜곡과 단정으로 이해되었던 많은 부분의 오해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가 어째서 러시아에서 먼저 현실화되었는지, 철저한 냉전 시대를 겪고 스탈린의 독재를 접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의 진정한 의의를 단순히 악의 체현과정으로 설풋 이해한 유아적인 역사 인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꼼꼼히 지적하듯 트로츠키의 활자는 살아서 움직였다.

때론 러시아 혁명 최고의 격전지에서 군사조직을 정비하고 전략을 수립하여 무장봉기를 이끈 군사전문가로, 때론 국제 사회에서 러시아 혁명의 의의를 옹호하고 실리적인 접근으로 유럽과 마주하며 뜨거운 노력을 쏟아낸 외교관으로..한 인간의 철저한 준비와 완벽한 통찰력이 역사의 궤도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트로츠키는 인생의 순간 순간을 통해 온전히 내보였다. 레닌과의 협력과 사상적 교통, 탈주와 유형 투옥으로 점철된 생활, 자녀들의 비참한 최후, 레닌사후 스탈린과의 첨예한 대립과 반목, 그리고 게페우에 의한 암살..일 순간 책장을 넘기는 단순한 태도로 역사의 산 증인이 피로 내뱉는 진실의 소리들을 건듯거리듯 흡입하는 일이 무슨 불경처럼 느껴졌다.

처음에 그는 내가 결코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단절된 길, 저편에 서 있었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나는 그에게 닿기 위해 길을 내었으나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할수록 그 길은 트로츠키 쪽에서 먼저 넓히고 점진시켰다. 그리고 여름이 잦아들 즈음 우리는 마침내 한 참을 돌아선 후에야 이렇게 만날 수 있었다. 트로츠키는 내겐 철저한 암막으로 제시되었던 역사의 저편과 닿게 한 영매였다. 얄팍한 지식과 독단으로 무장한 내가 혼자서는 그 깊은 암막을 걷어낼 수 없을 때 그 이면에 진실의 창을 내고 한껏 성숙된 의식으로 깨어나야 함을 묵언으로 이끌어낸 채널이었다. 그를 통해서 자칫 오도의 영역으로 남았을 러시아혁명의 진정한 의의를 다시금 생각해볼 계기를 가졌다. 창 밖으론 비가 내린다. 한 없는 하강으로 뻗어가는 빗줄기와 질주로 점화되는 도심의 자동차 행렬,그리고 정지된 시선으로 하강과 질주를 바라보는 나. 이 삐딱한 삼각구도는 때론 가벼운 바람에도 넘실대며 무심한 헛기침에도 하릴없이 무너진다. 그래서 서글프다. 그러나 온갖 자연의 생기를 고스란히 재현하고 한 껏 확충된 생의 의지로 만만한 상록수는 어떠한가. 세상의 온갖 비리를 지켜보고 있으나 가만 지켜보는 자와 달리 꼿꼿이 삼각구도를 직시하며 격랑과 파란의 연속선상에서도 결코 초록빛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게다가 끊임없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도 꾸준히 생을 잉태하고 재생시킨다.

레닌의 동상이 끌어내려지고 하나의 사회구조가 무너지며 또 다른 세계는 변질되어간다. 개방과 자본주의적 발상이 아니면 도태로 영락하는 거대한 경제논리만이 지배하는 종말의 시대, 트로츠키를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모든 역사적 관망을 두 눈에 담고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이면의 뜻으로 자신을 다시금 재교육시키는 사람만이 혁명가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 시대의 혁명은 어쩌면 세속적인 것으로 물들지 않으려는 줄기찬 노력으로 일관하는 투사가 되라는 그의 마지막 서명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역사의 궤도가 더해질수록 빛깔을 잃는 의미 없는 그림자가 아니라 더욱더 푸르러지는 상록수로서 거듭나는 것이 혁명 사이에 놓인 불행한 개인사의 이력으로도 영원히 아름다운 인생을 노래할 수 있는 진정한 비결임을 그는 조용히 선언한다. 역사의 숨가쁜 현장에서 그 소박한 비결과 더불어 영원히 아름다운 인생을 구가한 그를 만난 여름, 나는 충분히 행복했다. 한 때 단절되었던 그와 나 사이에 아직은 희미하지만 길이 생겼다. 그 길은 나의 줄기찬 공부와 독서가 더해지면서 점점 두터워지고 올곧아져야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트로츠키가 부단히 나를 깨우려했던 숨은 목적이었을 것이다. 
 

(2004. 다음 독후감 이벤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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