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꾼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재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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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삶의 본질을 한 마디로 축약하고, 다시 그 의미를 품어 상징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그런 작품을 쓸 수 있다면 어쩌면 소설가는 몽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막된 생각은 여느 때처럼 멱차올랐다. 


책의 말미에 실린 작품 해설에서는 위대한 작가의 구상에 대해 세세히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작품을  27일만에 완료했지만, 실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3년 전부터 구상했다는 것이다. 내 시선을 끈 것은 당연히 도스토예프스키가 직접 스뜨라호프에게 이 작품의 구상에 대한 설명한 대목이었다. 


그는 이 소설이 <죽음의 집의 기록>과 대비되는 작품이 되기를 희구하면서, 일종의 지옥을 묘사하는 장치로 도박을 선택한다. 그러면서 많이 발전했지만 모든 점에서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인간, 믿음을 잃었으면서도 감히 믿음을 저버리지 못하는 인간, 권위에 항거하여 일어나면서도 권위를 두려워하는 인간을 그리겠다고 호언 장담한다. 이를 위해 주인공은 겉은 노름꾼이지만, 실상은 모험에 대한 요구가 자신을 고결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시가 천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시인을 그려낼 것이라고 담대한 계획을 전한다. 러시아와 러시아를 둘러싼 유럽의 관계, 러시아가 나아갈 길에 대한 예표와 관련된 포부도 밝히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술한 부분에 끌릴 수 밖에 없었다. 


룰레텐부르크의 몰락한 장군 고랸스끼는 모스크바에 사는 할머니의 유산 상속만을 기다린다. 그의 목적은 프랑스인 후작 드 그리외에게 빌린 돈을 갚고 자신의 애인 블랑슈와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이다. 고랸스끼 장군 가의 가정교사인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자존심 강한 청년으로 고랸스끼 장군의 양녀 뽈리나에게 끌린다. 그녀는 프랑스인  드 그리외뿐만 아니라 영국인 미스터 에이슬리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그 누구도 그녀의 마음과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다. 그녀를 결코 차지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면서도 그녀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접을 수 없기에 오히려 미워하는 마음까지 드는 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도박에서 돈을 따달라는 뽈리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또 그녀는 그저 웃고 싶다면서 독일의 명망가인 남작 부부를 능멸하도록 그를 부추기고, 그는 어리석은 짓임을 알면서도 충동에 휩싸여 실행하면서 곧 해고의 위기에 놓인다. 


이 때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식을 뒤엎고 룰레텐부르크에 직접 나타나 고랸스끼 일가에 충격을 안긴다. 그녀는 알레세이 이바노비치를 마음에 들어하면서 그와 함께 도박판에 뛰어들어 순식간에 돈을 따는가 싶더니 곱다시 잃어버리고는 모스크바로 돌아간다. 


할머니의 소동과 퇴각으로 유산 상속의 꿈이 깨져버린 고랸스끼의 추락 속에서 뽈리나는 다시 알렉세이에게 도박에서 돈을 따서 가져오면 그의 사랑을 받아줄 것처럼 그를 들쑤시지만, 정작 그가 돈을 가져오자 돈을 버리고 미스터 에이슬리와 함께 떠난다. 그녀가 떠나고 알레세이는 고랸스끼와 소원해진 블랑슈와 파리를 전전하며 도박으로 모든 것을 탕진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는 블랑슈와의 관계도 끝을 내게 되고, 그녀는 할머니의 사망 후 장군과 다시 결합한다. 


이후 알렉세이는 파리를 떠나 여러 도시를 돌면서  몇몇의 비서를 하지만, 결코 도박을 멈추지 않는다. 빚을 져 감옥에 들어간 적도 있었지만, 누군가 보석금을 내주어 풀려날 정도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미스터 에이슬리를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뽈리나가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은 알렉세이라는 말을 전해 듣게 된다. 그리고 에이슬리의 보호 아래 뽈리나가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이슬리는 이제는 도박을 그만두라고, 돈이 필요하면 돈을 주겠다면서 지금 상태로는 얼마를 주든 다시 도박을 할 것이라면서 10 루이도어를 주고 떠나간다. 


에이슬리와 헤어진 알렉세이는 뽈리나와 에이슬리에게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다짐하지만, 이내 주머니를 뒤지다가 1굴덴을 찾고는 다시 도박장으로 향하고,  백 70굴덴을 따고 나오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작가는 처음 구상의 계획대로 노름판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도박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상황을 정확하게 그려낸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극적으로 과장되고 흥분되어 있는 군상들의 행동과 생각을 통해 삶을 도박판으로 바꾸어가면서 알게 모르게 한탕을 노리는 인간의 본질을 통렬히 드러낸다. 소설에서는 자신의 목표를 따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이 배태하는 모든 관계, 재능, 심지어는 사랑까지도 왜곡되어 있다. 그의 단언대로 모든 것에서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인간은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는 죄수로,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노름꾼으로 그려지고 있다. 

프랑스인, 그러니까 파리 사람들의 민족적 형식은 아직 우리가 곰처럼 미련했을 때에 이미 우아한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혁명이 귀족 정신을 계승했고 그래서 이제는 아주 저속한 프랑스인들까지도 매너와 태도와 표현들 그리고 생각에 아주 우아한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러한 형식에 관여하는 데에는 아무런 창의력도 없고 또 정신이나 마음도 없습니다...중략..영국인들이란 대부분 모가 나고 우아하지 못합니다만, 러시아인들은 아름다움을 꽤 민감하게 구별할 줄 알고 또 그것을 갈망하지요. 하지만 영혼의 아름다움과 개성의 독창성을 구별해내기 위해서 우리 러시아 여성들은, 아가씨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독립심과 자유를 가져야 하고 또 어떠한 경우에도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중략..맞습니다! 고결한 나의 벗이여, 제가 늘어놓는 이 모든 비난들이 비록 고리타분하고 저속하고 또 통속적인 익살극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진실입니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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