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을 보내면서 묵상집으로 추천을 받아 읽었는데, 읽으면서 한참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린 주님의 사랑은 값을 매길 수 없이 위대한데, 그에 대한 내 삶의 응답은 얼마나 미미하고 부끄러운지. 예수님만 묵상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을 것 같다. 


고흐를 통해 주님을 바라보니 작은 예수의 삶을 살면서 치열했던 화가의 생 앞에 다시 숙연해질 수 밖에 없다. 광기에 사로잡혀 예술혼을 불태웠다는 피상적인 그간의 인식이야말로 내 일천한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식. 주님으로부터 동일한 사랑을 받았는데, 그의 깨달음은 곁길로 새는 법 없이, 올곧이 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눈으로 보고, 주님이 사랑하신 것들을 쫒고, 주님께 받은 재능으로 그의 영광을 화폭에 담고자 했던 그의 모든 몸짓은, 짧은 생 동안 날것 그대로의 기도며 묵상이며 신앙이 되었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사랑으로 행한 일은 어떤 것이든 훌륭하다, 고 단언하면서 사랑 안에 진정한 힘이 들어 있다고 되내인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다시금 사랑하도록 강한 충동을 주는, 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감지하는 일이라고도 들려준다. 그림 한 장을 그리기 위해 스스로 살아 있는 한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다짐하는가 하면 하나님은 고통과 슬픔을 보시며 그의 능력이 우리 삶을 견디게 하신다고 단언한다. 우리의 본성이 슬픔으로 가득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거듭남이 계속되며 줄곧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아감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텅 빈 캔버스와 마찬가지로 삶 자체도 무한히 비어 있는 공백이지만, 확신과 힘과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은 진리를 알고 있어 현혹된 곁길로 가지 않으며 삶 속으로 진입하고 행동하며 삶을 든든히 세운다고 전한다. 


그의 그림과 글은 하나님과 사랑, 믿음에 대한 여정이자 도구가 된다. 그는 하나님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낮게, 겸손하게 살아가면서, 하늘에 오르려고 할 것이 아니라 복음서가 가르쳐 주는 대로 가난한 심령으로 낮은 땅에 처할 것을 뜻하셨다고 깨달으면서, 우리 인생은 천로역정이므로 많은 싸움을 싸우고 많은 고난을 겪으며 많은 기도를 드린 뒤 그 끝은 평안이리라고 이야기한다. 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으로, 사랑하고 고상하고 진지하게 친밀함과 동정심을 가지고 힘을 다하고 모든 지성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꿈은, 오염되고 뒤틀린 좌표의 지축을 흔든다..나는 그림으로 무엇인가 위로하는 말을 하고 싶다. 무엇인가 영원한 것을 보여주는 남녀를 그리고 싶다. 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그림을 그리고 싶다. 사람들이 내 작품에 대하여 그는 철저하게 깊이 느끼고 있구나, 민감 다정하게 느끼고 있구나 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진척 숙달되고 싶다..보잘것 없고 이름 없는 사람의 가슴 속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다..볼 눈과 들을 귀와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나 자연 또는 하나님을 파악할 수 있다. 나느 화가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보는 것을 표현할 수 있게 되자마자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40일 동안 하루 하나씩 그림과 글, 그리고 저자인 최종수 목사님의 묵상을 읽도록 구성되어 있는데, 결코 가볍지 않다. 주님의 사랑과 구원으로 받은 삶, 나는 무엇을 향하여 치열해져 있는가, 무엇으로 고민하고 있는가, 다시 부끄러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영원한 것을 보는 눈이 복되다. 모든 피조물의 신음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가 행복하다. 만물과 조화를 이루어 하나로 어울리는 가운데, 듣는 소리, 보는 것을 전달해주는 거룩한 사명, 이러한 할 일을 찾은 사람은 복되다. 만물 공유의 길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은 역사의 부름을 듣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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