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신 1 - 김대중이 이희호에게, 편지로 새긴 사랑, 자유, 민주주의
김대중 지음 / 시대의창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더 이상 그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도록 하는 인생을 읽고, 한참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차가운 옥중에서 원망과 분노로 점철한 활자 대신, 감사와 용서, 그리고 배움의 즐거움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과연 누가 그 앞에서 힘겨움을 이유로, 괴로움을 까닭 삼아 인생을 저주할 수 있을까. 신앙과 신념으로 무장한 인생은 모든 역경과 고난을 재해석하고, 변화를 준비하는 시금석으로 삼았다. 민주화와 자유에의 신념, 가족과 민족에 대한 사랑,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바로 서는 그것만을 염두하면서 기다리고 기대한 세월, 행동하는 양심의 철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1. 민주화와 자유에의 신념

경제적 근대화가 이루어져도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지 못해 결국 군국주의와 독재로 나아간 독일과 일본의 역사를 통찰하는 시각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국민의 참여 없이는 역사의 주도권을 잡을 수 없으며, 인간의 평등과 자유를 소홀히 하는 철학의 빈약함과 잔인함을 실례를 들어 설명하는 내용을 읽고는 수십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특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니체의 인생, 사상을 비교 분석하여 설명한 부분은 한편의 연구논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2. 가족과 민족에 대한 사랑

일가 친척, 도움을 주신 각 계의 여러 분들, 그리고 우리 민족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 서신 곳곳에 여실히 드러난다. 개들의 안부까지 일일이 챙길 정도의 그 세심함에 놀랐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미묘한 갈등 관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비롯한 중동 문제, 미국과 일본과의 외교 등 세계 정치의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할 길과 자세를 제시하는 내용은, 나처럼 경험 없고 지식이 짧은 젊은이들이 어떤 사안을 대할 때 어떻게 통찰하고 어느 관점에서 접근해야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실례가 되는 것 같다.

3.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바로 서기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의 의미를 되짚으며, 하나님께서 도도히 흐르는 역사 속에서 인간에게 원하시는 참된 뜻은 무엇이겠는지 성찰하고 반추하게 한다. 신앙을 의지하여 고난의 시간을 축복의 시기로 바꾸었고, 배움과 통찰의 계기로 전환했다. 신념의 사람에서 신앙의 인간으로 거듭날 때,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의 소명은 더욱 뚜렷해지는 것 같다. 자신의 신념을 오롯이 역사에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그 분의 뜻을 분별하여 동참하는 인간으로서, 역사에 투신하는 소명자로서의 삶. 무엇이 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의 삶으로 변하면 모두 성공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사색의 편린이 가슴에 날선다. 개인의 구원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사회적 구원에 크리스챤들이 책임감을 가져야한다고 강조한다.

4.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피터 드러커 교수의 일화를 예로 들어 히틀러의 독주를 가능케 한 지식인의 침묵을 신랄하게 비판. 그저 출세하고 싶어서 나치를 맹목적으로 따랐던 기회주의 지식인이 있는가 하면, 히틀러와 함께 해야 나치를 바꿀 수 있다며 호기롭게 참여했지만 결국은 이용가치가 떨어지자 용도 폐기된 선의의 과대망상주의자들, 그리고 양심은 있지만, 악에 대해 침묵한 지식인들이 히틀러에게 힘을 주었다는 것. 에리히 프롬을 인용하여 주는 사랑의 삶이 되어야 하고, 자기보다 약한 자는 짓밟고 강한 자에게는 철저히 복종하는 권위주의형 인간이나 자신의 주체성이나 인격의 독립성을 포기하고 언론이 제공하는 대로만 세상을 해석하고,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며 결코 고립되지 않으려고 하는 자동인형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되며, 늘 비판의 견지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자세를 통해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함을 역설했다.  


5. 그리고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과 왕성한 독서가 인생의 격과 품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한 단면을 읽은 것 같다. 또 사람들을 어떻게 규합하고 어떤 방식으로 선전하며 어느 때에 행동해야하는지 책상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정치의 현장 학습 본보기들이 쏟아진다. 용서와 사랑이 결국은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하는 본질임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 용서를 통해 마음을 비운 사형수는 가슴에 꽃들을 품고 강아지의 안녕까지 염려하는 사랑을 싹틔웠다. 정치를 예술로 바꾸는 근본도 따지고 보면 나직한 사랑에서부터 출발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 명제를 그의 전 생애을 통해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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