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 보어 : 확률의 과학 양자역학 지식인마을 5
이현경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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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그 근간이 되는 과학의 패러다임 변화에는 무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전공자가 아니기에, 가볍게 읽고도 대강의 내용을 훑어보고 싶은 책을 찾아보았는데, 내용까지 알차서 안성맞춤이다.

 

이 책은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 핵심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병렬되어 있어 우선  가독성이 좋다. 이 책 전반에서 가장 흥미로는 단어는 아무래도 "경향"이지 않을까 싶다. 뉴턴의 고전 역학 세계에서 확실히 "존재"하던 물질이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단지 "존재하려는 경향"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세계를 바라보는 근간 자체를 뒤흔드는 획기적인 전환점일 수 밖에 없다.

 

이전에는 주어진 시간 안에서 위치와 속도를 알면 입자의 경로를 명확히 계산할 수 있어 결정론적 사고로 세상을 관측할 수 있었던  반면 이제는 예측 값 주위에 어떻게 분포해 있는지, 어떤 수치가 나타날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만 계산 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열린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가 강조했듯이 현실의 모든 사건은 본질적으로는 우연이지만, 확률은 필연적이라는 점.

 

학창 시절에 배운 열역학 에너지 법칙의 놀라운 함의는 흥미진진하기까지 했다. 에너지가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변한다는 개념을 생각해 낸 막스 플랑크의 혁명적 사고가 이렇게 경이롭게 느껴질 줄이야.

 

아인슈타인은 통계역학을 연구하면서 가열된 물질의 에너지가 빛 에너지로 바뀌는 방식을 연구하면서 빛 에너지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해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빛의 양자 개념을 도출해낸다. 그리고, 실제로는 실험장치를 쓰지 않고 이론적 가능성을 따져 이어 맞추면서 마치 실험을 한 것처럼 머릿 속에서 결과를 유도하는 사고 실험을 통해 상대성 이론을 개발한다. 아인슈타인은 숨겨진 변수만 알 수 있다면 모든 현상을 예측할 수 있으며 무질서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함께 어울려 시공간을 이룬다고 보면서 시간은 영원할 수도 있고, 시작과 끝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에 단초를 제공하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신이라면 시간을 초월한 그 밖에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데까지 철학을 확장시키기도 한다. 또 하나의 원인이 반드시 하나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가 복잡한 비선형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복잡계 이론의 개발에도 단서가 된다.

 

미술에서는 피카소나 달리, 마그리트가 아인슈타인과 같은 사고를 한다. 4차원의 3차원 투시를 하는 것 같은 피카소의 그림이나 빛의 속도로 달리면 시간이 멈추고 길이가 없어지는데, 달리는 이 원리를 그림에 활용한다. 마그리트는 앞에서도 뒷모습이 보이는-두께가 없어지는-길이 수축의 원리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반면 맞수격인 보어는 플랑크의 양자 개념을 이용해, 원자 내부에서 전자가 특정 값을 지닌 궤도상만 작용하는 체계로 파악하면서 현재의 전자 구름 이론을 도출하는 징검다리 이론을 개발한다.보어는, 새로운 이론은 이전의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했던 모든 현상을 다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대응원리와, 입자를 파동 또는 알갱이로 생각하면서 배타적인 모델로 측정할 수는 있지만 원자의 구성 입자들이 나타내는 현상을 완전히 기술하려면 두 모델 모두가 필요하다는 상보성의 원리도 주창한다.

 

한편 하이젠베르크는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불확정성의 원리를 주창한다. 전자를 관찰하기 위해 광선을 내보내면 광선 속 광자가 전자에 충돌하면서 전자의 위치를 얻어낼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광자가 전자에게 자기 운동량의 일부를 전달하기 때문에 전자의 운동량 자체가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양자역학의 핵심 원리 중 하나인 불확정성의 원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이 동시에 확정된 값을 가질 수 없다는 것으로, 미립자의 세계에서는 입자가 파동의 성질도 겸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러한 불확성의 원리에 따라 카를 포퍼는 <열린 사회에 그 적들>에서 인류의 운명과 역사는 결정되거나 닫혀 있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고 주장했고, 관찰하고자 하는 대상이 관찰 수단에 의해 변화한다는 사실을 통해 '죄수의 딜레마'같은 게임 이론이 착안된다.

 

기초적인 상식이 부족해 혼돈을 느낄 즈음, 앙자론을 생각하면서 혼란을 느끼지 않으면 양자론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보어의 탄식은 오히려 희망이 된다.

 

양자론에서는 에너지가 연속적이지 않고 불연속적, 즉 계단 모양의 그래프로 그려질 수 있는데, 이것은 DNA 구조를 설명하는 데 적합하며, 반도체도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으로 양자 도약을 활용하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 최근에는 입자 대신 모든 물질의 근원을 초끈으로 생각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여러 입자들은 한 가지 끈이 어떻게 진동하느냐에 따라 다른 질량과 물리량을 갖는다는 것에 착안해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도 인식하게 됐다.

 

이 책을 읽고 난후 얻은 최고의 결론은 과학, 예술, 경제, 철학 등 다양한 학문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새로운 인식의 확장을 위해 함께 경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빠르게 변화하고, 복잡하게 얽혀가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가는 데, 과학도 한 몫을 성실히 담당한다.

양자역학은 어떤 현상을 구현할 때 오직 확률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확률이라는 것이 엄격한 결정론적인 방식에 따른다는 것이다. 이를 해석해보면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본질적으로는 우연인데, 그 확률은 필연적이란 뜻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우연과 필연의 삼각관계에 놓여있는 것이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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