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問 라이브러리 5
강수돌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답이 아닌 질문의 절실함을 위하여’책 안표지에 새겨진 출간의 기치가 마음에 와 닿았다. 제시된 답들이 도출되도록 하는 질문이 배제되면, 독자는 전적으로 수동적인 자세에 머무르고, 약자 된 자의 책읽기는 결국 활자 탐독으로 내달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상처가 일중독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비교 연구 결과가 눈길을 끈다. 자신의  정체성이 모호하므로 ‘분주함’을 무기 삼아, 그 필요성을 스스로 되내이면서, 분주하도록 하는 ‘일’, 그것이 곧 자신이라고 규정하고 덧칠하는 비참함. 비극은 이 비참함이 통찰의 시야를 거둔다는 데서 시작된다. 모두가 ‘분주함’이란 동일한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 너와 나의 구별을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성과가 필요하고, 이러한 가시적인 성과를 이끌어내려면 경쟁은 필연적으로 존재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이 제시하는 경쟁 논리는 강자의 논리인 동시에 통찰의 시력을 잃어버린 약자에게도 반드시 필수적인 논지다. 즉 경쟁 논리는 강자의 횡포로 어쩔 수 없이 약자가 받아들이는 논리가 아니라, 정체성이 무너진 약자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옹호할 논지로써 반드시 정립할 수 밖에 없는 이론이란 생각이 든다. 경쟁 논리는 강자가 생산하여 약자에게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와 약자는 산업 사회가 몰고 온 경쟁논리란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위치에 서 있을 뿐이고, 결국은 협력하여 경쟁논리를 재생산, 재확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교수님은 강자와의 동일시 논리를 대입하여, 도망칠 수도 없고 싸워봐야 결과도 뻔한 상황에에서는, 약자는  강자와의 동일시를 통해 안도감을 획득하므로, 자신의 내면의 외침과 다르게 경쟁 논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사회적 다원주의 의식이 뿌리내리게 된다고 설명하셨지만.  


언제나 백전백승할 수 있는 강자의 논리를 깨기 위하여는, 맞서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판을 바꿔야하는 것이고, 판을 바꾸기 위한 새로운 담론으로부터, 즉 삶의 본질 찾기에서부터 생태주의가 비롯된다고 이해했다. 그러나 경쟁 논리를 기준으로 강자와 약자를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점으로 구분하는 것은 생태주의가 필요한 까닭을 이해하도록 하는 방법론으로서는 쉬울지라도, 생태주의의 의의를 절감하는 결과가 아닐까, 약간 우려가 됐다. 강자와 약자 모두 가해자며, 동시에 피해자라는 관점을 가져야만 생태주의는 단순히 약자가 강자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내는 도피의 패러다임이 아니라, 경쟁 논리로 연합된 강자와 약자를 모두 살리는 부활의 대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강자여서 더디 옮겨갈 수 밖에 없지만, 약자가 먼저 뿌리내리고 연대하여 소통하면서 마침내는 강자까지 견인해오는, 모두의 승리가 있는, 지금으로서는 유일한 대안. 생태주의는 그렇게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전략을 새롭게 알게 됐다. 5D3C, 부정(deny), 지연(delay), 지배(dominate), 왜곡(distort), 사기(deceive), 부정부패(corruption), 감투씌우기(cooptation), 우호적 협력(cooperation). 뒤틀린 전략을 무력화하는 것도, 본질적인 해답은 ‘사람’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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