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와 사랑 일신서적 세계명작100선 13
H.헤세 지음 / 일신서적 / 198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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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가 이 작품을 발표하고 20년 후에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인간상으로 새로운 창작에 착수할 생각이었으나 자신의 장편은 대부분 지와 사랑에서 제기된 문제와 인간상을 변형시켜 되풀이한 작품'이었다고 회고했다는 대목을 읽자, 독서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인간 삶의 궁극적인 지향점에 영원한 진리에 대한 탐구와 사랑을 두고, 그것을 찾아가는 방법론에 몰두하면서 대조적인 두 인물을 창조해낸다. 


부단한 수련과 지적인 사색을 통해 진리를 인식하는 방법과 욕망을 바탕으로 경험 및 감각으로 부딪히며 진리와 맞닿는 여정을 교차시키면서, 결국에는 이 두 가지 방법론이 목표를 성취하는 데 있어서 서로를 보완하는 동시에 각자 정당하며 옳은 과정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지"를 대표하는 나르치스는 흠잡을 수 없는 태도를 지닌 데다 조용하며 뛰어난 학습 능력을 구사하는 신동으로, 수도원에서 교사의 역할까지 감당할 정도로 학자의 천재성을 발휘하는 인물이다. 그의 명징한 논리와 체계적 인식은 그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어내므로 쉽게 다가가기 힘들 정도. 감성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처럼 냉철한 그는 어느 날 수도원에 들어온 골드문트를 남다르게 여기며 그를 각성시킨다. 


골드문트는 '사랑'을 드러내는 인물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수도원에 들어온다. 그는 나르치스의 겸비함과 절제력, 지적 성취를 우러르며 그를 닮고자 하지만, 점점 요원해지고 오히려 작은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고, 어머니를 희구하며 수도원을 나와 방랑길을 떠난다. 


골드문트는 좀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수 많은 여인들과 사랑을 나누고, 금화를 지키려다 잠시 함께 했던 빅토르를 우발적으로 죽이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고해성사를 하려고 어느 수도원에 들렀다가 성모 마리아상을 보고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영혼의 아름다움과 생기를 느낀다. 그는 신부에게 소개를 받아 마리아상을 만든 니콜라우스를 찾아가 스승으로 모시며 조각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는 나르치스를 생각하며 사도 요한 상을 조각하지만, 완벽한 기술로 완전한 미를 창조하기 위해 자신의 자유와 경험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지 회의하면서 스승을 떠난다. 


이후 페스트가 휩쓴 마을들을 지나면서 또 다시 사랑과 방랑의 길을 헤맨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교회 옆을 지나다가 천사, 사도, 순교자 등의 경건한 석상을 보면서 가슴 속에 외경심, 헛되이 낭비한 지난 시간에 대한 공포심에 휩싸이게 된다. 아무도 없는 교회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간음하며 도적질한 자신의 삶을 고백하면서 왜 인간을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느냐며 이제는 신을 알 수 없다고 자조한다. 그리고 일체의 어떤 답변도 없는 그 자리에서 무너진 인간의 세계와 상관 없이 품위와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초연히 서 있는 석상들에게서 무한한 위로를 느끼게 된다. 또 자신이 사랑한 여인들과 스승도, 비록 그 이름과 생애가 알려지지 않더라도 그 석상과 함께 서 있기를 희망하다가, 언젠가 그 석상과 함께 무언의 상징으로 조용히 함께 서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골드문트는 스승의 도시를 찾아가 스케치로 연명하지만, 이내 다시 새로운 방랑을 시작한다. 이후 백작의 아내 아그네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백작에게 들켜 사형에 처할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는 죽기 전 미사를 위해 찾아올 신부를 죽여서라도 어떻게든 생명을 지켜야겠다고 다짐하는데, 뜻밖에도 수도원장이 된 나르치스가 나타난다.


나르치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골드문트는 함께 수도원으로 가게 되고,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의 배려 덕분에 수도원의 작품의 조각한다. 이 과정에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대화를 통해 지와 사랑의 세계에 대해 표현하고 교류한다. 


나르치스는 사색은 형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개념과 공식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형상이 끝나는 곳에서 철학은 시작되지만, 곧 인간의 불완전성을 깨닫게 된다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존재란 부분적이며 완전한 존재는 신뿐으로, 인간은 무상하며 변화 과정에 있고,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힘에서 행위로 나아가며, 가능성에서 실현을 향해 나아갈 때에만 완전한 신성을 닮아간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곧 자아실현으로, 예술가는 인간의 우연적인 요소를 해방시켜 순수한 형체의 인간상을 만들어낼 수 있고, 순수한 사색 역시 수학처럼 어떤 심상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사고를 통해 문제를 풀어내듯 관찰하고 추정하는 가치를 끊임없이 응용하면서 완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도원의 작품을 완성하고 잠깐의 여행을 다녀온 골드문트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나르치스는 우리에게 평화는 없으며 매일 부단한 싸움으로 쟁취하여 새롭게 해야 하는 평화가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골드문트는 죽어가면서 어머니가 자신을 유혹하고 가슴에서 심장을 끄집어낸다며 자신은 형상을 만들었으므로 기꺼이 죽어야 하며 어머니 없이 어떻게 사랑할 수 있으며 죽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나르치스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골드문트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한 헤세는 속세에 있는 우리 삶의 객기와 방랑을 옹호하면서 그것이 영원성과 결합할 때 진실한 도약이 있으며, 때로는 세속에서 벗어나 순수한 지적인 세계를 동경하지만, 그것 역시 불완전하여 사랑이나 신비와 접목될 때 완전성을 획득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통해 이성과 감성의 두 양면을 가진 인간의 특성과 그 나아갈 바를 읽어가는 즐거움이 크다. 

어쨌든 간에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보여 주었다. 즉 고귀한 곳에 예정된 인간은, 분방한 생활의 혼란 속에 아득한 정신으로 빠져들어 육체에 먼지와 죄가 깃든다해도, 비겁함과 뒤엉키지는 않을 것이요, 심중에 신성을 멸치 않을 거요, 심연의 흑암 속에서 길 잃어 방황해도 그의 영혼의 깊은 곳에서는 신성한 광명과 창조성이 단연코 빛을 발한다는 것을 깨우쳐 준 것이었다.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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