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철학 - 깊은 공부, 진짜 공부를 위한 첫걸음
지바 마사야 지음, 박제이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나면 누구나 정교하게 잘 짜인 설계도면을 읽고 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내용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책의 구성 체계 자체가 공부하기의 방법론을 배경에 감추어둔 것처럼 짜임새가 있다.

 

저자는 공부의 철학, 그 핵심을  동조에 서툰 삶이라고 정의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태 속에서 생각하기도 전에 공감을 요구하고, 곧바로 동조하며 주변에 맞추어가는 삶 속에서, 공부하기란 얼렁뚱땅 휩쓸려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동조를 실험하는 모습으로 변모하며 결 다른 바보로 변신하는 가능성을 열어간다는, 사뭇 흥미로운 이야기로 철학의 세계에 초대한다.

 

공부는 결국 자기 파괴로써, 다른 사람의 기대에 의해 구축된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진단하면서, 먼저 언어의 타자성과 가상현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익숙한 언어와 현실을 연결지어 사고하고 행위하는 동조의 틈새를 비집어 전혀 다른 용법으로 활용되는 언어의 지대를 구축하면서, 말하는 것 자체가 목적인 장난감같은 언어의 세계를 만들어나가야한다고 주장한다. 언어를 일부러 조작하는 의식적인 과정을 통해 기존의 동조에 서툰 언어를 사용하는,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되어야한다는 것.

 

이렇게 언어를 완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적인 기술로써 츳코미(아이러니)와 보케(유머)를 설명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의 코드를 전복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츳코미는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들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면서 의심하고 비판하는 것이라면, 보케는 갑자기 엇나가는 발언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아이러니는 근거를 의심하는 것이고, 유머는 시각을 바꾸는 것인데, 아이러니를 지속하다보면 코드의 초코드가 진행되면서 무엇을 믿고 말해야할지 알수 없는 코드의 부재, 탈코드로 나아가고, 이러한 파괴적인 과정을 겪으면, 그 언어의 진정한 의미를 추구하는 작업으로 변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껍질을 벗겨낸 진짜 현실 자체를 직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유머는 코드를 파괴하는 대신 확장 또는 감축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유머가 많아지면 의미가 너무 많아져 적당한 유머를 조작하기 위한 조건을 생각하게 되거나 정해진 코드 안에서 세부적인 이야기에 집착하면서 언어의 소리 등에 집착하는 향락적인 상태까지도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즉 아이러니를 통해 과잉으로 나아가는 대신 중간에 유머로 전환하고, 다시 유머의 과잉화를 막는 방식으로 형태 자체의 향락을 이용하고, 다시 아이러니컬하게 분석하는 것, 그것이 깊은 공부의 방법론이라는 것이다.

 

두번째 과제로 욕망과 관련하여 공부를 실천하는 방법론으로써, 현상을 파악하여 문제로 압축하고, 다시 이 문제를 키워드로 도출해내는 과정을 거쳐야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깊이 파고드는 아이러니와 한눈팔기인 유머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 나름의 개성적 판단을 통해 결론을 도출해 나가는 것이 깊게 공부하는 방법이라고 요약한다.

 

한편 깊이 공부하기 위하여 자신의 욕망 연표를 만들기, 독서의 방법론, 노트 활용법 등 유용한 팁도 간단하게 소개하고 있다. 가장 탁월한 부분은 마지막 단락의, <이 책의 학문적 배경>인데, 이 책의 주요 철학적 근거가 되는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 라캉, 비트겐 슈타인, 도널드 데이비슨, 푸코 등의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의 견해를 곁들였다는 적확한 기술은, 이 책을 통해서 새로운 공부의 세계로 진입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제공한다.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은 공부란 획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부는 상실이다. 기존의 방법대로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자신을 상실하는 것이다. 기존의 자신에게 영어 능력과 같은 기술이나 지식이 더해지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한다면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없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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