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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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장을 기어이 비집고 올라와 핏물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흘린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뻐 좋아 날뛰면서도 인간의 무력함이 신물 나고 가련하여 헛헛하게 웃어댄 적이 있기나 했었는지 좀처럼 되살려낼 수 없다. 그저 작은 일상에 취해 우물거리고 히죽이면서도, 차오르는 공허함은 채 한 줌도  되지 않았다. 제대로 살지 않은 까닭이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완벽한 평화, 온전한 자유, 깨질 것 같지 않은 단호한 이성...삶은 날카로웠지만, 나는 잠잠했다.  


   그런데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로 단숨에 뻣뻣해진 내 목줄을 따버렸다. 심장이 헐떡이고, 퀭한 눈 속에 눈물이 차오르고, 송곳 같은 통증이 혈맥을 관류하면서 온 몸이 스멀스멀 아파온다. 인간은 결코 관념적이고 피상적일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인간의 한계 그 너머를 갈망하며 성큼 성큼 걸어나가 버리는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것, 더러움과 오물 속에서도 꽃을 찾고 성스러운 것을 발견해내고 싶어 안달하는 존재라는 것, 인간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결국은 굴레 속에서만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설명할 수 없는 것도 많고 납득할 수 없는 것도 많은 세상이지만, ‘사는 것’말고는 그 어떤 저항도, 반항도 허락되지 않은 존재라는 것...아픔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조르바는 <생의 한 가운데>의 니나 부슈만을 닮았다. 날것으로의 생을 가공하지 않고 두려움을 참아가며 벌컥 벌컥 들이킨다. 힐난도, 훈계도, 질책도, 야유도 그에겐 소용없다. 틈만 나면 하나님이 없다고 소리치지만, 조르바야말로 가장 하나님께 가까이 간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분명 하나님이 아담을 만들고 키스하라고 손을 내밀자, 사내는 이봐요, 영감, 비켜 줘야 가든지 말든지 하지! 소리쳤을 거라는 대목에서, 조르바의 표현 때문에 한참을 웃었다. 인본주의 본향, 그리스에서라면 하나님을 이런 방식으로 상상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조국 그리스를 위하여 터키인들을 죽이고 나서야, 인간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에 염증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조르바, 늙고 병든 오르탕스 부인을 때로는 희롱했으면서도 가장 애처로이 사랑하고 존중했던 한 사내, 금식과 금욕에 지친 수도승에게 악마에게서 벗어나려면 파라핀을 들고 수도원에 불을 지르는 게 구원이라고 일갈했던 인간, 신성한 야만이란 게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준 구도자..조르바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활자는 그가 켜는 산투르가 되고, 그의 춤사위가 되는 듯 했다.  


...나는 사느라 시간이 없어 글을 쓸 수 없고, 두목은 쓰는 데 시간을 뺏겨 살지 못하는 겁니다..두목..당신은 믿으시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마구간에서 태어났다는 말? 어릴 적에 할머니는 갖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지만 나는 한마디도 믿지 않았어요..그러나, 지금, 나이를 먹은 지금..나이 먹으면 대가리가 물렁물렁해지는 걸까요, 나는 그런 이야기를 다시 믿기 시작했어요...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그리고 나는 오늘 문학의 아름다운 징표를 찾아냈다. 
    

     조르바가 버찌를 잔뜩 먹어 버찌를 이겨 냈듯이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책을 쓰고 읽으면서 책을 극복했듯이 나는 이제 불평을 멈추고, 덴덕스럽고 물컹이는 삶의 편린들을 잘근잘근 씹어 삼킬 참이다. 내게 주어진 삶대로 사는 것, 부활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확신을 얻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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