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화가들 -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아주 특별한 미술 수업
정우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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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주는 가장 큰 기쁨은 색조, 화풍, 의미, 가치 등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아닐까 싶다. 물론 학문적으로 정립된 이론과 지식 체계가 있지만, 그런 이해가 없더라도 직관적으로 보는 즉시 전달되는 느낌과 감성은 오롯이 작가와 작품, 그리고 보는 나 사이에 만들어진 독립된 삼각 구도를 이루면서 안달복달하는 현실에서 깔끔하게 분리시킨다. 


여기서는 화가의 삶과 작품을 함께 소개하면서 작품에 대한 감상을 더욱 풍성하게 이끌어준다. 저자는 사랑을 추구한 화가들, 자존을 위해 모든 시련을 감수한 화가들, 세상의 냉대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화가들 등 세 가지 주제의 분류를 표방하면서 각각을 대표하는 화가들을 뽑아 도열한다. 


기존에 미술 수업 등을 통해 익숙한 화가도 있고, 그림을 본 적은 있지만 작자를 잘 몰랐던 경우, 그리고 작품도, 화가도 처음 접해 생소한 경우가 균형 있게 배치되어 적당한 친숙함과 인식적 호기심을 독서 끝까지 누릴 수 있어 즐겁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알폰스 무하는 단정하면서도 화려한 화풍 때문에 눈길을 끌었다. 곡선, 여성, 꽃 등을 중요하게 여겼던 아르누보 작가였던 무하는 가난한 사람들도 즐길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신념으로 포스터를 그려 길거리 자체를 전시장으로 삼았다는 데서 흥미로웠다. 광고 포스터 뿐만 아니라 성당의 그림까지 섭렵했으면서도 50대에 부와 명성을 넘어 서서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슬라브 서사시 연작은 작은 지면으로 보아도 웅장한 느낌이 들었다. 나치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장에 10만명의 슬라브인들이 모였다고 하니 체코의 별이 아닐 수 없다. 


툴루즈 로트레크는 종종 다른 곳에서도 단편적인 삽화와 작품을 보기는 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온전히 그의 일생과 작품의 배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귀족 출신이지만 장애를 갖게 되면서 아버지의 외면 속에서 오히려 천재성을 발견한 그의 미술 입문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다는 생각을 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간파하고 단순화하면서도 현실을 미화하지 않으면서 하층민의 일상을 담았기에 더욱 매력적이랄까. 


에곤 실레는 TV 프로그램에서 그의 작업이 이루어졌던 마을을 다루었던 적이 있어서 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민망할 정도로 솔직하고 담대한 시선, 고집스럽고 까다로워 보이는 터치와 색감은 볼품없고 흉측해보이지만, 자유로우면서도 도발적이다. 갈등과 추문의 문제적 화가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은 오히려 그의 인식 세계 속에서 다양성의 천착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투쟁의 기록을 미술의 주제로 삼은 케테 콜비츠나 메말라 비틀어지는 베르나르 뷔페의 표현 기법도 흥미로웠다.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면서 작가와 작품의 특징을 읽다보면 굵직한 전시회 몇 개는 다녀온 기분이 들 정도로 몰입도가 높다. 

그림은 화가의 언어입니다. 화가가 살면서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에 따라 그의 언어는 달라집니다. 그래서 같은 장면을 보고 그려도 화가마다 다른 그림을 완성하지요. 자신의 생각과 말과 경험을 포함해, 일일이 표현하지 못했던 모든 것을 그림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화가입니다. 그들의 인생을 따라가는 것은 어쩌면 그 화가의 언어를 배우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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