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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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성, 효율성으로 무장한 세계화의 광풍이 휘몰아친 후에도 여전히 그 위세를 드높이는 가운데, 트럼프의 등장은 적잖이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 같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샌델 교수가 '능력주의와 공정성'에 의구심을 품고 트럼프의 등장을 불러온, 미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흔든는 사회적 기제를 쫓아 분석했다. 이는 현재 미국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틀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지점도 다시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공정'에만 집중하는 의제의 위험성도 경고한다. 


그는 미국에서 능력주의의 이상이 실현되어 '아메리칸 드림'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믿음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능력주의는 과연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며, 능력주의의 결과는 정말 정의로운 것인지 되물으며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역사와 정치, 사회적 맥락에서 되짚어낸다. 


대학 입시 부정에서 드러난 능력주의의 배경을 탐구하면서 우리가 마주한 능력주의의 신화는 그 역사가 짧다고 단언한다. 출신이나 배경을 통해 대학에 입학하는 관행을 타파하기 위핸 수단으로 등장한 '능력주의'는 '학력주의로 이어지고, 대학이 높은 사회적 지위로 나아갈 이들을 골라내는 '인재 선별기'의 역할을 하는 동안 대다수의 미국인이 자신이 하는 일의 존엄성에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는 데 주목한다. 특히 대학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것으로 일종의 자격을 얻은 것처럼 공고화되고 있는 편협한 경로의 문제점은 논외로 치고, 학사 자격이 없으므로 낮은 임금을 받아도 당연하며, 삶의 질을 충분히 누리지 못해도 정의로운 것으로 여기도록 하는 데 풀무질하는 정치인들의 무책임을 폭로한다. 


또한 샌델 교수는 재능은 오로지 자신의 것이 아니고 단지 운 좋게 물려받은 것일 뿐이며 그 재능이 꽃 피울만한 사회적 맥락 속에 운 좋게 놓인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능력주의는 간과하게 한다는 점도 부각시킨다. 능력주의는 무한한 경쟁을 창출하여 승자와 패자를 나누고, 승자에게는 오만함을, 패자에게는 죄책감과 모멸감을 안기는 한편 '승리'가 온전히 자신의 노력과 재능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착각에 빠지게 함으로써 민주주의 근간인 '연대성'과 '존중'을 여지 없이 훼파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더구나 능력주의가 팽만하면서 서열주의에 천착하게 되고, 거기에 일의 존엄성과 가치가 물질적 보상으로 이어지면서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있다는 점을 덧붙인다. 


그는 이러한 사회적 맥락이 결국 트럼프의 포퓰리즘에 열광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민주당이 세련되고 거만한 자세로 문제는 '학력'이라고 진단하면서, 더 배워야 한다며 낮은 임금, 삶의 질 저하는, 못 배운 개인의 책임임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사회의 문제는 기술관료 같은 엘리트를 통해 더 잘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하며 실행하는 동안, 그 틈을 트럼프가 비집었다고 진단한다. 트럼프는 뒤쳐진 이들의 모멸감을 다독이며, 하루아침에 실패자로 내몰린 그들이 하는 일의 존엄성을 두둔하면서, 그들의 아니라 다른 것들을 문제의 원인으로 짚어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민주주의에서 '감정'이 갖는 중요성을 제대로 짚어낸다. 동시에 배척되고 소외된 마음을 다독여 포퓰리즘으로 세력화하는 경로가 만들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또 겉으로는 민주적인 절차를 밟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술관료적으로 해결하는 엘리트주의가 이러한 경로를 두텁게 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다만 아쉬는 점은, 대안은 그에 비하면 좀 더 치열한 문제의식이 아쉽다. 성경의 '제비 뽑기'를 일정 부분 입시에서라도 도입해서 능력주의의 교만함과 민낯을 드러내야 한다고 보는 것인데, 차라리 일정 부분이 아니고 전격적인 도임을 주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온건한 방법으로 한껏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 까닭. 대안을 찾아보는 노력은샌델 교수만의 몫은 아닐테다. 


인상깊은 것은 샌델 교수가 능력주의의 고양을 신앙의 타락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신의 은총을 확증받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잘못된 신앙으로 이어져,사회적 성공이 곧 신의 축복이며 구원의 증거라고 보는, 복음의 부패에서 능력주의가 출발했다는 것은 참 뼈아파는 지적이다. 

21세기 초 번영 복음은 근면한 노동을 장려하고 사회적 상승, 적극적 사고 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아메리칸 드림 자체와 구별하기 어려워졌다..시장이란 성공과 실패로 보상과 처벌을 구분해준다. 유덕한 사람은 풍족한 보상을 받고, 사악한 자는 끝내 파멸할 것이다. 번영 복음의 매력 중 하나는 그것이 자신의 운명에 대해 자신의 챔임을 강조하는 데 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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