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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평점 :
보통 허세와 과장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기 쉬운데, 그 실속 없는 기세가 처연하게 느껴져 애달픔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마 누구나 주인공 윌리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일즈맨으로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해온 윌리는 직장의 외곽으로 밀려나 보험금도 제대로 납부하지 못하며 허탕을 치는 날이 많아지면서 점점 현실과 괴리되기 시작한다. 알래스카로 모험을 떠날 정도로 자립심이 강하셨던 아버지를 동경하는가 하면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지금은 죽은 형 벤과 대화를 하는 등 비현실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아내인 린다를 제외하고는 점차 두 아들, 친구, 직장 등에서 어긋나기 시작한다.
윌리의 자긍심이었던 큰 아들 비프가 미식축구 선수로 승승장구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낙제를 한 후 집에서 나가 멀리 떠나 있을 때도, 그는 큰 아들 비프가 어떻게든 잘 나가리라 생각했지만, 뾰족한 수 없이 빌빌대는 모습은 그의 화를 더욱 돋우는 기폭제가 된다.
아내인 린다는 휼륭하지도 않고, 큰 성공을 거둔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한 인간인 그를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뜨릴 수는 없다고 단언하면서 그에게 관심이 필요하다고 두 아들을 설득한다. 그녀는 두 아들에게 아버지의 비위를 맞출 것을 요청하고, 비프와 해피는 의기투합하여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겠다고 허황된 결심을 감행한다.
그리고 동시에 윌리는 자신이 직접 이름을 지어준 하워드 사장에게 찾아가 자리를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이 와중에 친구 찰리가 제공하려는 일자리는 자존심에 거절한다. 한편 아버지와 동생의 격려로 고양되어 옛 직장을 찾아가 투자금을 받으려했던 비프는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한 채 돌아온다. 세 부자의 화합과 정진을 위해 해피가 예약해둔 식당에서 그들의 회합은 결국 제대로 끝맺지 못한다.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비프는 낙제 점수를 받은 직후, 아버지가 계신 보스턴에 찾아갔다가 윌리의 불륜을 목격하게 되었고, 가출 후 오랫동안 집에 연락하지 못했던 이유가 가족에 대한 관심의 결여가 아니라 절도로 감옥에 갇혀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난다. 또 이들의 대화 속에서 윌리와 비프, 해피는 그동안 자신들의 위치와 삶을 부풀리고 존대스럽게 살아왔다는 사실이 은연중에 드러내게 된다.
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윌리는, 자신이 죽어 보험금만 받을 수 있다면, 친구 찰리의 잘나가는 아들 버나드보다 비프가 앞서갈 수 있다며 자동차로 질주한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윌리의 장례식은 평소 그가 누누히 말해왔던 사람들이 찾지 않아 휑뎅그렁하게 마칠 수 밖에 없었고, 린다는 이제야 주택할부금을 다 갚아 자유를 얻었는데 이제는 아무것도 없다면서 절규한다.
단순히 허장성세하는 한 가족의 비극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애잔함이 깊은 잔상으로 남는 이유는, 객기와 허세를 내세워서라도 버텨야 하는 생의 날카로움을 우리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질고 냉정한 삶의 바탕 속에서 언제든 쉽게 바스러질 수 있는 현대인이 선택할 수 있는 버팀목이 얼마나 있던가, 되짚어 헤아릴수록 의미심장하다.
그럼 찰리 아저씨를 너의 아버지로 삼으렴. 그렇게 할 수 있니? 있냐고! 아버지가 훌륭한 분이라고는 하지 않겠다.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그렇지만 그이는 한 인간이야. 그리고 무언가 무서운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있어. 그러니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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