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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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가 화두가 되면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언택트, 블렌디드, 인공지능, 디지털 변환 등이 아니었을까 싶다. 감염병이 가져온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은 격리와 고립을 강제할 수 있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들이 우리를 다시 연결시켜줄 것이란 기대와 희망이 온 세상을 점유한 듯 했다. 


그런데, 인간이 정말 연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런 장애 없이 화려한 기술을 유려하게 활용하여 언제든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그것만이 전부일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고, 돈으로 환산되어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은 점점 하락하는 것만 같은데, 여기에서 밀려나고 소외되어 처음부터 변혁의 연대 멤버로 상상조차 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질문을 다시 해야 한다. 승자독식으로 점철된 기술과 자본이 지배하는 미래 사회에서, 연대의 의미는 무엇이고, 또  어떻게 해야할까. 많은 것을 함께 보고, 듣고, 공유하므로 연대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말 맞는 말일까. 연대는 왜, 꼭 필요한가.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오히려 질문이 더 쏟아졌던 것 같다.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한 편이다. 교사로 퇴직한 임여사는, 남동생의 조언을 듣고 남편의 유산으로 편의점을 차린다. 교사 연금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그녀는 편의점 직원들의 생계가 걸린 일이라는 생각에, 매출이 아니라 버티는 격으로 편의점을 운영한다. 


어느 날 임여사는 서울역에서 지갑을 잃어버리게 되고, 독고씨라는 노숙자가 지갑을 찾아주면서 인연을 맺게 된다. 편의점에 일하게 된 독고씨는 편의점 직원 시현, 선숙, 오여사의 아들, 경만씨, 인경씨, 임여사의 아들 민식씨 등 편의점을 둘러싼 사람들과 티격태격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낸다. 


독고씨는 폐기 상품을 불쑥 꺼내 나누는가 하면, 편의점 식품의 비밀 조합을 알려주는 등 소소하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데면데면하던 이들의 관계를 복원시키고, 소통하게 하며, 다시 힘을 북돋아준다. 청파동 낡은 편의점은 독고씨로 인해 다시 일으키고 세워주는, 일종의 전초 기지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후 독고씨는 자신의 기억을 되찾고, 코로나가 극성인 대구에 의료진으로 자원한다. 


일부 삽화는 어떤 전형적인 모습이 드러나 약간 작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소설의 주제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다. 


임여사는 직원 생계를 걱정하며 사명감으로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작은 호의로 독고씨를 편의점으로 불러들인다. 독고씨는 별다른 재주가 있어 사람들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게 아니라 우직하고 성실하게 편의점 업무를 담당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관심을 갖고 챙겨준다. 그러면서 독고씨는 점차 자신의 기억을 되찾고, 자신의 과거를 바로잡으며,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간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돌아보며, 내가 할 수 있는만큼만 챙겨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뜨거운 연대는 가능하며, 거대한 기계처럼 몰려오는 시련 앞에서 생의 무기력을 넘어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고, 마침내 그것이 되먹임되어 다시 나를 살리는 근간이 된다는 사실, 어쩌면 너무 기본적인 해답이라서 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포스트 코로나와 함께 앞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어야 할 단어들은 연대, 인간, 성찰..이런 말들이어야하지 않을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살기로 했다. 죄스러움을 지니고 있기로 했다. 도울 것을 돕고 나눌 것을 나누고 내 몫의 욕심을 가지지 않겠다. 나만 살리려던 기술로 남을 살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사죄하기 위해 가족을 찾을 것이다. 만나길 원하지 않는다면 사죄의 마음을 다지며 돌아설 것이다. 삶이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겨우 살아가야겠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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