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으로 읽는 법 이야기 - 법정에서 소크라테스와 공자를 만나다
김욱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법사회학 시간에 기득권층의 소송 이용도가 높다는 사실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막대한 소송 비용을 감당할 능력 유무도 이런 결과에 한 몫 했겠지만,  갈등과 대립의 긴장관계를 견디며 쉽게 스스로 중단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잠시 허튼 생각을 했었다. 법리 싸움에서 결코 주도권을 놓치지 않은 그들, 무엇이 이들을 지속적으로 기득권에 머물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일까. 이 책은 그 호기심에 대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 답변서다. 무엇보다 세상과 역사를 뒤바꾼, 지금도 면면히 우리의 삶속에서 유영하는 굵직한 법리의 탄생, 그리고 그 이면의 모순들에 대해 짤막한 삽화 형식으로 배치, 소개한 점이 만족스럽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로크의 자연법론과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론 등장에 대한 소개. 학창시절 배운 간단한 왕권신수설과 천부인권설이 아니다. 로크는 인간의 생명, 자유, 재산을 소유하고, 이것을 지킬 수 있는 자연법적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연법 사상의 포문을 열었다. 또 생명, 자유, 재산을 소유권의 근간으로 규정하여 자본주의 시대를 견인했다. 생명과 자유, 재산을 소유함으로써 완성되는 인간의 완전한 권리. 그렇다면  이 완벽한 삼각 구도가  어긋나고 이지러지면, 그 순간  인간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자연법 사상은 천부인권을 표방하는 혁명의 논리인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 소유에 따른 인간 권리의 등급화도  동시에 견지할 수 있는 사상이 된다.  현 시대와 사회의 중심을 도도히 흐르는 자연법 사상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전적으로 깨어 있는 시민의 몫임을 다시 한번 각성하게 된다.  결국 자연법 사상의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제대로 성찰하지 않은 사회 변혁 논리는, 이름만 바꾼 또 다른 기득권들의 등장을 앞당기는 대로가 될 수 있음을 상기하게 됐다.  


    몽테스키외가 현실적으로 추구했던 권력분립의 정치 형태가 결국은 귀족정이었다는 사실은 막연한 삼권분립의 이론에 관성화된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왕에서 귀족들로 기득권의 외연을 넓혔을 뿐이라는 냉엄한 지적도, 이번 책읽기로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  


   권력 구도 밖에 진지를 구축하고 권력을 예인해나갈 것인가, 아니면 권력 중심으로 뛰어들어가 기득권을 바꿀 것인가를 논하기 전에, 지배 논리에서 배태된 법의 속성을 이해하고, 결국은 강자의 힘으로 대변될 수 밖에 없는 법의 이면을 경계하면서, 그 힘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을 실력을 먼저 갖추는 게 최우선 과제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의미에서 당시 사회 속에 드리워진 법의 지배를 분석하고, 비록 역사에서는 실패했지만, 자본주의 사회 대신 또 다른 대안 사회를 꿈꾸었던 마르크스의 끈질긴 관찰력은 이 책에서 더욱 빛난다.  


   저자는 법은 강제규범으로 당위의 영역이며, 이 세계는 존재와 당위의 영역으로 구별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당위의 영역은 결단코 존재 영역에 대한 성찰과 관용, 그리고 비판 없이는 설정될 수 없다. 이미 내 앞에 누군가 설정하여 제시하는 당위의 영역만을 받아들이면서, 존재의 영역을 외면하거나 간과하는 것, 그것이 결국은 존재 영역을 독점하며 당위 영역을 자신있게 설정해가는 기득권의 법 지배를, 가장 강화하는 주요 원인일 것이다.  당위의 영역 너머  존재의 영역에 대한 올곧은 개안을 향한 줄기찬 주문. 이 책의 저자가 가장 말하고 싶었던 주장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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