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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염세적인 듯 하면서도 가끔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까탈스럽고 소심한 것 같지만, 일면 대범한 면도 있고, 유약한 목소리를 지녔지만, 대담한 눈매를 가졌으며 날카로우면서도 쫀쫀한, 그러므로 쉽게 공감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돌아설 수 없도록 만드는, 그런 사람과 그런 글..정말 간만에 제대로 만난 것 같다.
신앙에 대해서 냉소적인 것, 그리고 학부 때 법학을 듣지 않고 오로지 인문학에 매진해왔다는 투의 선비식 성결주의는 약간 눈에 거슬리지만.
콘찰로프스키의 대담을 읽고 한 방 먹은 기분이 들었다. <러시아인에게 자유란 무엇인가><왜 자유가 곧 전진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한번도 꿈꿔보지 못한 자유가 과연 진보일 수 있는가,는 지금껏 누군가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문제 제기. 사유와 자족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유,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될 수 있는가, 와 차르와 스탈린 서기장이 결국은 자리를 바꿨을 뿐,이라는 자조. 나로드의 자유와 인텔리겐치아, 부르주아의 자유가 다르다는 것. 저자도 한 수 배웠다고 했는데, 나는 한 수가 아니라 몇 수를 배웠다. 그의 지적은 문제가 꼬일 수록 두고 두고 생각해 볼 질의다.
김기덕의 영화는 제대로 본 것이 하나도 없는데, 글을 읽고 나니, 한 번 보고 싶어졌다. 또 지젝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심이 생겼다. 몇 개의 편린만으로는 그를 그려내기가 쉽지 않은 까닭.
그렇더라도 레닌을 다시 반복해야한다는 주장은 신선하다. 레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해보지 않는 그 사고 금지의 틀을 깨보는 레닌으로서의 레닌을 다시 반복하자는 제안.
번역 오역에 대한 신랄한 주장과 함께 등장한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 부분은 저자를 직접 만난다면, 천사가 안으면 바스러질 인간일지라도 그 분에게 안기면 살아날 수 있다는 귀뜸을 해주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 놀랍도록 명철한 저자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답게 분석하고 분해되어 명징하게 뇌리로 이해되지 않으면 쉽게용인하지 못하는 완고함이 느껴진다. 그 완고함이 저자에 대한존경과 감탄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더 깊고 넓은 사유 그 이상으로 나아갈 때 저항의 단도리가 될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해맑게 심연으로 첨벙 빠져들지 못하는 고수 중의 하수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여튼, 집요한 글 중 이해되지 않는 문장들은 번역의 오역보다 뛰어넘기에 힘들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내 옅은 스키마 때문이지만. 앞으로도 치열한 작업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