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와 관점은 다양하겠지만, 자료를 모으고 틀을 만들어 새로운 통찰의 지견을 제공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일테다. 더욱이 종전을 앞두고 조바심이 난 정부의 의뢰를 받은 상황이라면 뉘라서 선뜻 힘겨운 작업에 나설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책의 내용보다 미국의, 사안에 접근하는 방식과 태도였다. 승전국의 기치를 올릴 시점에, 가장 명료하면서도 세련되게 일본을 굴복시킬 묘책을 인류학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승리의 분위기에 흔들려 감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대신, 평화의 상징으로 분한 미국의 정신을 자연스럽게 이식하면서도 새로운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한 방안으로, 연구를 의뢰한 정계의 식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하나는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서도 일본의 여러 문헌, 영화, 일본 지인들과의 면담을 통해서 일본을 이해하는 분석의 틀을 찾아냈다는 점이다. 저자는 서두에서 본인이 직접 기술한 것처럼, 적절한 질문을 통해 어려운 작업의 물꼬를 텄다. 종의 기원에 관한 이론을 세울 때처럼, 자료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무엇을 알아야하는가, 일본인들이 드러내는 태도의 배후에는 무엇이 있는가, 미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이상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하는가, 처럼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서 자료를 정리하고 분류했다. 이 점은 책의 내용과 더불어 적절하고 좋은 질문이 어떻게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지 이해하게 하는 모범이 된다.


 또한 사회학이나 심리학이 보여주는 분포나 측정의 통계적 분석 이전에, 일본인의 생활방식, 체계적 관념, 범주와 상징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왜 미국 정부에서 "인류학자"에게 이 중요한 연구를 의뢰했는지 가늠하게 하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먼저 저자는 전쟁에 대한 일본인의 관점과 태도를 분석하는 데서 시작한다. 미국은 일본, 이탈리아, 독일 등의 침략행위가 국제 평화를 침해했다고 보는 반면, 일본은 각 국이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 세계는 무정부 상태가 되므로 일종의 계층제처럼 세계가 재편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는 점을 제시한다. 일본은 사회 자체가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차지하도록 구성된 나라이며 정신력이 물질을 이길 수 있다고 믿어, 실패를 하거나 심지어는 죽음 앞에서조차 정신이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또 안심의 문제를 일종의 각오의 결과로 여기므로, 모든 것이 예기되고 충분히 계획된 일이라는 가정 아래에서 모든 사태는 수동적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태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간파한다. 


이어 천황과 일본인의 관계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분석했는데, 수 많은 포로 중 반 천황적인 진술서는 단 세 통뿐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일본인과 천황의 동일시에 대한 삽화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일본인은 계속해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염두하며 전쟁에 임하고 일상 생활도 영위한다는 점을 포착한다. 특히 무항복주의는 일본인 특유의 명예에 대한 집착과 연결되는데, 죽을 때까지 싸우지 않고 항복한다면 살아도 죽은 자가 된다는 점을 밝혀낸다. 


저자는 일본인의 생활 상을 탐색하면서, 적당한 행동에 의해 끊임없이 서로를 인식하는 계급적 차이는 단순한 계급의 차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성별, 연령, 가족 및 친분 관계 등을 고려하면서 조화와 균형을 맞추어야하며, 가족과 친족을 넘어서서 사회 전반에서 생활 양식을 조율한다는 점을 이해한다. 


'모든 것을 알맞은 장소에 둔다'는 일본의 정신이 국민의 여론이 아니라 국민의 지지만을 요구하는 정치 체계를 만들어내고, 천황에 대한 신성불가침, 국가신토를 가능하게 한 부분도 찾아냈다.  


또 일본인의 문화 저변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윤리 체계를 소개한다. 먼저 온의 문화가 소개되고 있는데, 일종의 채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채무자가 자신이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살아가는 동안 의무를 이행해야한다는 것이다. 자신은 온을 받으면서도 상대에게는 온을 입히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한다. 


한없는 변제는 보통 기무라고 하며 부모님에 대한 고와 천황에 대한 주가 이에 해당되며 모두 강제성이 있다. 자신이 받은 은혜와 같은 수량만 갚고 시간도 제한된 부채는 기리라고 한다. 기리에는 법률상의 가족에 대한 일체의 의무가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기리는 자신, 그리고 관계 속에서 나타나야할 기리로 구분되는데, 관계 속의 기리는 주군, 근친, 타인, 먼 친척 등에 대한 기리가 있고, 자신에 대한 기리는 이름에 대한 기리로써의 복수,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음, 일본인으로서 일본인답게 예절을 다하는 의무가 포함된다. 


 이러한 윤리 체계는 일본이 패전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항복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 천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짐으로써, 일본에서는 미국의 점령 이후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일본인의 영원불변의 목표는 명예로, 전쟁의 원인도 무력이 강한 나라가 갖는 명예에의 욕망이 배후에 있다는 점을 읽어낸다. 그리고 실제 일본의 역사 속에서 패전한 경우에도 즉각적으로 적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배상금까지 지불하는 등 명예를 위하면서도 현실적이고 냉정한 면을 가진 특징을 소개한다. 


일본인은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면서도 인간의 욕망 충족에 대해서 인정하되 일정한 한계 내에 머무르도록 한다는 점도 포착한다. 일본인은 육체와 정신이 대립된다고 보지 않고 육체의 쾌락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라고 보므로, 일례로 첩 문화도 용인되었다고 본다. 또 일본인은 인간의 생애는 온화해야할 경우가 있고 거칠어야할 경우가 있다고 믿으며, 어떤 것이든 각각 때마다 필요하며 상황에 따라 모두 선하다고 인식한다. 인간은 선하며 더럽혀지면 더러움을  제거하면 선이 다시 빛난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기술한다. 


나아가 일본은 성실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는데, 이 때 성실은 일본 정신에 의해 그려진 지도상의 길을 따르는 열정으로 일명 마코토라고 한다. 사리를 추구하지 않거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행위 자체 뿐만 아니라 행위에 의해 파생된 결과도 책임지는 것 등을 의미한다. 


저자는 일본의 자기훈련에도 주목한다. 자기훈련의 총체는 일체의 자기감시나 공포심, 경계심을 버리는 태도로 죽은 자처럼 행동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무가라고 하는데, 일종의 '죽은 셈 치고'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죽은 셈치고 하자는 것은 오히려 공포나 불안을 초월한 사람으로 자유로운 자가 된다는 것인데, 우리의 관념과도 닮아 있다. 


1974년에 처음 출간되고도 계속해서 발행을 거듭할 정도로 적확한 분석이 탁월한 고전이다. 단순히 일본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저자의 틀을 통해 우리를 다시 읽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렇지만 이런 모든 모순이 일본에 관한 책에서는 날줄과 씨줄이 된다. 이런 모순은 모두가 진실이다. 칼도 국화와 함께 그림의 일부분을 구성한다. 일본인은 최고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얌전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불손하면서도 예의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력이 있고 유순하면서도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고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고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고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일본을 이해하는 것이 미국에게 매우 중요한 일로 떠오른 상황에서 수많은 모순을 보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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