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루션 SOULUTION - 정신질환 치유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다
노영범.김지영 지음 / 미다스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 서구의 정신의학은 길을 잃었다는 도발적인 진단은 미력한 외침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수용소의 시대, 1세대 생물학적 정신의학의 시대, 신경성 질환의 시대, 정신분석의 시대, 대안 탐색의 시대, 2세대 생물 정신의학의 시대를 거쳐 바야흐로 약물과 체크리스트의 시대로 넘어온 서구의 정신의학 역사를 탐색하는 한편,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즉 DSM의 발전사, 특히 DSM-V의 허구와 문제점을 짚어내면서 현대 정신의학의 좌표를 짚어낸다. 지나치게 방대해진 진단의 그물망 안에서 어떤 증상이든 정신 질환으로 연계되는, 이른 바 질환의 과잉 진단과 편의적인 환자 색출의 어두운 그림자에 집중한다. 


즉, 서구 정신의학이 상당 부분을, 과학이라는 명분 하에 체크리스트와 호르몬, 약물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진단 분류에 집착한 나머지, 실제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상황과 맥락이 증발하고, 환자의 증상을 통해 다른 변인을 찾으려는 탐색이 실종되면서 '정신의학'에서 환자와 의사가 소외되고 있는 현장을 고발하는 데서부터 저자들의 문제의식이 시작된다. 


한의사인 저자들은 질병의 원인을 추척하는 대신 질병의 결과에만 몰두한 나머지 증상을 없애려는 지엽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한의학 고서인 <상한론>을 재해석하고 현대적으로 적용하려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상한론>은 인간을 내밀하게 관찰한 일종의 관찰지로서 병이 들어 나타난 이상 증상을 400가지로 나누어 기록하고 있어, 이를 정신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적용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병의 원인을<상한론>에서 제시한 7가지로 나누고, 항상성이 깨져서 비정상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면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SOUL의 새로운 3가지 개념을 접목하고 있는데, 인간의 행위 이면에 존재하는 동기나 기저 감정나 감정을 파악할 것,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 생명 현상을 유지하는 원동력인 항상성이 깨지면 병이 온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행위에는 내면의 계기가 있으므로 이를 파악해야하고,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총체적이므로 이를 함께 치료해야 하며, 신체적, 정신적 질환은 결국 항상성이 깨지는 것이므로 이의 균형을 맞추는 데 집중해야한다는 것이다. 


<상한론> 적용을 위하여 임상 현장에서 저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활용하는 치료 전략은 "서사"다.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 일종의 개인별 질병 이야기를 탐색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병 이야기는 의사에게 진단과 치료의 단초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환자 스스로 자신의 질병과 맥락을 이해함으로써 성찰적 반추의 계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보건사회학에서 주목하는 일종의 '질병 내러티브'와도 같은 맥락일 수 있다. 질병의 재구성을 통해 스스로 의미화하는 과정 자체를, 지난하더라도 정신 질환 치료의 현장에서 다시 되살려야하는다는 주장은 주목할 만한다. 


<상한론>은 칠병, 제강, 조문의 층위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상한론에서는 질병을 발생시키는 일관되며 공통된 행위 패턴을 칠병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대양병, 양명병, 소양병, 대음병, 소음병, 궐음병, 음양역차후노복병이 해당되며, 그외 대양병 결흉과 괄음병 곽란도 덧붙여진다. 


대양병은 경쟁심, 양명병은 편집강박, 소양병은 탐구심, 대음병은 관심욕구 및 낮은 자존감, 소음병은 의존성, 궐음병은 집착, 음양역차후노복병은 회피성 등이 주로 질환을 일으킨다고 본다. 이러한 기저와 더불어 움직이는 것, 먹는 것, 잠자는 것에 중점을 두고 인간 행위를 파악한다. 칠병 중 하나의 병으로 진단된 모든 환자는 제강에 기술된 병적 현상이 나타나며 각 개인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병적 현상은 조문에 기술되어 있다. 


 <상한론>의 진단 과정은 칠병진단, 제강진단, 조문진단, 처방분류의 순서로 이루어지는데. <상한론>을 현대적 의미에서 다시 재탐색하는 한편, 질병으로 나타나는 행동패턴의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매슬로우의 동기이론을 접목하고 있다. 


서사의학적 진단과 변병분류를 통해 진단이 내려지면, 각각의 현상에 따른 한약이 처방되며 기저 감정에 따른 상담 치료 및 감정의 조절을 위한 마음 훈련이라고 할 수 있는 훈습의 과정을 거친다. 


이 책의 강점은 <상한론>에 근간을 두고 직접 치료한 사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에세이가 제시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소울루션 치료의 철학과 과정, 결과를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거중심의학의 맹위로 인해 '좁은 과학'이 신격화된 세태 속에서,  오히려 고전을 통해 동양의 시각에서 정신 질환을 다룬다는 것이 생경하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특히 <상한론>의 분류 체계가 DSM 분류 체계 못지 않게 체계화되어 있다는 점, 신경 정신 질환이야말로 한방과 양방의 통합을 통해 새로운 치료 철학을 정립하고 제 3의 치료 방향을 탐색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 싶다. 

정신질환은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원인을 가지고 발생합니다. 모태에서부터 유년기를 거쳐 잠재의식 속에서 형성되고, 점점 성장해가면서 수많은 사건과 인간관계에서 정신질환이 만들어집니다. 정신질환의 결과로 발생한 현재의 증상에만 집중하는 것은 피상적인 접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환자의 전체적인 삶을 읽어내고, 질병 발생 당시 대응하는 방식에 따라서 개개인의 특성을 간파해야만 정신질환의 원인을 밝혀내고, 궁극적으로는 근원적인 치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현대의학으로는 정신질환 치유의 한계점이 있는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 P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