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의 철학 - 이진우 교수의 공대생을 위한 철학 강의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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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자가 아닌 다음에야 철학의 계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 어쩌면 철학자의 핵심 사상일텐데,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주제를 다루는 책을 찾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포스텍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철학 강의와 네이버캐스트에 연재하면서 얻은 자극들을 토대로 구성되어 동기유발면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도 현장성을 갖춘 베스트 강의록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저자는 의심을 키워드로 역사를 의심했던 마르크스, 신을 의심한 니체, 의식을 의심한 프로이트, 존재를 의심한 하이데거, 언어를 의심한 비트겐슈타인, 계몽을 의심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타인을 의심한 샤르트르, 예술을 의심한 베냐민, 과학을 의심한 포퍼, 정치를 의심한 아렌트의 사상과 의미를 탐색한다. 각 철학자의 사상을 이해하고 관통하는 공통의 핵심 키워드가 의심이라면, 각각의 철학자의 사상을 대변하는 주제를 철학자마다 2가지의 질문과 연계하여 구성했는데, 제목만 보아도 철학자의 관심사와 사상의 영역을 가늠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실제 강의를 기본으로 재구성한 책의 기획력이 가지는 이 책만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프로이트에 대해서는 단순한 개인의 의식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식과 연계될 수 있다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프로이드는 자아가 리비도의 욕망과 대결을 통해 형성되듯 문명도 공격 본능과 대적함으로써 발전한다고 보았는데, 자아가 리비도를 억제하기 위해 초자아가 존재하는 것처럼 문명도 문명적 초자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로이드는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요소로 폭력과 감정적 유대 두 가지를 꼽으면서 문명이 발전해도 행복해지지 않은 인류의 문제를 세 가지 대원칙으로 설명한다. 인생의 목적을 결정하는 것은 쾌락의 원칙이며, 이 원칙에 의한 프로그램들은 완수될 수 없으며 성 본능을 목적달성이 금지된 충동으로 바꾸어야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쾌락의 원칙이 결코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한다는 것. 삶이 쾌락의 원칙으로 지배받지만 현실 속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다면 지속적인 행복을 위해 성 본능을 목적달성이 금지된 충동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성 욕구로 결합된 가족을 넘어서서 대상의 범위를 넓혀가는 동시에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쪽으로 바꾸어야 지속가능한 행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성과 의지가 아니라 쾌락이라는 본능으로부터 출발하는 문명의 발전에 대한 통찰은 프로이트의 천재성을 돋보이게 하는 장면.

 

 

호르크하이머나 아도르노의 사상도 이성과 과학에 절대 권력을 부여하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그들은 계몽을 통해 자연의 다양성이 축출되어 추상화되고 단순화되는 것에 대해 염려한다. 과학과 기술은 측량의 무기를 가지고 철저하게 자연을 대상화하고 모든 현상을 기호언어로 전환하다보니 철저하게 물화한다는 것이다. 죽은 것과 산 것을 동일시하던 신화는 철저히 부서지고 계산하고 통제할 수 있는 구조와 패턴으로 대치시키는 무지에 대해 일갈한다. 이와 더불어 수학화되지 않은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전락한다. 더 많은 것들을 해석하고 알아내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더 많은 것들을 잃어가고 알지 못하게 되는 역설을 직면할 수 밖에 없다.  또 문화산업은 대중을 기만하는 계몽의 일종이라고 판단하는데, 다양한 욕구와 가치를 충족시켜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상품과 시장을 유일한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게 하면서 지배 관계를 서서히 구축해나가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우리에게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있는 것처럼 포장되지만, 문화산업이 제시하는 문화의 척도를 받아들이도록 내면화하면서 은연중에 대중을 기만한다는 것. 미세화된, 너무 부드럽고 달콤해서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지배 관계의 내면화는 철학이 왜 필요한가, 올곧은 답변처럼 들리기도 한다.

 

 

베냐민은 예술의 본질적 변화에 주목한다. 제의적 목적에서 전시의 목적으로, 손의 예술에서 눈의 예술로 바뀌는 예술의 기능과 본질에 집중하는 한편 예술과 정치화, 정치의 심미화를 통해 파시즘의 선동과 선전의 이면을 파고든다.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배우를 현실과 분리시키고, 현실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침잠하고 명상하는 대신 정신을 분산하고 오락으로써 기능하는 데 수많은 대중들이 동시에 수용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대중을 동원한다는 통찰을 제공한다.그러므로 그는  전체주의가 어떻게 현실을 이미지화하고, 동시에 대중들을 오락하듯 아무 생각 없이 몰입하게 하면서 자유자재로 자신의 의지인양 스스로 동원가능한 존재로 변신시키는지 그 전략적 핵심을, 영화를 통해 기가막힌 독법으로 읽어낸다.

 

이 책은 서두에서 공대생을 위한 철학 강의라고 명명하고 있지만, 철학적 사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친절한 길잡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철학은 동일한 문제를 다르게 해석하는 것이다. 하나의 목소리가 지배하면 전체주의가 되고 다양한 목소리가 조화를 이루면 민주주의가 된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경험한 역사적 순간에 이 책을 내게 되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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