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필리프 들레름 지음, 고봉만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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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의견대로 영성이 희미해질 때, 삶에서 자극을 추구하고 보다 화려하고 돋보이는 모습을 뒤쫒는다는 것은 어쩌면 진실일런지 모르겠다. 


드라마틱한 승리, 감동, 희열, 도취, 거대한 슬픔, 절망, 좌절, 낙망 등은, 한데 뒤엉켜 삶을 박제하고 관념화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굴곡진 파도를 타듯 열정과 냉정으로 치닫는 그 간극의 짜릿함은, 마치 중독의 과정처럼 요란해, 주목받는 자기 삶의 특별함을 갈망하게 하고 더욱 극적인 스토리에 몰입하도록 강제한다. 그러므로 밋밋한데다가 때로는 한심해보이기까지는 평범한 일상을 돌아보고 거기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것은 경솔하며 무가치한 일로 치부해도 상관이 없을 정도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잠잠하게 묘사하는 활자를 쫓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편해진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작은 삽화들을 곱씹고 관찰해서 생각의 줄거리를 수도 없이 뽑아내는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호주머니 속 작은 칼>이었다. 저자의 표현대로 오직 자신만이 오롯이 알고 느끼는 완전한 기쁨은 이제 생소해졌다.  딱히 쓸모없는 칼을 만지작 거리면서 칼과 결부된 상징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지적 허영을 부리면서 만족하는 그 기쁨,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동작과 은근한 만족을 만끽하는 그 속에서, 노인이면서 동시에 소년이 된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천국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어린 아이이자 소년이면서, 동시에 청년이자 노인이 될 수 있는 인격적 존재를 상상하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한 눈에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가 누구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식되는 물질적 존재로서 인식하는데, 어떻게 시간과 무관하게 본질로서 마주하는 그 인격적 실체를 알아볼 수 있었겠나 싶었다. 


분주하고 조급해져 위대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일 때, 소박한 일상의 이면을 드러내어 부드럽지만 명확한 일침을 주는 책. 

사람들은 일반 자전거로 태어나거나 사이클 자전거로 태어난다. 정치적 성향과 거의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이클 자전거로 태어난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사랑을 하려면 자기 상속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일반 자전거에서만 사랑에 빠지기 때문이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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