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問 라이브러리 3
최장집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읽기를 미루고 있던 <후불제 민주주의>를 건듯거리며 넘기다가 우연히 최장집 교수님과  관련된 대목을 읽고, 이 책부터 읽기로 작정했다. 최장집 교수님의 정당정치에 큰 틀에서는 공감하면서도 날선 정치 현실에서는 실제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듯한 어투가 불을 당긴 셈이 됐다. 결과적으로는 독서의 순서가 제대로 잡힌 것 같다. 현실 정치인으로서는 뜬구름잡는 이상주의라고 불편해할 수 있겠지만, 제 3자의 관점에서 독서를 시작한 나로서는 이상을 먼저 알고, 현실 이야기를 듣는 것이 훨씬 효용적이라는 판단이 든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덕주의, 민족주의-국가주의, 신자유주의의 관점이 상호교차하고 결합하면서 결과적으로는 정치에 있어서 참여의 투입을 축소하고, 효율적인 정책 산출 중심의 체제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민주화를 지향하는 민중운동이 갖는 ‘총체성’의 비전은 강력한 힘의 결집, 혁명적이고 전투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지만, 민주화된 이후에는 단일 동맹을 유지하기 힘들고, 대중들의 사회경제적, 계층적 지위와 역할에 따라 필연적으로 해체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는데,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앨버트 허쉬만의 갈등에 대한 소견이었다. 갈등은 나누는 것이 가능한 갈등이 있고, 나누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갈등이 있는데, 이에 따르면 사회 경제적인 문제는 나눌 수 있는 갈등이고, 민족문제는 나눌 수 없는 갈등이라는 것이라는 것.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 사회 복지 문제 같은 나눌 수 있는 갈등의 문제를 다루면서 나눌 수 없는 갈등의 관점과 틀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국가냐 시장이냐, 기업이냐 반기업이냐, 세계화냐 반세계화냐 하는 등의 적대적 정치로 대립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적극 공감. 

   기득권의 경험이 없던 진보 진영이 관료들에게 끌려 다닐 수 밖에 없음을 분석한 대목은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시려졌다. 어느 교수님의 지적대로 한 편은 영혼이 없고, 또 한 쪽은 정책이 없다는 쓴 소리를 확인한 것 같은 마음도 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진보 진영에서 과연 진보라며 추구하고 있는 바를 스스로 제대로 정의하고 있나 하는 점 아닐까 싶다. 민중운동을 통해 정치인으로 자라난 세대를 바라보면서 내가 모순이라고 느끼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진보와 정진의 정의를, 시민이 아니라, 민중의 힘을 딛고 자라난 정치인이 인정하고 힘을 실어야만 진짜 진보라고 귀결되는 것 같은 외관을 갖는다는 점. 스스로 깨닫든 그렇지 못하든, 어느 순간 자신 스스로가 진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체득하고, 그 틀에 갖힌 후에는 현실의 다양한 목소리와 주장을, 단순히 진보를 와해하는 세력으로 일순간에 몰아갈 수 있다다는 것이다. 즉 내가 보기에는 진보의 독점 내지는 독식의 현상이 나타난다. 총체성의 비전을 가졌던 세대가 물밀듯이 몰려오는 다양성을 감당할 능력을 갖출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오히려 소통의 문이 좁아졌고, 누구는 눈밖에 나면 오히려 적으로 낙인찍기가 스스럼 없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갈등 문제의 본질적인 내용 대신 껍데기에 천착하다보니, 혈관으로 스며드는 세밀한 정책이 제 때 생산되지 못한다.

  씁쓸한 것은 진보라고 불리우는 정당들이, 또는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이 틀을 바꾸는 법안이나 정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틀을 바꾸고 싶어 하는 시민과의 연계가 소원하다고 이해한다면 너무 편견에 사로잡힌 단견이 될까. 민주화를 위해 뛰어온 주역들이 직업 정치인이 되자, 개인의 의지를 떠나서, 누구든 지배와 관리의 논리를 가질 수 밖에 없었고, 결국은 스스로가 죽는 십자가를 져야만 틀 바꾸기가 가능한데, 죽는 것도 힘들어졌다고. 아이러니하게도 뿌리에 손을 못 대니, 보수나 진보나 내놓는 정책이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는 의식의 결여가 아니라, 불을 지피는 정책의 고갈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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