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포스트 코로나 사회 - 팬데믹의 경험과 달라진 세계
김수련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5월
평점 :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엄청난 일을 겪은 후, 조금이라도 그 실체를 파악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중요한 방법론은, 아마도 어떻게든 자신의 경험과 관점을 투영해 되살려내고 어떻게든 기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쓰나미처럼 몰려온 코로나는 삶의 양태를 삽시간에 바꾸었고, 미처 생각하지 못한 틈을 비집어 어떻게든 적응하도록 종용했다. 대유행의 파고를 몇 차례나 흩뿌리고도 여전히 종식되지 않은 코로나.
앞으로도 수차례 되풀이 될 감염병 팬데믹은 이제 생생한 현실이 되었고, 수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코로나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대비해야할까.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각자 자신이 경험하고 마주한 코로나를 토로함으로써, 그 조각들을 이어 거대한 얼개를 그려나가도록 구성된 점이다.
간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칼럼니스트, 교수, 활동가 등이 설명하는 코로나는, 그 현장성 때문에 훨씬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쏟아지는 환자, 부족한 병실과 의료 인력, 버티기로 감당한 업무 과부하는, 의료인들이 어떻게 노동을 갈아넣어 보건의료 시스템의 취약성을 메웠는지 처절하게 기록하고 있다.
거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득세가 가져온 각자도생의 필살기 현상도 분석하고 있다. 코로나에 대한 과민한 불안과 공포는, 코로나의 불활식성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서 더 큰 사회적, 경제적 조건과 더 맞닿아 있다는 것. 감염이 되는 순간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개인의 책무는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더욱 두드러진다는 설명이다. 경력, 연금, 가정 생활에 예상하지 못한 타격을 받을 때는 각자 잘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신자유의적 기제와 요건은, 불안 체제를 증폭하고 개인화를 더더욱 내면화시키는 한편, 감염병이라는 공공의 문제를 민간으로 외주화하여 대응함으로써 집단 복지의 연대성을 더더욱 약화시킨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개인화와 민간화 속에서, 감염병의 특성상 공공재의 축적이 필요한데도, 잘못된 정치화로 인해 뉴노멀이 오히려 불평등, 부정의를 정상화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점.
코로나 감염자의 측면에서는 정신질환자, 요양병원의 노인 환자, 성소수자 등이 그 취약성으로 인해 감염병 확산이 더 용이했다는 점과 생산이나 유통, 서비스 등 핵심 분야의 노동자는 감염을 감수하더라도 초과 노동을 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즉, 이들에게는 사회적 거리가 거의 포기 내지는 방치 수준이었다는 것. 또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감시 체계가 인권 침해라는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진 점도 성찰의 주제로 제시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기독교 입장에서 종교인의 자세를 짚어본 대목도 인상 깊다. 모두가 셧다운이 되어 격리되고 고립될 때 교회가 새로운 생존 공동체의 모델이 되어야한다는 것. 소외되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자발적인 소유를 나눌 수 있는, 사회적 거리를 영적 거리로 극복하려는 노력에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또 코로나로 인한 격리에 있어서 돌봄 노동이 주로 여성에게 전가된 점이나 공적 영역의 시간 안에 돌봄의 시간을 자리매김하는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도 눈길을 끈다.
기후변화와 감염병의 영향, 감염병과 역사의 전환, 일본의 코로나 대응 등 각각의 주제가 흥미롭다.
다만, 독자로서의 욕심은 학교-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회사-대기업이나 중소기업, 또는 회사 분야별-, 자영업, 보건소, 동네 병원 등의 코로나 상황은 어떠했는지 후속격인 토로의 장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염병의 사회적인 특성을 고려한다면, 더 다양한 사회, 더 세분화되고 가려진 사회, 그 안에서 경험한 코로나의 또 다른 모습은, 추가될 수록 더 큰 통찰을 제공할테니까.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감염병을 둘러싼 사건은 생물학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발현한 종합이며 총체물이다. 대부분 생물학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감염병 전파와 유행도 사회적인 것과의 상호작용이거나 두 가지 속성의 통합물이라 해야한다. - P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