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요시노 겐자부로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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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을 기다리다, 원작부터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는데, 한숨에 다 읽을 수밖에 없었다. 외면은 청소년을 위한 소설을 표방하지만, 군국주의 시대를 살면서 온갖 이념의 횡횡 속에서도, 어떻게 하면 바른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 수 있을 것인지 고민했던 일본 지식인들의 치열함에 순식간에 전염된 탓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거장의 생애에서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데, 왜 이 책을 선택했을까, 호기심은 책장의 마지막을 덮는 순간 깊은 수긍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혼다 준이치는 코페르라는 별명을 가진 중학교 2학년 소년.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도쿄 외곽에 사는데, 법학을 전공한 외삼촌과 교류하며 소소한 일상의 삽화들 속에서 인생의 가치와 삶의 원리를 배워나간다. 반향을 불러 일으킬만한 대단한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저자는 작은 사건들 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 설정,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윤리,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 들을 실타래처럼 뽑아낸다. 


준이치는 외삼촌과 함께  빌딩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분자로서의 인간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외삼촌은 이를 두고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옮겨가는 단초를 제공한 코페르니쿠스에 빗대어, 준이치에게 코페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성장하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도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면서. 


반에서 바보 취급을 당하는 우라가와와, 비열한 야마구치 패거리들에 맞서 싸우는 기타미의 일화 속에서 준이치는 외삼촌으로부터 자신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생각과 진심이 중요하며, 자신에게 떳떳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배운다. 


외삼촌으로부터 뉴턴의 사과와 만유인력의 법칙을 전해 들은 준이치는, 분유에 대해 생각하면서 '인간 분자의 관계, 그물코의 법칙'의 발견에 대해 외삼촌에게 설명하고, 외삼촌은 사회학과 경제학을 예로 들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학문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갈 필요성 등을 이야기하면서도 현대 사회 속에서 인간의 관계는 일견 분자화에만 머물러 있지만, 사람다운 관계를 맺어야한다고 강조한다. 


학교를 결석하고 두부 가게를 하는 자신의 집에서 유부를 만드는 데 한창인 우라가와를 만나고 돌아온 날, 외삼촌은 준이치에게 가난에 대해 설명하면서 환경에 상관 없이 자신의 가치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 그리고, 문명의 발전 속에서도 여전히 가난이 사라지고 있지 않다는 점, 그러므로 아무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의 행운을 겸손히 고맙게 여겨 정진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놀랍게도 우라가와는 사회를 위하여 무언가 생산하고 있지만, 준이치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실제 소요되는 생산과 소비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점을 대비하면서도, 준이치에게 물건의 생산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그 답을 스스로 찾아낼 것을 주문한다. 


외삼촌은 나폴레옹과 프랑스 혁명을 통해서 영웅이든 위인이든 존경받는 이들은 인류가 진보하는 데 도움이 된 사람들뿐이라는 것도 기억하도록 강조한다. 


한편 준이치는, 구로카와 패거리들에게 기타미가 당할 때 우라가와나 미즈타니처럼 함께 나서지 못하는데, 자신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비겁한 행동 탓에 자책감에 괴로워하고 때마침 감기에 걸려 결석하게 된다. 친구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함께 하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던 준이치는 외삼촌에서 사정을 털어놓게 되고, 외삼촌은 사람만이 올바른 이성의 목소리를 듣고 목소리가 말하는 대로 행동할 힘이 있기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아픔을 받아들일 수 있다며 다독인다. 우리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고, 그러므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친구들에게 사과 편지를 쓰고 관계가 개선된 준이치는 수선화를 옮겨 심다가 성장하고 싶다는 본능으로 자라나는 풀과 나무에게 감명을 받고, 그리스인이 만든 불상의 스토리를 들으며 일본까지 흘러든 세계 문명의 전이에 전율한다. 그리고 당장 무언가를 생산할 수는 없어도 좋은 사람이 되겠다면서 외삼촌처럼 노트에 느끼고 생각한 바를 적겠다고 다짐한다. 


이 책의 압권은 아무래도 맨 마지막 부분, 저자의 <이 책이 나오기까지>가 아닐까 싶다. 군국주의가 확산되고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제약을 받으면서 자유주의를 지향한 지성인들은 미래의 청소년이 희망이라면서 '일본 소국민 문고 16권'을 기획했고, 이 책은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고는 출판이 금지되었다가 전쟁 후에야 다시 출판이 가능했다고 한다. 


인류는 진보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보다 풍요롭고 평화로운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일념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에 주목했던 지식인들의 혜안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인으로서, 아니 시대를 앞서간 거장으로서 마지막 작품으로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저자와 동일하게 느낀 절박한 마음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코페르, 현실이 이렇더라도 사람은 언제나 사람다워야 한단다. 사람들이 사람다운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살아가는 건 아쉬운 일이야. 너와 상관없는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당연히 분자와 분자가 교류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따뜻하게 만나야 한단다. 지금 당장 네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야. 단지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 내가 하는 말을 잊지 않고 기억해 주기를 바랄 뿐이란다. 사실 이 문제는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해 오면서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란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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